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 우리는 '진실'보다 '자극'이 먼저 유통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누군가의 클릭을 유도하는 한 줄의 자극적 문장이 사회를 분열시키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2024년 총선에서 한국 사회를 뒤흔든 가짜뉴스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사태' 탄핵 심판 국면에서 불거진 '중국 간첩 99명 체포' 허위 보도는 이 위기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정보 전쟁의 시대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와 미래학자 제이슨 솅커는 각각의 분야에서 문제의 본질을 날카롭게 통찰한다.
하라리는 저서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오늘날 정보의 위기가 단순히 양의 문제가 아니라 '선별 방식'의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알고리즘은 진실을 기준으로 정보를 분류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인터넷 플랫폼은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정보를 맞춤 제공하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보게 되는 '정보 버블'에 갇힌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민주주의의 기반인 공론장을 위협한다.
실제로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3 언론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1.3%가 SNS에서 허위정보를 접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이 중 약 40%가 해당 정보를 진실로 믿었다. 특히 정치적 이슈와 관련된 내용일수록 허위 정보가 확산되는 경향이 강하며, 다수는 이를 사실로 오인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계엄 내란사태로 인한 대통령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1월 16일 한 유튜버의 주장을 인용한 인터넷 언론 스카이데일리의 단독 보도였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침투한 중국 간첩 99명이 체포됐다"는 내용은 수사 당국에 의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지만, 보도 직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되며 큰 사회적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영사 제공 가짜뉴스는 정치 영역을 넘어서 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제이슨 솅커는 저서 '코로나 이후의 세계'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정보 혼란과 그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영향을 분석하며 허위 정보와 주관적 진실이 미래에도 지속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는 허위 정보로 인해 백신 접종률이 늦어지고 마스크 착용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세계 각국의 경제 회복이 지연됐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세계은행과 국제노동기구(ILO)는 팬데믹 기간 중 잘못된 정보로 인한 정책 대응 실패가 경제 회복의 걸림돌 중 하나였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만 허위정보가 경제에 미치는 손실 규모는 정확히 추산되기 어렵고, 보고서에 따라 차이가 있어 신중한 해석이 요구된다.
하라리와 솅커는 이 문제의 본질적 해법으로 '정보 해독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도 인간이 복잡한 정보를 해석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능력에서 진화적 우위를 차지했다고 말한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도 이 능력을 회복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다고 본다. 솅커 역시 핀란드의 사례를 언급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허위정보 대응 교육을 실시한 정책이 긍정적 효과를 거두었다고 평가한다. 유럽연합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핀란드는 미디어 리터러시 수준과 허위정보 저항력 모두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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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최근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가짜뉴스 및 정보 판별 교육을 도입하고 정부와 언론이 공동으로 온라인 팩트체크 시스템을 확장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하지만 정책적 지원은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교과 과정과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특히 조기 대선을 앞두고 딥페이크 영상, 변조된 통계, 정치 콘텐츠 조작 등 더 정교해진 정보 왜곡 기술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단발적 대응을 넘어선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진실을 판단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진실을 가려낼 수 있는가. 하라리는 말한다. "민주주의는 진실에 대한 신뢰 위에서만 작동한다." 정보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판단력을 갖추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