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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도 못받아요"…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 급증



사회 일반

    "최저임금도 못받아요"…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 급증

    편집자 주

    당장이라도 올 것 같던 최저임금 1만원 시대, 이제야 코앞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은 한치라도 나아졌을까. 노동자들의 소득안전망은 한뼘이라도 뿌리를 펼쳤을까. CBS노컷뉴스는 최저임금 노동자들을, 최저임금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는 사람들을, 그리고 그들의 삶을 흔드는 위협들을 찾아살핀다.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 생존을 걱정하지 않는 세상을 찾으며

    [빛바랜 꿈,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넘으며④]
    최저임금도 못 받는 '제도 밖 노동자' 급증
    플랫폼 노동자·특고·프리랜서 등 800만 추정…정부는 통계도 無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 임금까지 견인할 '척도'
    화물운송 '안전운임제'처럼…'제도 밖 노동자' 위한 안전망 시급

    식당 배달원. 연합뉴스 식당 배달원. 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5년 전 가계부 비교해보니…'벼랑 끝' 최저임금 노동자
    ②최저시급 올라도 내 월급 그대로 '숨은 방정식'
    ③그나마 기대는 '최저임금' 앞장서서 힘빼는 정부
    ④"최저임금도 못받아요"…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 급증
    (계속)


    "'시간으로 녹이자', 우리(배달 라이더)끼리는 그렇게 얘기해요. 오늘은 시간당 벌이가 시원찮으니 15시간, 16시간, 17시간이라도 일을 해서 돈을 벌겠다는 거예요."
     
    중학생 딸과 아내, 세 식구의 벌이를 책임지고 있는 15년차 배달 라이더 소진옥(44)씨는 하루 12시간 이상 땡볕 아래 도로를 달리며 쉴 새 없이 음식을 나른다. 한 달에 쉬는 날은 고작 4일 남짓, 26일 이상 출근한다. '콜'(배달 주문)을 하나라도 더 잡는 게 유일한 목표다. 더 빠르게 달려야 더 많이 벌 수 있다. 안전하고 싶어도 안전은 뒷전, 수익이 우선이다.
     
        그렇게 일해 버는 돈은 338만 원. 기름값을 비롯해 제반비용을 빼고 나면 실제로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278만 원이다. 하루 12시간씩 한 달에 26일을 일하니, 시급은 '880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시급 9620원)도 안되는 금액. 그래서 요즘은 출근시간을 앞당겨 새벽 5시 30분부터 배달을 해 14시간 넘게 일하고 있다.
     
    웹툰 스토리작가 A씨도 오전 8시에 업무를 시작해 오후 8시까지 최소 11시간을 일한다. '창작'의 특성상 밤새 '브레인 스토밍'을 하는 경우도 잦다. 회사에서 스토리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추가 수당 없이 언제든 수정 업무를 진행한다. 매주 마감 날짜가 있다 보니 연차를 쓰는 건 꿈도 못 꾼다. 명절에 남들처럼 쉬는 건 허황된 바람이다.
     
    회사와 도급제로 계약을 맺은 A씨에게 주어지는 월급은 196만 원. 밥먹듯 야근을 하고 일주일에 하루 쉴까 말까 해도, 최저임금(월 201만 원, 주 5일·일 8시간 근무 가정)도 못 받는다.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 800만 추정…정부는 통계조차 없어


    최저임금이 올랐다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이처럼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 구조가 변화하면서, 도급제로 일하는 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등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들은 점차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 규모에 대한 통계조차 제대로 집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미 지난 2018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제도 밖 노동자'들이 늘어난 현실에 맞게, 노동자 '지위 분류'를 개정해 제도 밖 노동자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라고 권고했다.

    이에 따라 통계청은 2021년 말 분류 기준을 개정했다. 하지만 개정된 기준에 따라 분류해야 할 법적 강제성은 없어, 이제야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 규모에 대한 통계를 산출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돌입한 정도다. 이처럼 실태 파악도 되지 않고 있다 보니, 이들의 적정 임금에 대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질리 만무하다.
     
        그러다 보니 노동계나 국회의원들이 자체 설문조사나 국세청 사업소득 원천징수 현황을 분석해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 규모를 어렴풋이 추산하고 있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실에 따르면, 특고(특수형태근로종사자)·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등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는 △2017년 563만 명 △613만 명 △2019년 668만 명 △2020년 704만 명 △2021년 787만 명으로 늘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실은 2022년 '제도 밖 노동자'를 887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저임금도 못 받는 현실…1년 전보다 오히려 낮아진 임금


    그렇다면 이들은 어느 정도의 임금을 받고 있을까.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와 한국노총중앙연구원이 플랫폼노동자 6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2년 플랫폼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의 월평균 실질 수입은 230만 원이었다.
     
    하지만 여기 '제반 비용의 함정'이 있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기름값·수리비·보험료 등의 경비를 직접 부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제반 비용을 빼야만 순수입을 도출할 수 있다. 그렇게 계산한 지난해 월평균 실질수입은 216만 원으로, 2021년 230만 원보다 오히려 줄었다.
     
    이중에서도 택시기사의 월평균 실질수입은 지난해 194만 원(시급 8100원), 가사노동자는 168만 원(시급 8700원)으로 최저임금에 비해 시간당 1000원 이상 낮은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단순 계산을 거친 표면적인 수치일 뿐, 실상은 더 열악하다. 플랫폼 노동자 등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들의 경우 대부분 '건'당 임금을 받는 도급제로 계약을 맺고 있다. 따라서 계산되지 않는 '그림자 노동' 시간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실제 임금은 훨씬 더 낮다.
     
    방과 후 강사로 일하는 이진욱(53)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학교 여러 곳에서 방과 후 강사 및 시간 강사로 풍물을 가르치고 있는 이씨의 작년 순수입은 총 2400만 원, 즉 월 200만 원으로 최저임금 미만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실제 수업을 한 시간만 산정한 것. 교재나 서류를 만들고 수업을 준비하는 데 한 달에 10시간 이상을 할애하지만, 이에 대한 임금은 받지 못했다.
     
    3년차 방송작가 B씨 또한 "208시간 기준 월급 198만 원으로 계약을 했지만, 사실상 하루에 10시간 이상 매일 일을 해서 300시간 가까이 일을 한다"면서 "일정 시간이 넘어가면, 추가 근무에 대한 수당 없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B씨는 "수당이 안 나온다고 출근을 안 할 수는 없지 않냐, 그냥 눈물을 흘리면서 일을 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 임금까지 견인할 '척도'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전문가들은 최저임금부터 적정 수준까지 올려야만,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들의 소득 인상까지 견인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과정은 곧,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최소한의 소득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이사장은 "2018년이나 2019년, 최저임금이 많이 올랐을 때 (최저임금을 적용받지 않는 노동자들을 비롯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특히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이 많이 올라갔다"면서 "최저임금 인상이 분명히 최저임금 제도 밖 노동자 임금에까지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오민규 연구실장 또한 "(최저임금은) 최소한 이 정도의 삶은 보장해야 된다라고 하는 사회적 합의"라면서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플랫폼 노동자, 특고, 프리랜서들 전반에 대해서도 '최소한 최저임금이 올라간 만큼 이들에 대한 대우와 대접이 달라져야 되겠구나' 하는 이런 인식을 견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더 나아가 화물운송 안전운임제처럼, 최저임금 제도 안팎을 망라한 노동자들의 소득 안전망을 고민해야 할 때라는 지적도 나온다. 화물운송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주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정해, 과로의 위험에 내몰리는 화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김종진 이사장은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 확대·강화하는 동시에, 최저임금 밖 노동자들에게도 안전운임제 같은 표준소득제, 최저소득 보장제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특고·플랫폼 노동자·프리랜서 등의 표준임금, 최저소득이 다양한 방식으로 보장되고 있다. 뉴욕의 경우 우버 등 승차공유 기사에게 '최저 표준 운임 제도'를 적용했다. 미국 뉴욕의 우버 기사들은 실제로 운행거리와 시간, 유효 운행률(승객을 태우고 운행한 시간의 비중)을 고려해 산출한 '최저 표준 운임'만큼의 임금을 받고 있다. 뉴욕시 택시-리무진 위원회(TLC)는 이 제도로 인해 임금이 약 85% 증가하고, 연평균 6천 달러 이상의 소득이 증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우리나라라고 이러한 움직임에 발맞출 수 없는 건 아니다. 현행법 또한 이들을 위한 안전망을 구축하게끔 제안하고 있다.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은 "임금이 통상적으로 도급제나 그 밖에 이와 비슷한 형태로 정하여져 있는 경우로서 제1항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하다고 인정되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최저임금액을 따로 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사실상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오 연구실장은 "법을 새로 만들 필요 없이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을 현실화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4대 보험도, 연차도, 수당도 안 바라요. 그걸 바라는 건 사치고요. 진짜 다 필요 없고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한테 적어도 최저임금만큼이라도 줬으면 좋겠어요." 한낮 기온 30도를 넘던 날 새벽 5시 30분에 출근했다는 배달기사 소진옥씨는 작디 작은 소망을 내뱉고서, 또다시 음식을 나르러 더위를 뚫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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