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우승까지 해다오' 테니스 남자 단식 세계 1위 라파엘 나달(왼쪽)이 29일 호주오픈 8강전에서 아쉽게 패한 뒤 도미니크 팀과 포옹하며 격려하고 있다.(멜버른=ATP 투어 페이스북)
테니스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을 삼분해오던 빅3의 아성이 이번에는 무너질까. 차세대 기수들의 상승세가 무섭다.
29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올 시즌 첫 그랜드슬램인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총상금 7100만 호주 달러·약 570억 원) 남자 단식 8강전. 관록을 자랑하던 30대 중반 베테랑들이 20대 선수들에 덜미를 잡혔다.
세계 랭킹 1위를 질주하던 라파엘 나달(34·스페인)은 차세대 선두 주자인 27살의 도미니크 팀(5위·오스트리아)에 1 대 3(6-7<3-7> 6-7<4-7> 6-4 6-7<6-8>)으로 졌다. 4시간 10분 대접전 끝에 4강행 티켓을 내줬다.
'클레이 코트 황제' 나달은 하드 코트인 호주오픈에서 11년 만의 우승 도전이 무산됐다. 지난해 준우승의 아쉬움을 씻을 기회도 사라졌다.
반면 팀은 메이저 대회에서 처음으로 나달을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팀은 2018년과 지난해 프랑스오픈 결승에서 2년 연속 나달에 밀려 준우승에 머문 아픈 기억을 털어냈다.
이날 나달은 팀에 힘과 체력에서 밀렸다. 이미 전성기를 지난 나달과 막 전성기를 구가하는 팀의 차이였다. 나달은 앞서 팀과 상대 전적에 9승4패로 앞섰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팀이 29일 호주오픈 남자 단식 8강전에서 나달을 누른 뒤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멜버른=ATP 투어 페이스북)
팀은 특유의 왕성한 활동력과 강력한 포핸드를 바탕으로 나달을 몰아붙였다. 1, 2세트를 타이브레이크 끝에 따낸 팀은 3세트를 내줬으나 4세트 역시 타이브레이크 승부에서 나달을 제압했다.
4세트 타이브레이크에서 팀은 6 대 4로 앞선 가운데 회심의 포핸드가 네트에 걸렸다. 이후 6 대 6 동점을 허용했으나 팀은 백핸드 스트로크가 네트를 맞고 득점하는 행운이 따랐고, 나달의 포핸드 스트로크가 네트를 넘지 못하면서 승리를 확정했다.
팀은 오는 31일 알렉산더 즈베레프(7위·독일)와 4강전에서 격돌한다. 여기서 이기면 30일 열리는 노박 조코비치(2위·세르비아)-로저 페더러(3위·스위스)의 4강전 승자와 결승에서 맞붙는다.
앞서 열린 8강전에서 23살 즈베레프는 35살 노장 스탄 바브린카(15위·스위스)에 3 대 1(1-6 6-3 6-4 6-2) 역전승을 거뒀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4강에 진출했다.
팀과 즈베레프의 4강전에서 누가 이기든 남자 테니스 세대 교체의 선봉이 될 기회를 얻는다. 특히 메이저 대회에서 빅3의 아성을 무너뜨릴 호기다.
사실 지난 5년 동안 남자 테니스 메이저 대회는 빅3의 세상이었다. 나달과 조코비치, 페더러 외에 그랜드슬램을 제패한 선수는 2015년 프랑스오픈의 바브링카, 2016년 윔블던의 앤디 머리(127위·영국) 2명뿐이었다. 이들도 노장 축에 속한다. 그만큼 차세대들이 그랜드슬램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물론 남자 프로테니스(ATP) 투어에서는 팀과 즈베레프를 비롯해 신성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20대 초반의 다닐 메드베데프(4위·러시아), 스테파노스 치치파스(6위·그리스)도 있었다.
29일 호주오픈 8강전에서 35살 노장 스탄 바브린카를 누른 알렉산더 즈베레프.(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메이저 대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팀은 나달에 막혀 우승이 무산됐고, 메드베데프 역시 지난해 US오픈 결승에서 나달에 졌다. 지난해 윔블던은 조코비치와 페더러가 역사에 남을 결승 명승부를 펼쳤다.
이번에도 차세대들의 메이저 우승은 쉽지 않아 보인다. 호주오픈에서만 통산 최다 7번 우승한 조코비치가 버티고 있다. 물론 조코비치는 4강전을 넘어야 하지만 페더러가 이번 대회 잇따라 고전을 면치 못하는 까닭에 결승 진출 가능성은 높다.
팀과 즈베레프, 누가 이기든 조코비치의 철벽 수비를 넘어야 빅3의 시대를 깰 수 있는 것이다. 페더러가 결승에 오른다 해도 그의 호주오픈 6회 및 역대 최다 메이저 대회 우승 기록(20회)의 경험과 관록을 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빅3의 선두 주자였던 나달이 팀에 일격을 당했다. 33살의 조코비치와 한국 나이로 불혹에 접어든 페더러도 20대 전성기를 달리는 팀과 즈베레프의 거센 도전에 무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세계 남자 테니스의 3강 구도가 재편될 수 있을까. 올해 첫 메이저 대회 호주오픈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