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봉천동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 과학수사대원들이 현장을 감식하고 있다. 연합뉴스농약살포기로 추정되는 도구를 화염방사기 삼아 서울 한복판 아파트에 불을 지른 방화 사건으로 피의자가 사망하고 6명의 부상자가 나온 가운데 해당 아파트에 스프링클러와 완강기 등 소화·안전장치가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전문가 분석이 나온다.
화재가 집중적으로 발생해 2명의 중상자가 나온 해당 아파트 4층에는 스프링클러와 완강기가 없었던 것으로 소방당국은 확인했는데, 이는 제도적 한계와 맞물린 문제여서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봉천동 방화 아파트, 법적으론 소방 설비 문제 없어
현행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지은 6층 이상 건물은 전층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다. 하지만 해당 아파트는 1993년도에 허가를 받은 건물로 이 규정은 적용되지 않았다. 당시 소방법에서는 16층 이상에만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로 했다.
화재가 났을 때 천천히 하강해 지상으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피난기구인 완강기는 '피난기구의 화재안전성능기준'에 따라 아파트 3층부터 10층에 설치해야 한다. 이는 1992년 7월 소방법 시행령 개정 이후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화재가 발생한 봉천동 아파트는 제외다. 복도식 아파트라 인접 세대로 피난이 가능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처럼 화재에 취약한 아파트가 전국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라는 집계도 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지난해 소방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층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아파트 단지는 전국 4만 4208단지 가운데 1만 391단지 뿐이다. 미설치 단지는 2만 8820단지로 전체의 65%에 달한다. 특히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사망자가 발생한 아파트 화재 93건 가운데 1990년대에 사용 승인된 아파트가 48건으로 절반 이상이었다.
있었다면…"화재 중간에 꺼지고, 안전하게 대피할 수도"
연합뉴스전문가들은 이번 방화 사건과 관련해 스프링클러나 완강기가 있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분석을 내놨다. 우석대 공하성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스프링클러는 화재 초기 진압에 중요하다"며 "완강기가 있었고 사용법을 알았다면 골절 등 없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관련법이 개정되기 전에 지어진 아파트에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를 적용하기는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우송대 인세진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법을 소급 적용하면 돈이 엄청 들어간다"며 "스프링클러는 우리 집만 내가 설치하겠다고 해선 안 된다. 아파트 전체가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공 교수도 "(스프링클러 설치에는) 100제곱미터당 천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이에 화재에 취약한 곳에 우선적으로 스프링클러 등 소화·안전장치 설치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 교수는 "노인, 장애인 등 재난 약자들이 거주하는 곳이나, 특별히 사람들이 많이 거주해서 화재가 발생하면 인명, 재산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곳을 선별해 우선적으로 설치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주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면 얼마나 안전한지 홍보를 많이 해서 설치 지원에 대한 신청을 받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