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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만 13개 섬, 매립됐지만 흔적은 남았다



전남

    광양만 13개 섬, 매립됐지만 흔적은 남았다

    신년기획② 광양만 매립부지 내 흔적을 찾아서

    전남 광양만이 포항제철(포스코의 전신) 제2제철소 부지 조성을 위해 매립된 지 올해로 30년째를 맞았다. 1983년 12월 끝까지 고향을 지켰던 마지막 섬 주민이 이주했고, 이듬해 3월 제철소 종합착공식이 열렸다. 30년이 지난 지금 광양만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사자성어가 딱 들어맞는다. 김을 양식하던 바다와 섬을 메워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철을 생산하는 공장이 들어섰다. 30년이 흐른 지금 매립은 역사로 기록됐고, 매립의 흔적은 사라져가고 있으며, 사람들은 남았다.

    전남CBS는 2014년 신년기획으로 모두 3회에 걸쳐 광양만 매립 과정과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는 연속기획 ‘광양만 매립 30년’을 마련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광양만 뻘밭에 모래기둥 심어 제철소를 짓다
    2. 광양만 13개 섬, 매립됐지만 흔적은 남았다
    3. 광양만 매립 30년 압축적 성장과 오늘

    “여기가 학교 옛터인데, 정문 소나무가 아직 이렇게 있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전남 광양만 매립으로 실향민이 된 박선호(67) 씨는 매립부지 내 주택단지에서 백운대로 오르는 산책로 한 편의 나무 한 그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 폐교가 된 금도국민학교 정문 소나무

     

    지금은 폐교가 된 금도국민학교. 당시 정문을 양쪽에서 지키던 소나무 가운데 하나가 용케 살아있다며 어린아이 마냥 나무 밑동을 끌어안았다. 얼핏 보아도 백년은 족히 돼보였다.

    박 씨에 따르면 당시 학교 운동장에 심어져 있던 플라타나스 나무 4그루도 아직까지 상하지 않았다. 저마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높이 솟아 있었다.

    30여 년 전 이곳 금호도에는 도촌, 내동, 대동, 양도에 300여 세대가 살았다. 1872년(고종 9년)에 제작된 광양현 지도에 금호도 지역을 문헌상 최초로 ‘금도(金島)’라고 표기했다. 1947년 설립 당시 옛 지명을 본뜬 금도국민학교는 4개 부락 중 대동에 위치해 있었다. 1984년 폐교 당시 학생수는 8학급 310명.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무가 금도국민학교 정문을 지킨 소나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주민들의 기억 속에만 있다.

    ◈ 기이하고 웅장한 내동부락 당산나무

    과거 내동부락은 지금 광양제철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가 들어선 학교단지로 바뀌었다. 초등학교 뒷산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산 중턱에 딱 보아도 범상치 않은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가지가 뻗어나가는 모양이 예사롭지 않은 탓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얼핏 보면 세 그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 뿌리에서 자랐다. 나무 주위에는 산책로를 구분하는 울타리가 쳐져 있고, 나무 아래로 넓은 평상이 있다.

    맞은 편 길에 놓인 벤치에 앉아 나무를 올려다보면 수천갈래로 뻗은 나뭇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갈기갈기 찢어진 듯 보여 장관이다.

     

    과거 금호도 사람들은 이 나무에 신(神)이 깃들었다고 하여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로 불렀다.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이 나무 아래에서 농악놀이 한마당이 펼쳐졌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집집마다 돌며 액운을 빌고 새해 가족의 건강과 융성을 빌었다.

    이주민들은 “여름에는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나무 그늘에서 더위를 식혔고, 아이들은 나무를 놀이터 삼아 오르락내리락 하며 놀았다”고 말했다.

    옛 추억이 아쉬운 듯 돌아내려오는 모퉁이에는 이주민들이 살았을 것으로 보이는 석조건물의 흔적이 흙더미와 낙엽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 광양제철소 공장 내 ‘서취도’ 윗머리

    광양제철소 공장부지 안에도 매립의 흔적은 있다.

    제철소 건설을 위해 바다를 매립하는 과정에서 13개 섬 가운데 11개 섬이 하나둘 사라졌다. 사라진 섬에서 나온 돌과 모래로 바다를 메웠기 때문에 ‘묻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이처럼 대부분의 섬이 희생됐지만 광양제철소 내 제선부 고로공장 앞에 ‘서취도’는 남았다. 섬 전체가 남은 것은 아니지만 매립으로 솟아오른 지면보다 높은 윗머리는 그대로 보존됐다. 광양제철소는 여기에 섬모양을 닮은 돌비석 하나를 세워 이곳이 매립과정에서 남겨진 유일한 섬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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