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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병원들의 진단서 발급 비용이 최대 40배나 차이가 나는데도, 마땅한 기준이나 규제는 전무한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난 주말 서울 강남의 한 종합병원에서 종양제거 수술을 받은 김동수(35. 가명)씨. 김씨는 보험금 청구를 위해 병원에서 일반진단서를 발급받으려다 황당한 경험을 했다.
병원장 직인이 찍힌 A4용지 한 장짜리 일반 진단서 발급 비용이 3만원이나 하는 것도 어리둥절했지만, "진단서 발급 비용이 너무 비싼 것 같다"고 푸념하자 "많이 떼면 에누리도 가능하다"는 답변이 병원 관계자로부터 돌아왔기 때문.
김씨는 "병명(病名) 한줄 적힌 종이 한 장짜리 진단서에 왜 그렇게 비싼 비용을 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고개를 저었다.
◈병원 따라 진단서 발급비 40배나 차이이처럼 들쑥날쑥한 병원 진단서 발급 비용 문제는 비단 이 병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같은 진단서라도 어느 병원에서 발급받느냐에 따라 최고 40배까지 차이가 난다.
지난해 서울시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정감사 당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같은 진단서라도 그 발급 비용은 병원에 따라 20~40배 차이가 났다.
실제로 서울 강서구 A산부인과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으려면 20만원을 내야하지만, 서울 은평구의 B요양병원에선 5천원을 받고 있다.
상해 진단서나 장애인연금 청구용 진단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병원에 따라 발급 비용이 최고 10배까지 차이가 난다.
서울 성북구 C정형외과의 상해진단서(전치 3주 이상) 발급 비용은 40만원이지만, 서울 노원구 D의원의 비용은 2만원이다.
또 같은 C정형외과에서 상해 진단서를 떼어도 '전치 2주 이하'일 때는 25만원을 받고 있다.
◈비싼 기준도, 싼 기준도 없어들쭉날쭉한 진단서 비용 때문에 환자들은 애를 먹고 있지만, 정작 병원들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의료법상 진단서 발급비 같은 '비급여항목비'는 개별 의료기관이 정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병원에 비해 싸든 비싸든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앞서 소개된 C정형외과 관계자는 "진단서 발급은 보험 혜택이 안 되는 비급여항목이기 때문에 병원에서 마음대로 가격을 정할 수 있다"며 "수수료가 비싸면 수수료가 싼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말했다.
인근 병원보다 발급비가 2배 비싼 서울 동작구 E내과 관계자도 "진단서 발급비용은 병원이 정하는 기준대로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단서 비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병원 역시 특별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소개된 B요양병원 원무과장은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우리 병원이 그렇게 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값싼 진단서는 취급 안 한다?이같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없던 것은 아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6월부터 보험금 청구시 진단서 대신 '진료 확인서'나 '통원 확인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했다.
진료 확인서의 경우 1천~4천원이면 발급받을 수 있기에 의료 소비자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마저도 병원들의 '딴죽'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환자가 진료확인서를 떼어달라고 해도 일부 병원에서 "진단서밖에 발급이 안된다"며 사실상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서울 동작구 F내과에 진료확인서 발급을 요구했지만, 병원 관계자는 "우리는 진료확인서는 발급하지 않고 진단서만 발급한다"며 "필요하다면 진단서를 발급해가라"고 말했다.
심지어 굳이 진료 확인서를 떼고 싶으면 정식 진료를 받고 가라는 병원도 있었다.
지난 21일 찾아간 서울 관악구 G내과의 경우 1천원짜리 진료 확인서를 떼어달라 하니 "반드시 의사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할 수 없이 만난 의사는 "진료확인서 떼러왔다"는 얘기에 "네" 한마디만 던졌지만, 진료비 3,700원이 청구됐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정부 "양식과 수수료 기준 마련하겠다"지만 '글쎄'보건복지부는 진단서 발급 비용을 놓고 논란이 계속되자 "오는 8월까지 의료기관 발급증명서 양식과 수수료 기준을 내놓겠다"고 지난달말 발표했다.
하지만 현실화 전망은 불투명하다. 해당부처 관계자는 "의료단체와 시민단체, 학계 등 관련기관들에 적정선 검토를 위한 자료를 요청했다"면서도 "합의가 이뤄질 지 미지수여서 시행 시기를 단정하긴 힘들다"고 털어놨다.
우여곡절 끝에 진단서 발급비 기준이 마련된다 해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현행법상 진단비 발급비가 '비급여 항목'이기 때문에 대학병원 등 민간병원에는 이를 지키라고 강제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건강세상네트워크 조경애 대표는 "공공병원에만 적용한다 해도 민간병원은 계속 높은 비용을 받을 것"이라며 "정부 권고안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정부의 수수료 기준이 마련될 경우, 진단서 발급량이 많은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 등 2차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이를 지키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