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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 하루 만에 재개발 고시…인천 노동문화유산 철거 위기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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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재' 하루 만에 재개발 고시…인천 노동문화유산 철거 위기 '후폭풍'

    핵심요약

    인천시가 민주화·노동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옛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건물을 철거한다는 내용의 재개발정비사업을 승인·고시해 후폭풍이 거세다. 인천지역 89개 시민사회단체는 긴급성명을 내 인천시가 재개발조합과 시민사회 사이를 중재하겠다고 발표 한 지 하루 만에 입장을 뒤바꿨다며 강력 반발했다. 사태가 커지자 박남춘 인천시장이 직접 나서 해결하겠다며 뒤늦게 사태 진화에 나섰다.

    인천 동구 지역 학생들이 제작한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 촉구 그림 카드.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 범대책위원회 제공인천 동구 지역 학생들이 제작한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 촉구 그림 카드. 인천도시산업선교회 존치 범대책위원회 제공

    인천시가 민주화·노동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옛 인천도시산업선교회(현 미문의일꾼교회) 건물을 철거한다는 내용의 재개발정비사업을 승인·고시해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인천시가 교회 존치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철거를 요구하는 재개발조합 사이를 중재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어서 시민사회가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인천 89개 시민사회단체 "인천시, 중재하겠다더니 하루 만에 입장 바꿔…기만행위" 

    교회 존치를 요구하는 지역 내 89개 시민사회단체들(이하 범대위)은 20일 긴급성명을 내 "인천시가 배신행위를 했다"며 "박남춘 시장이 직접 나서 사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인천시가 교회 건물 철거 결정은 부동산개발이 압도하고 있는 지금의 한국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며 "박 시장 명의로 나온 고시는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반민주적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목소리 높였다.
     
    앞서 전날 인천시는 동구 화평동 1-1번지 일원 18만㎡에 지하 3층~지상 29층 규모로 공동주택 3183가구를 짓는 '화수화평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을 고시했다. 이 고시에는 교회 건물을 이전하고, 기존 자리에 기념표지석을 세우는 등의 방식을 교회와 협의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실상 교회 철거를 고시한 것이다.
     
    이 재개발계획은 2009년 처음 추진됐지만 부동산 경기 악화 등의 여파로 지지부진하다 2019년 시공사가 선정되면서 재추진되고 있다.
     
    범대위는 시가 지난 18일 보도자료를 내 "조합과 교회의 원만한 합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적극 역할을 다하겠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입장을 뒤집은 점을 들어 '기만행위'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 민주화·노동운동 역사의 산실 '인천도시산업선교회'
     1961년 설립된 인천산선은 이 교회 담임목사였던 고(故) 조지 오글(1929~2020·한국 이름 오명걸) 목사가 1974년 11월 '인민혁명당 조작 사건(이하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양심수들을 위해 공개 기도회를 열었다가 박정희 정부에 의해 강제 추방된 역사를 갖고 있다.
     
    인혁당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의 조작에 의해 도예종 등의 인물들이 기소돼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날조사건이다. 국가가 법을 이용해 무고한 국민을 살해한 사법살인 사건이자 박정희 정권 시기에 일어난 대표적 인권 탄압 사례로 손꼽힌다.

    이 교회는 1978년 파업 중이던 여성 노동자들에게 반대파가 똥물을 뿌린 '동일방직 사건' 당시 조합원들이 피신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 교회의 총무이자 동일방직 노조 탄생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조화순(86) 목사는 동일방직 사건에 대한 강연을 했다는 이유로 연행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정부는 2007년 조 목사에게 대한민국 인권상 국민훈장을, 올해 6월 6·10민주항쟁 기념식에서는 오글 목사에게 '민주주의 발전 유공 포상' 국민포장을 수여했다.
     
    1980년대에는 일꾼노동문제자료실을 운영하며 노동조합 결성의 필요성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 고 김근태(1947~2011)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김지선(66) 노회찬재단 이사 등 수많은 민주화운동가와 노동운동가들이 이 곳을 거쳐 갔다.
     
    교회 소유권자인 기독교대한감리회유지재단도 최근 재개발조합 측에 교회 건물의 보존을 요청하는 의견서를 전달했다. 의견서에는 경기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교회와 인천산선 건물은 우리나라 민주화와 관련해 반드시 보존해야 하는 교회라는 내용이 담겼다. 제암리 교회는 일제 강점기인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다. 즉 인천도시산업선교회 건물이 우리나라 독립운동과 밀접한 제암리 교회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 것이다.
     

    "재심의 또는 교회 존치" 72세 민주화운동 원로 28일째 단식 투쟁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모습. 주영민 기자인천도시산업선교회 모습. 주영민 기자

    교회 존치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이 교회에서 4대 총무를 지낸 김정택(72) 목사가 교회 철거에 반발해 지난달 22일부터 28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김 목사는 신학대생이었던 1977년 학내 시위를 벌여 긴급조치 9회 위반 혐의로 입건됐으며, 1979년에는 대통령 직선제, 유신헌법 폐지 등을 외친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다. 그는 '도시계획위 재심의' 또는 '교회 존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단식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김 목사의 목숨을 건 단식 투쟁에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도 릴레이 동조 단식, 릴레이 1인 시위 등을 벌이고 있다. 이날 인천작가회의도 동조 단식을 선언하며 인천시 규탄 성명을 냈다.
     

    박남춘 인천시장 "공존의 지혜 모으겠다" 뒤늦게 진화

     
    박남춘 인천시장 페이스북 캡처박남춘 인천시장 페이스북 캡처

    사태의 심각성을 뒤늦게 파악한 박남춘 인천시장도 합리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박 시장은 이날 직접 긴급회의를 주재해 시민사회의 반발을 잠재울 대책을 논의했다.
     
    박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지역주민들의 오랜 숙원을 푸는 것도, 민주화 노동운동 산실인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가치를 보전하는 것도 모두 중요하다"며 "어느 일방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건설적인 협의체를 구성해 공존의 방식을 찾도록 행정역량을 재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책임성을 갖춘 대표성 있는 단위의 협의체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새롭게 논의를 시작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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