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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한국계 정치인의 배신, 분노의 캘리포니아



미국/중남미

    [르포]한국계 정치인의 배신, 분노의 캘리포니아

    편집자 주

    최근 미국 교포사회가 어느 한국계 연방의원 때문에 발칵 뒤집혔다. 우리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우리 국민 68%가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된 종전선언에 대한 반대 여론을 주도하고 있는 영 김 의원이 주인공이다. 그의 지역구 캘리포니아 교포 민심을 점검했다.

    미국 연방 하원 영 김 의원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 부에나 파크의 K팝 뮤직타운 내 상가. 권민철 기자 미국 연방 하원 영 김 의원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 부에나 파크의 K팝 뮤직타운 내 상가. 권민철 기자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주변지역은 한국 교포들이 미국에서 가장 많이 사는 지역으로, 한국계 1호 연방하원 의원인 김창준 전(前) 의원을 배출한 지역구로 유명하다.

    현역 의원은 공화당 소속 영 김(김영옥, 60) 의원. 지난해 총선 때 7600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민주당 현역 의원을 누르고 당선돼 화제가 됐다.
     
    당시 교포사회는 소속 정당, 지지 정당을 떠나 재수 끝에 하원의원에 다시 도전한 김 의원을 물심양면으로 밀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 이 지역 교포사회에는 허탈과 분노가 교차하고 있다.
     
    그가 미국 연방의회 내에서 한국전 종전선언을 반대하는 주동자로 변신한 데 대한 충격과 노여움 때문이다.
     
    사업가 김모씨(46)는 "미국과 한국이 종전상태를 지혜롭게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강대국인 중국까지도 종전선언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의원이 총대를 메고 나오듯이, 결단하듯이 반대하니까 매우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종전선언은 민족과 국가의 미래가 걸린 대사(大事)다. 그런 문제를 유권자이자 동포인 우리 한인들과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해 나선 것에 대해서 어르신들 뿐 아니라 우리세대, 그 아래 동생 세대들도 굉장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로 활동중인 이모씨(51)씨는 김 의원의 행동을 부도덕하다고 규탄했다.
     
    그가 한인들로부터 막대한 선거자금을 받아 가놓고 막상 한인들의 뜻에 어긋나는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백인들은 후원을 많이 안한다. 백인들에게는 50불도 거액이다. 그러나 한인들의 후원금은 단위가 다르다. 100불, 1000불 단위다. 이번에 김 의원이 주도한 종전선언 반대 서한에 서명한 미셀 스틸 박(한국계) 의원 모금행사에 한번 갔었는데, 저녁 식사 자리에서 5만 4000불이 모였다. 영 김 의원은 그 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종전선언 반대 서한은 하원에 계류중인 한반도평화법안에 재를 뿌리기 위한 의도가 분명하다. 김 의원이 자신이 속한 공화당의 전략에 따라 한반도평화법안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한국계 의원으로서 한국의 국익에 직결되는 한반도평화법안을 반대하는데 주도적으로 앞장 선 것이 문제다"고 꼬집었다.
     
    이 씨의 말처럼 김 의원에게 거액을 후원했다는 교포도 만날 수 있었다.
     
    의료업에 종사중인 김모씨(70)는 지난해 김 의원에게 5800불의 후원금을 냈다. 배우자의 이름까지 빌어 최대치로 낼 수 있는 정치자금을 댔다.
     
    그는 김 의원에 놀라고 실망했다고 했다. 김 의원이 도산 안창호 선생을 존경한다고 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는 것이다.


    김 의원 지역구의 일원인 리버사이드 시(市)는 안창호 선생이 미국에 건너왔을 때 오렌지 수확 노동자로 정착했던 곳으로, 현재 이 곳 중심가 복판에는 도산의 동상까지 들어서 있다.
     
    미국 연방 하원 영 김 의원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중심지에 들어선 도산 안창호 동상.  미국 연방 하원 영 김 의원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중심지에 들어선 도산 안창호 동상. 김 의원은 자신도 작은 도산이 되겠다는 말을 주변에 했다고 한다. 권민철 기자그는 "김 의원이 도산 선생처럼 작은 도산이 돼 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겠다고 약속했었다. 도산이 바랐던 대한민국은 갈라진 남북이 아니고 하나의 나라였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 것이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에 한국의 평화를 위해 뭔가 이바지를 해 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그의 세계관을 정확히 알게 된 것 같다"고 씁쓸해 했다.
     
    이어 "서로 대화해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가는 것이 평화로 가는 첫 걸음이다. 김 의원의 이번 종전선언 반대 서한은 한마디로 대화하지 않겠다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의 이번 행보에 실향민 출신 교포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에는 10만 명의 이산가족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들 가운데는 이미 비공식적으로 북한 가족을 만나고 온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들 역시 남한의 이산가족들처럼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따라서 종전선언은 미국의 이산가족에게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가족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 같은 것이다.
     
    양가 어르신 모두 북한 출신이라는 이모씨(63)는 김 의원을 존경하고 사랑했었다고 했지만 지금은 너무나 괘씸하다고 말했다.
     
    그는 "김 의원을 주변에 자랑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같은 한국 사람으로, 같은 얼굴을 한 사람으로 이렇게 다른 입장도 취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느껴서 많이 서운하다. 그래서 다음에 영 김이 (선거에) 나온다고 하면 이제는 찍지 말라고 저부터 나설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 의원과 같은 공화당 당적에 김 의원과 가까이 지내는 한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영 김 의원. 미국 연방 하원영 김 의원. 미국 연방 하원오래전부터 김 의원을 도와왔다는 A씨는 김 의원에게 여전히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 분의 과거를 잘 안다. 좋은 일도 많이 하셨다. 이번에도 정치인이기 때문에 지역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결정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한편으로는 옹호했다.
     
    그러나 그 역시 "의원님이 지역민들의 생각을 청취할 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말도 함께 들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충고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의원과 개인적으로 가깝다는 B씨도 이렇게 말했다.
     
    B씨 역시 여전히 김 의원을 좋아한다면서도 "의원님이 종전선언 문제 뿐 아니라 그 동안 소수민족 권리 보호에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온 때문에 주변 지인들의 반대가 크다. 지인들이 김 의원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게 되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크다"고 고백했다.
     
    영 김 의원이 한인 사회의 이런 기류를 모를리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종전선언 문제로 무리수를 두고 있는 이유에 대해 한인들은 이런 저런 관측을 내놓았다.

    기업인 김모씨(52)는 당내 입지와 연관지어 분석했다.
     
    그는 "내년 재선을 앞둔 그가 공화당내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화당스러운' 이슈로, 바이든 정부 정책과 엇나가는 이슈로 존재감을 부각시켜야하는데, 종전선언 반대는 한국계 정치인인 그가 선점하기 쉬운 이슈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538' 같은 정치 분석사이트는 영 김 의원의 의안 찬반을 토대로 공화당 소속 현역 의원들 가운데 공화당에 대한 로열티(충성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의원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 지역 언론 오렌지카운티레지스터의 경우는 최근 영 김 의원이 본선에서 마주해야할 경쟁자들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며 대만계 제이 첸과 길 시스네로스 등을 유력 주자로 꼽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이 지역 한인사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김 의원에 대한 낙선운동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임기가 2년이기 때문에 2년마다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김 의원의 지역구처럼 정당간 지지 격차가 적은 지역은 작은 민심의 변화도 큰 결과를 낼 수 있다.
     
    특히 김 의원의 지역구인 캘리포니아 제39지역구에서는 여러 인종 가운데 한인들의 여론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인근 LA의 코리아타운이 여타 이민자타운 가운데 제일 크고 발달한데서 알 수 있듯이 한인들의 입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사업가 김 씨는 "이 지역은 이민 사회의 응집력이 크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민자들끼리 연대해서 대응해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한인 사회의 영향력이 막대하다. 한인 커뮤니티가 중국, 일본, 베트남 커뮤니티 같은 이웃 커뮤니티와의 연대에 중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표성을 가지는 커뮤니티다. 따라서 정치인들이 한인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영 김 의원은 종전선언 반대라는 큰 실수를 범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권자 관련 데이터를 제공하는 DATAUSA에도 캘리포니아 제39지역구의 인구 분포는 아시안 32.4%, 백인 30.4%, 히스패닉 21.6% 순으로 집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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