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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한국 간판 픽업'' 봉고, 28년간 미국땅 못 밟은 사연

[특별기획-위기의 세계 자동차 산업③] 자동차에 발목 잡힌 한미 FTA, 실상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실물경기의 침체가 전 세계의 자동차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 세계 자동차 산업의 본거지인 미국은 두말할 나위 없고 제2의 자동차 시장인 유럽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신흥시장에서 자동차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다. 지구촌 소비자들이 미래 경기침체에 대한 불안감으로 지갑을 닫으면서 고가의 내구재인 자동차 판매가 급감한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는 파산 위기에 내몰린 ''디트로이트 3형제(GM, 포드, 크라이슬러)''에 대한 지원 문제를 놓고 뜨거운 논란을 이어가고 있고 이는 세계 경제의 핫 이슈가 됐다. CBS 노컷뉴스는 3차례에 걸쳐 세계 자동차 산업의 현황을 정리하고 대응책을 모색해 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싣는 순서]

1. 할부금융의 덫인가? 자동차산업 공멸의 그림자
2. 벼랑 끝에 내몰린 미국의 자동차 산업
3. 자동차에 발목 잡힌 한미 FTA, 실상은?

''봉고트럭''은 세계적으로 연간 3만 5천대가 수출되는 ''월드카''다. 80년 출시돼 28년간 기아차를 이끌어 온 효자 상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봉고는 픽업의 나라라는 미국 땅은 아직 밟아본 적이 없다. 픽업은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잘나갈 때는 30~40% 정도를 점유한 북미 대륙을 상징하는 차종이다. 물론 ''빅3''도 간판 픽업트럭을 한 모델씩 가지고 있다. 포드의 F150, GM의 GMC, 크라이슬러의 DODGE다. 그러나 유독 세계 자동차산업 5위국인 한국을 대표하는 픽업인 봉고는 아직 미국 대륙을 달리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 한국의 간판 픽업 ''봉고트럭'', 28년간 미국 땅 못 밟은 사연은?

[BestNocut_L]미국의 픽업과 사양이 달라 시장성이 없어서이기도 하지만 제도적으로는 높은 관세 때문이다. 한국의 픽업트럭이 미국에 수출되려면 25%에 이르는 관세를 물어야 한다. 일반 승용차에 대한 관세가 2.5%이니까 정확히 10배나 되는 막대한 비율이다. 아마 이런 관세만 아니었다면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도 한번쯤 수출용 픽업 생산을 시도해봤을 것이다.

그런데 한미간에 체결된 FTA를 보면 이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는 유감스럽게도 그대로 살아 있다. 픽업트럭에 대한 관세를 10년내에 단계적으로 철폐한다고는 하지만 3000CC 미만 승용차에 대한 관세를 즉시 철폐하기로 하고 3000CC 이상은 3년 내에 철폐하기로 한 것에 비하면 여전히 장애물을 존치 시킨 것이다.

어떤 의도건 간에 미국이 자국의 픽업트럭 시장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밖에는 볼 수 없는 대목이다.

◈ FTA 비준 시 미국차의 한국내 가격 13% 낮아져

자동차 산업만 두고 보면 한미 FTA의 최대 수혜자는 미국산 자동차 메이커다. FTA에 따르면 한국은 미국에서 수입돼 오는 모든 종류의 차량에 대해 기존 8%의 관세를 즉시 철폐해야 한다. 또 대형차에 불리한 여러 세금제도도 조정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100% 대형차인 미국산 차량이 이득을 보게 된다. 2000CC 이상 차량의 개별소비세를 기존 10%에서 5%로 낮춰야 하고 자동차 누진세도 폐지해야 한다.

이렇게 수입관세가 철폐되고 대형차에 붙는 세금이 인하될 경우 미국산 자동차의 국내 판매가격은 지금보다 13% 정도 인하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미국 자동차 메이커들이 한미 FTA 때문에 큰 이득을 보게 됐음에도 불구하고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오히려 미국 자동차 보호를 위해서는 한미FTA 를 개정해야 한다는 이상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는 우선 정치적인 원인 때문으로 보인다. 자동차 업계의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로서는 파산 위기에 몰린 자동차산업을 살리기 위한 여러 방안의 하나로 한미 FTA의 개정을 요구하게 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정치적인 배경 말고도 한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착시 현상이 보다 근본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 미국차, 한국서 5천대 팔았다?···사실은 13만 6천대 팔아

우선 한국은 수입차와 국산차를 차별한다는 오해가 존재한다. 실제로 미국은 FTA 협상시 한국에서는 수입차가 고가품이어서 소비가 활발히 되기 어려운 만큼 이런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국은 수입차나 국산차에 모든 세제를 똑같이 적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의 수입차 시장은 2002년 1만 6천대에서 올해 7만대로 매년 30% 이상 급증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보다도 수입차 점유율이 높은 상황이다.

올해 10월까지의 수입차 점유율을 보면 일본은 4.5%인데 비해 한국은 6.6%다. 또 다른 오해는 "한국은 미국에 매년 수십만 대의 차량을 수출하면서도 정작 미국차는 4~5천대 정도밖에 수입하지 않고 있다"는 오바마의 발언이 대표하듯 한미 양국간 자동차 무역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차를 4~5천대밖에 수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완벽한 착시현상이다. 지난해 한국에서 판매된 미국차는 4~5천대가 아니라 정확히 13만 6647대다. 미국의 GM이 72.03%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GM대우가 12만 6924대를 팔았고, 포드와 그 계열사인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그리고 GM과 그 계열사인 사브가 9723대를 팔았다.

다시 말해 미국에서 건너온 빅3의 자동차 외에도 미국 기업인 GM대우, 재규어, 랜드로버, 볼보, 사브가 만들어 판 차도 분명하게 ''미국차''라는 얘기다. 이들 미국차의 한국시장 점유율은 13.1%나 된다. 이는 한국 자동차의 미국내 점유율 4.8%와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 한국차만 실속?···현대차 미국서 8800명 고용

마지막으로 한미간 자동차 게임에서 한국만 실속을 챙기고 있다는 주장 역시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이는 한국 자동차 업계가 미국내 투자와 고용확대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경우 미국 앨라배마 등을 포함해 10여 곳에 생산, 연구, 시험 시설을 확충해 모두 8800명의 미국인을 고용했다.

특히 GM대우가 한국에서 자동차를 만들어 파는 것과 같이 현대차도 지난해 미국 판매량의 46.6%인 21만 여대를 현지에서 생산해 판매했다. 내년말 기아차 조지아 공장이 가동되면 현대기아차그룹은 연간 차량 생산 30만대에 부합하는 경제적인 기여를 미국에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여러 오해들이 불식된다하더라도 미국차가 한국에서 대접을 받기 위해서 해결해야할 진짜 문제들이 있다. 바로 미국산 자동차들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 美언론도 "미국산 자동차 왕따 배경은 저품질 저연비" 지적

지난해 볼보, 사브 같은 미국 소유의 유럽 메이커가 아닌 미국에서 생산된 차가 국내에서 판매된 양은 6235대다. 99년 761대에서 8배 정도 늘어난 규모다. 그런데 이 기간 전체 수입차량이 판매된 물량은 2401대에서 53390대로 21배나 성장했다. 다시 말해 전체 수입차 판매가 급증하는 동안 미국산 자동차의 수입은 사실상 정체됐다는 얘기다. 실제로 99년 전체 수입차에서 미국산 자동차가 차지한 비중은 31.%였지만 지난해에는 11.7%로 대폭 감소됐다.

이에 대해서는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소비자에게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점 말고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블룸버그 등 미국언론들 조차도 "한국인들이 미국 자동차를 사지 않는 이유는 저품질, 저연비, 소비자 선호도 무시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미국 자동차 산업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것만이 지금의 자동차 위기 국면을 헤쳐 나가는 유일한 길이다.

한국자동차협회 강철구 이사는 "한미 FTA는 한국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협상이 결코 아니다"며 "국내시장에서 미국차의 경쟁력이 제고되면 고질적인 한·미 자동차 무역 불균형과 한·미 통상마찰 완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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