두뇌 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바둑, e-스포츠 등은 체육 종목인가. 이 주제는 여전히 체육계의 뜨거운 감자다. 이들 종목이 아시안게임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는 효자 종목이어도, 스포츠 여부(與否)를 따지는 '불편한 진실'은 늘 존재했다.
특히 대한민국 스포츠 관련 법(法)의 '체육' 개념(정의)에 두뇌 활동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은 논쟁의 빌미를 제공해왔다. 현재 국내법 체계상 체육으로 인정받지 못하다 보니, 제도적 사각지대에 방치된 관련 종목 단체들은 체육 시설 미분류, 체육 지도자 미포함 등 체육 활동 제약의 피해를 입어왔다.
지난 2010년 11월 22일 중국 광저우기원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바둑 혼성 복식에서 우승한 박정환(오른쪽)과 이슬아가 금메달을 깨물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최근 바둑, e-스포츠 등 두뇌 활동 기반의 스포츠 종목들을 체육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내용이 골자인 법 개정이 추진 중이어서 스포츠계의 관심이 높다. 두뇌 활동 기반 스포츠의 체육 종목 인정이 명문화(明文化)하는 셈으로, 관련한 종목 단체들은 법 개정에 반색하고 있다.
25일 CBS노컷뉴스의 취재를 종합하면 이재정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17일 '국민체육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과 '스포츠산업진흥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은 10명이, 스포츠산업진흥법 개정안은 11명이 발의했다.
이들 법률안은 두뇌 활동 기반 스포츠 종목을 체육의 개념에 포함시키는 내용이 골자다. 현행 국민체육진흥법(제2조 정의)과 스포츠산업진흥법(제2조 정의)에서는 체육의 정의가 '신체 활동'으로 한정돼 있으나, 개정 법률안에서는 '신체 및 두뇌 활동'으로 범위를 확장했다.
이 법률안을 대표 발의한 이재정 의원은 "최근 체육의 범위·기능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고 전제한 후 "바둑, e-스포츠 등은 이미 국내·외에서 주요 체육 종목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외 환경 변화에도 불구하고 체육의 개념을 신체 활동에만 한정하는 것은 다양한 체육 활동에 대한 국가의 제도적 지원 및 진흥에 한계를 야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체육을 신체 활동뿐 아니라 두뇌 활동을 포함한 경기 전반으로 정의함으로써, 제도적 포용성과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한다"고 법 개정 취지를 전했다.
지난 2023년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스트리트 파이터 5'에서 대한민국 e스포츠 사상 첫 금메달리스트가 된 김관우. 연합뉴스실제 이 의원의 의견대로 국제 스포츠계는 두뇌 활동 기반 스포츠의 체육 종목 인정을 제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e-스포츠는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 됐고, 바둑도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에 포함됐다.
또 이들 종목은 대한체육회 가맹 단체로도 공인받고 있다. 체육계도 사실상 이들 종목이 규칙·경쟁·관중·확장성 등의 요소를 갖춘 것을 이유로 주요 스포츠 콘텐츠로 자리 잡은 것을 인정하고 있다.
특히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신체뿐 아니라 '의지·정신'의 조화를 추구하는 생활 철학을 올림픽 정신으로 천명하고 있다는 점도 바둑 등의 종목을 체육으로 분류하는 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여기에 상당수 국제 기구들도 바둑, 체스, 브리지 등의 종목을 '스포츠'로 인정하고 있는 추세다.
바둑 대회 모습. 대한바둑협회 제공법 개정 추진이 알려지자 두뇌 활동 기반 스포츠 종목 단체들은 환영 입장을 보이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대한바둑협회 유경민 사무처장은 "개정 법안이 통과되면 체육 정책의 수혜 대상이 넓어지고 바둑과 e-스포츠 등의 종목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제도적으로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이번 개정 법안을 통해 바둑 산업 발전과 저변 확대 등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현재 2개의 개정 법안은 입법 예고 중으로, 국회 상임위원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