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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광? 알고보면 따뜻한 남자, 김성근

김성근

 

김성근 SK 감독과 처음 얘기를 나눈 것은 스포츠투데이 야구기자 시절이던 지난 2005년 국제전화를 통해서였습니다. 당시 일본 지바 롯데 타격 인스트럭터였던 김감독에게 같은 팀에서 뛰고 있던 이승엽의 근황을 이것저것 묻기 위해서였습니다.

첫 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30여년 나이 차가 있어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웠던 데다 재일교포 출신이라 일본 억양 섞인 말을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살가운 말솜씨도 아니어서 습기없는 고목나무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간신히 이승엽에 관련된 말을 몇 마디 묻고는 황급히 전화를 끊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사실 그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죠, 재미없고 꼬장꼬장할 것이라는. 예전 90년대 쌍방울이던가요, 스타 선수도 없던 최약체팀이었는데 항상 투수들이 많이 나와 지루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현욱 선수였나요, 하도 등판을 많이 해서 혹사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강팀들을 상대로 악으로, 깡으로 악착같이 야구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 사령탑이 김감독이었죠. 또 가정을 모르고 야구만 안다는 ''야구광''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통화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김감독에 대한 선입견이 완전히 바뀐 것은 올해 4월이었습니다. 지난해 지바 롯데에서 SK 사령탑에 부임해 정규리그 7할5푼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던 때 김감독 인터뷰를 한 것이었습니다. 여전히 ''이슨욥''(이승엽), ''아웨이''(어웨이) 등 말을 알아듣기 쉽지 않았지만 막상 얼굴을 맞대니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야구에 대한 ''절실함''이었습니다. 김감독은 스스로를 ''음지야구인''으로 지칭했습니다. 1950년대 재일동포로 차별과 천대 속에 일본에서 야구를 시작한 것도 그러하거니와 60년대 선수생활을 위해 혈혈단신 한국땅을 밟은 것도 그렇습니다.

프로에서도 약체팀으로 꼽히던 태평양(현 현대), 쌍방울 등을 맡았죠. 이기기 위해선 이른바 ''벌떼야구''로 대변되는 잦은 투수교체, 혹사 등의 불명예를 안을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몸값 1,000만원 선수로 억대가 넘는 애들을 이기려면 물량공세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반대로 김감독의 ''양지야구인''은 비슷한 연배로 10회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김응룡 삼성 라이온스 사장이나 2회 우승의 김인식 한화 감독입니다.

이런 이력을 듣자니 "등 뒤에 100m 절벽이 있다고 생각하고 야구한다"는 김감독의 말이 이해가 갔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찡하게 와닿은 것은 그 악착과 절실함을 있게 만든 ''남자론''이었죠. "남자라면 자기 식구를 챙겨야 한다. 내가 무너지면 여러 사람이 울게 된다"며 김감독은 "나를 믿고 이불에서 편하게 잠든 아이와 부인, 부모님을 생각하라"고 선수들에게 말한다고 했습니다. 당연한 얘기였지만 ''야구에 미쳐 가정도 돌보지 않는다''는 말을 듣는 김감독의 말이기에 다르게 들렸습니다.

김성근

 

그런 김감독이 올해 국내 프로에서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김감독은 우승 뒤 에피소드를 들려줬습니다. 초반 2연패할 때 본인은 마음이 차분했답니다.

그런데 정작 주변 사람들이 긴장감으로 탈이 났습니다. 구단 프런트 중 링거 주사를 맞고 목이 붓는 사람들이 있었고 한 코치는 머리를 결연하게 깎고 왔답니다. 그때 김감독은 "여러 사람이 상하겠다. 이 시리즈 절대 놓치면 안 되겠구나"라고 다짐했답니다. 다시금 김감독이 말한 남자의 책임이 떠오르는 부분입니다.

또 한국시리즈 MVP에 오른 김재현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지난 2002년 LG 시절 삼성과 한국시리즈 6차전이었습니다. 당시 김재현은 심각한 고관절 부상으로 선수생명의 위기를 겪고 있었지만 수술을 미루고 시리즈에 나섰습니다. 이 경기에서 김재현은 2타점 2루타성 타구를 치고도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1루까지만 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김감독은 당시에 대해 "선수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내보냈다"면서 "그런데 다시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또 올해 정규리그 부진을 보이다 한국시리즈 맹활약으로 MVP에 오른 데 대해 "올해를 끝으로 은퇴할 거라 생각했는데 또 한번 살아났다"고 말했습니다. 선수혹사라는 불명예스런 의혹과는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SK 우승 기사 마감 뒤 전 야구기자 선배를 만나 술잔을 기울였는데 김감독의 또다른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기자가 아니지만 포스트시즌 중계를 다 봤을 정도로 관심은 여전한 선배였는데 개인적으로 SK의 우승을 바랐다는군요. 그 선배도 종종 김감독과 술잔을 나눴는데 딱딱할 것만 같던 김감독이 선배의 식구에 대해서도 꽤 잘 알고 관심을 가져주더랍니다.

김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 다음날 2군 훈련장을 찾았다고 하는군요. 다음 시즌을 위해 2군도 전력을 끌어올려 1, 2군 경쟁을 시킨다는 겁니다. 또 한국과 일본, 대만, 중국 챔피언이 겨루는 코나미컵도 창피하지 않은 경기를 보일 거라며 대비한다고 합니다.

여전히 야구에 미쳐 살아가고 있는 남자, 김성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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