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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머문다고 지방에 도움? '생활인구 제도' 효과성 의문

3시간 머문다고 지방에 도움? '생활인구 제도' 효과성 의문

편집자 주

'수도권 집중률 1위 국가' 대한민국이 쪼그라들고 있다. 지방은 텅 빈 상황에 살 만한 공간마저 줄어들며 경쟁도 치열해졌다. 2000년대 이후 국토균형발전 약속을 수차례 반복해 온 정부는 '지방시대'를 선언하고 42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지만, 10년간 지방을 빠져나간 청년은 71만 명에 달한다. '지방소멸'이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는 경고가 나오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CBS노컷뉴스는 축소사회가 되기까지, 그 복잡한 인과관계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진짜' 해법을 찾는 여정을 시작한다.

[2025 축소사회, 어디까지 왔나⑥]

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 박준현 기자서울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 박준현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지방소멸 위기, 수도권도 예외는 아니다? 멈추지 않는 '인구 블랙홀'
②"지방엔 아무것도 없다", "서울공화국이 문제다"…어디까지 사실?
③'교도소'라도 유치해야 할 판…'지방 일자리' 위기, 청년이 없다
④"지자체 절반 소멸" 한국도 日 따라가나…해답은 '지방'에 있다
⑤'한강의 기적' 양날의 칼로 돌아왔다…'K-지방소멸' 문제점은?
⑥3시간 머문다고 지방에 도움? '생활인구 제도' 효과성 의문
(계속)

#. 오늘도 과천에 있는 회사에 출근하는 A씨. 오후엔 강원도 홍천군 출장이 예정돼있다.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 A씨는 홍천으로 출발했고 밤 늦게 업무를 마친 뒤 서울에 있는 집으로 퇴근했다. 이날 A씨는 시간대별로 서울시·과천시·홍천군 생활인구로 집계됐다. 이후 A씨는 주말을 맞아 생전 처음 충북 괴산군으로 가족 나들이를 가서 반나절 동안 좋은 시간을 보내며 늦은 오후 서울로 돌아왔다. 이날 A씨를 포함한 가족들은 마찬가지로 괴산군 생활인구로 집계됐다.

생활인구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거나 체류하면서 생활을 영위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28일 인구감소지역특별법에 따르면 특정 지역에서 △주민으로 등록된 인구 △통근·통학·관광·휴양·업무 등의 목적으로 월 1회, 하루 3시간 이상 거주한 인구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 모두 그 지역의 생활인구로 집계된다. 생전 처음 가본 지역도 3시간 이상 머무르면 그 지역의 생활인구가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지역활동 인구수를 계산하는 '생활인구 제도'는 현재 지방소멸 대응책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이동성에 발 맞춘 트렌디한 정책' 평가

연합뉴스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생활인구 제도가 기술의 발전에 따라 도입된 신개념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하혜영 국회입법조사처 정치행정조사실 박사는 현안분석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생활인구 제도를 도입한 배경엔 교통·통신이 발달함에 따라 이동성과 활동성이 증가하는 생활유형을 반영하기 위함"이라며 "(생활인구는 특정 지방에) 정주하지 않고도 지방 활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구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그동안 특정 지역에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하는 '상주인구'를 중심으로 인구의 양적 확대에 초점을 맞춰 왔지만, 이는 국가 전체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지역간 불필요한 경쟁만을 부추겼다는 분석이다.

특히 상주인구가 갑자기 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해 체류 및 유동인구 등 인구의 이동성을 반영할 수 있는 인구관리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생활인구 개념이 생겼다고 덧붙였다.

박인권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는 "생활인구 개념은 한 지역에서 실제로 활동하는 유동인구를 포착해 관광 또는 체험 등의 목적으로 지역을 일시 방문하는 사람들의 수요에 맞는 인프라와 서비스 공급을 계획하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관광객 유치에 집중하는 지방들

양양 송이·연어 축제 전경. 양양군 제공양양 송이·연어 축제 전경. 양양군 제공
실제로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은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해 관광상품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행정안전부에서 발표한 2024년도 3분기 생활인구 산정 결과에 따르면 지역인구수 대비 생활인구가 가장 높은 배수로 나타나는 지역은 강원도 양양군, 경기 가평군, 강원 평창군 등 관광지에 집중돼 있다.

특히 여름휴가철인 2024년 8월 강원도 양양군의 주민등록인구는 2만 7578명이지만, 생활인구는 약 28배 높은 79만 1737명으로 집계됐다.

괴산군 역시 2024년 3분기 기준 주민등록 인구수인 3만 6천 명의 10배가 넘는 38만 1331명을 생활인구로 집계했다. 이는 충북도 도내 군 지역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괴산군청의 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생활인구가 높게 집계된 것은 괴산 지역에서 자주 열리는 축제, 체육대회 등이 원인이라고 분석한다"며 관광객들이 많아진 것이 생활인구 증가에 큰 영향을 줬다고 답했다.

이에 '생활인구의 개념과 활용 트렌드' 논문의 저자인 이제승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도 "생활 인구가 많은 지역들을 살펴보면 관광 쪽으로 유명한 지역이 많다"며 "행정안전부에서 진행하는 정책은 대부분 관광 쪽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제한적인 부분이 있고, 근본적으로 지방소멸을 해결하기 위해선 산업 인프라를 기준 삼아 그곳의 상주인구들이 선호하는 환경, 문화, 교육 환경을 갖춰주는 것 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생활인구 신뢰성 확보 어려워"

충북 괴산군의 한 시장. 손님이 없어 시장이 텅 비어있다. 박준현 기자충북 괴산군의 한 시장. 손님이 없어 시장이 텅 비어있다. 박준현 기자
이 때문에 생활인구 제도를 인구위기 대응 계획에 적용하는 데에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권규상 충북대학교 도시공학과 교수는 "생활인구는 '바람직한 방향'이지만 본격적으로 (인구위기 대응) 계획에 도입하는건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라며 거리를 뒀다.

그는 "도시계획분야에서 그동안 계획 수립 시 상주인구의 과대 집계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며 "과도한 집계는 시가화 예정용지를 과도하게 확보하게 되고 인구가 줄어듦에도 도시의 외연적 확장을 부추겨 비효율을 야기시킨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생활인구 집계의 통계적 타당성이 논쟁거리라는 점을 짚으며 "통신사가 공급하는 정보에 의거해 생활인구를 추적하는데, 가명정보 결합을 통해 더욱 정교한 측정방법이 제안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전수화를 시도하거나 통계적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채로 정책에 활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승 교수 역시 "처음 만들 때 되게 비판적으로 말했었다"며 "실제로 각 지방의 주민등록인구에 비해 생활인구가 과집계되는 경향이 있어서 어떤 개념을 정의하는 기준으로는 신빙성이나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지역이 행안부에서 지원받는 소멸 방지 기금을 사용하는 내역을 살펴보면 대부분 관광 시설 관리, 개선 등을 포함한 유지 관리 비용"임을 지적하며 "투자를 해서 지역의 경쟁력을 만들 수 있는 기획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일본 관계인구-한국 생활인구 차이점은?

일본의 한 거리. 연합뉴스일본의 한 거리. 연합뉴스
지난 2014년 '마을·사람·일자리 창생법'을 제정한 일본은 본격적으로 지방소멸 문제 해결에 나섰다. 타카하시 히로유키는 그의 저서 '도시와 지방을 섞다:타베루 통신의 기적'에서 처음으로 '관계인구' 제도를 제시했다. 일본의 관계인구는 '특정한 지역에 계속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관계가 있는 인구'를 뜻한다.

생활인구가 일회성 방문도 인정하고 집계하는 반면, 관계인구는 상주인구, 관광인구를 제외하고 계속적이고 장기적인 유대를 맺는 제 3의 인구군만 집계하는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일본은 관계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농촌 체험 프로그램 운영 △지방 워케이션 프로그램 제공 △지역 SNS 관리자를 타 지역 사람을 채용 등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 국토교통성의 조사에 따르면 관계인구는 2021년 기준 1800만 명 이상으로 꾸준히 늘었고 관계인구가 많은 지방일수록 수도권에서 해당 지방으로 이주하는 인구가 많아진다는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윤병훈 LH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대한민국 생활인구는 일본의 관계인구에서 많은 부분을 참고한 제도 같다"며 "우리나라는 통신데이터를 바탕으로 집계하지만 일본은 한 번의 방문이 단계적으로 정주까지 이어지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본도 과거와 같이 인구수를 늘리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대체성을 띄고 나온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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