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시사교양 PD로 입사했던 SBS를 지난해 퇴사한 옥성아 PD. 본인 제공시사교양 PD로 SBS에 입사해 17년을 쉼 없이 일했다. TV 프로그램이 아닌 모바일에 적합한 콘텐츠로 방향을 넓혔음에도 변치 않는 방향성이란 건 있었다. '이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기보단, '존재하는 것'을 최소한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비추지 않고 담지 않으면 없는 것처럼 되니까."
코미디언 김기수가 '자기 만족을 위한 메이크업'을 펼치고 꿀팁을 나누는 뷰티 프로그램('예살그살'), '센 언니'인 치타와 제아가 쿠션어 없이 직설적인 조언을 해 주는 고민 상담 프로그램('쎈마이웨이'), 시청자가 직접 보낸 고민을 MC들이 듣고 나서 적절한 노래를 추천하고 이를 직접 불러주는 뮤직 토크 쇼('고막메이트') 등 다양한 형식과 내용에 도전했다.
고민 상담을 바탕으로 한 '쎈마이웨이'와 '고막메이트'에서는 장애인 인권, 자살, 친족 성폭행 등 어쩌면 '불편하고 어렵다'고 느껴질 만한 주제도 배제되지 않고 나왔다. "나와 다른 목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한 장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였다. '퇴사'는 계획에 없었지만, 오히려 홀로서고 나서는 콘텐츠 제작자로서 가진 믿음을 실현하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CBS노컷뉴스는 17년 동안 몸담았던 SBS를 지난해 퇴사하고 본인만의 색깔이 묻어나는 콘텐츠를 만들어 가고 있는 옥성아 PD를 최근 인터뷰했다.
그는 ㈜비타콘을 설립한 후 첫 콘텐츠의 주제를 '기부'로 잡아, '러브온탑'이라는 프로그램 시즌 1을 마쳤다. 많게는 억대 조회수를 기록하고, 'SBS 연예대상'의 모바일 아이콘상 수상 등 여러 성과를 남긴 '대표작'과 비슷한 노선으로 갔다면 훨씬 수월했을 텐데 왜 '기부'였을까.
컵을 많이 쌓을수록 더 많은 기부금을 확보하게 되는 '러브온탑'의 기부금은 돌봄 청년에게 지원된다. 러브온탑 유튜브 채널 캡처'러브온탑'의 처음도 '우연'이었다. 10여 년 전, 결혼 예물로 받은 고가의 가방 도난 사건에서 지갑 등 소지품을 제외한 가방값만 돌려받은 일이 있었다. 그 돈을 기부해 인연을 맺은 '바보의 나눔' 재단이, 돌봄 청년에게 기부할 수 있는 콘텐츠 아이디어를 구하고자 옥 PD에게 만남을 요청했다.
건강이 좋지 않아 휴직 중이었던 옥 PD는 그때만 해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뒤늦게 "주님께서 저에게 맡겨주신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러브온탑'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러브온탑'은 컵을 쌓는 '개수'가 많아질수록 더 많은 금액이 기부되는 간단한 원리의 프로그램이다. 그동안 홍진경, 박재범, 십센치 권정열, 엑소(EXO) 찬열, 더보이즈(THE BOYZ), 비비지(VIVIZ), 크래비티(CRAVITY), 엔믹스(NMIXX) 등 수많은 스타가 출연했다.
출연자가 컵을 쌓으면, 그에 따른 기부금은 기업이 마련해 도움이 필요한 '가족 돌봄 청년'에게 바로 지원된다. 출연자와 기업은 긍정적 이미지 및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시청자는 '러브온탑'을 통해 즐거운 기부 문화를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게 옥 PD의 설명이다.
'다정하고 무해하게, 팔리는 콘텐츠를 만듭니다'(옥성아·채한얼 공저)라는 그의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입증하고 싶었던 가설은 '선한 콘텐츠도 충분히 잘 팔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옥 PD는 '이게 가능할까?' 싶었다며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다, 솔직히"라고 털어놨다.
'러브온탑' 제작진이 그룹 비비지와 함께 찍은 사진. 맨 왼쪽이 옥성아 PD. 본인 제공 다행히도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총 20회의 시즌 1을 찍으면서 약 1억 원이 모였다. 출연진이 자진해서 추가 기부한 경우도, '러브온탑'을 계기로 기부처를 바보의 나눔 재단으로 한 팬클럽도 있다고 옥 PD는 귀띔했다.
"컵을 쌓는다는 게 재미는 있지만 어쨌든 기부 콘텐츠로 진짜 돈이 모일까 궁금했어요. 숫자가 안 나오면 뜬구름일 뿐이잖아요. 이게 팔리는지를 실험해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1억 원 가까이 모인 거예요.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실제로 증명하게 된 거죠. 얼마 전에 기부금 전달식도 했는데, 너무 기쁩니다."'세상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도 재미있을 수 있고 심지어 돈을 벌 수도 있다'라는 게 시즌 1 때 세워 실현한 가설이었다면, 시즌 2에서는 좀 더 많은 대중에게 가닿는 게 목표다. 옥 PD는 "시즌 1에는 아이돌 그룹이 주로 나와서 K팝 팬덤이 관심을 보여줬다. 시즌 2로는 더 많은 대중도 ('러브온탑'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을 만들려고 한다"라고 밝혔다.
SBS 재직 시절 기부 프로그램인 희망TV를 연출했던 옥 PD는 서울시청에서 진행한 대규모 이벤트를 언급했다. 그는 "기부 관련해서 시민들이 이벤트를 '체험'할 때 되게 즐거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라며 '러브온탑' 시즌 2에서는 이처럼 오프라인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쪽을 기획하고 있다고 전했다.
옥 PD는 또 다른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국내 최대 독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서 '취향 플레이리스트'('취플')가 오는 3월 공개될 예정이다. 아티스트가 꼽은 책과 노래에 담긴 취향을 나누고 결국 '나의 세계를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이다.
"콘텐츠를 만드는 의미도, 자유를 찾는 여정도 결국 사람과의 연결이었다"라고 말한 옥 PD는 "콘텐츠를 통한 '연결의 힘'을 믿고, 다양한 플랫폼에서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인생 콘텐츠'를 만들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기여'하고 싶다"라고 비전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