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디시 의사당에서 제이디 밴스 미국 부통령(오른쪽 뒤)과 마이크 존슨(왼쪽 뒤) 하원의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의 의회 연설 중 일어서서 박수를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끊임없이 당파적이었다. 선거 승리를 자랑하고 민주당이 그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있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하원 합동연설에 대해 AP통신은 이렇게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 후 행한 첫번째 연설에서는 그를 중심으로 완전히 분열된 미국 의회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연설을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이 "나의 취임 첫 달이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었다", "우리가 경합주를 싹쓸이했다"며 대선 압승을 자랑하듯 뽐내자 본회의장 안은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공화당 쪽에서는 "유에스에이!"를 연호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야유하는 소리를 터트렸다.
특히 앨 그린 하원의원(텍사스)은 자리에서 일어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당신에겐 권한이 없다"고 외쳤고, 결국 경위에 의해 회의장 밖으로 끌려나갔다. 과거에도 대통령의 의회 연설 중에 불만을 표출한 야당 의원들이 있었지만, 의원이 강제로 퇴장당한 사례는 없었다고 외신은 보도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고성으로 항의하는 것 외에도 'FALSE(틀렸다)', '왕이 아니다(No King)' 등의 문구가 적힌 검정 팻말을 들고 묵언으로 비판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연설 도중 자리를 떴고, 오르카시오 코르테스(AOC) 의원처럼 아예 연설을 보이콧한 이들도 있었다.
항의 손팻말 치켜든 민주당 의원들. 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통합'보다는 상대 진영을 '비난'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전임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역대 최악의 대통령"이라고 지칭했다. 또한, 민주당을 향해 "급진 좌파 미치광이(radical left lunatics)", "법과 질서의 붕괴는 이들이 만든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사소한 싸움은 뒤로할 때"라며 통합을 강조했던 2017년 연설과는 정반대로, 이번 연설은 '분열'을 조장했다는 비판이 외신을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CNN은 "가장 당파적이고 통합과 거리가 먼 연설"이라고 혹평했다.
'입틀막', '국회 무시'…극한 대립 후 결국 '내란' 택한 尹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지난해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 행사장에서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미국 의회의 모습은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장면처럼 보였다. 타협을 거부하고 서로를 적대시한 윤석열 대통령과 거대 야당의 모습이 이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당파 싸움에 집착하던 윤 대통령은 결국 야당 탓을 하며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현재 내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특히 본회의장에서 쫓겨난 앨 그린 의원의 모습은 한국의 '입틀막'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월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식에 참석했을 당시, 진보당 강성희 전 의원은 윤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던 중 "이러시면 안 됩니다. 대통령님, 국정 기조를 바꾸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경호원들이 그의 사지를 들어 행사장 밖으로 끌어냈다. 이 사건 이후 야당을 중심으로 '윤 대통령이 비판 목소리를 검열하려 한다'는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았을 때도 국회는 늘 대립하는 모습을 보였다. 2023년 10월 31일,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을 당시 민주당은 R&D 예산 삭감 등 윤 정부의 일방적인 국정 운영을 비판하며 피켓 시위를 벌였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본회의장에서 윤 대통령과 악수하며 "이제 그만두셔야죠"라고 비판했다. 강성희 전 의원도 본회의장을 나서는 윤 대통령 앞에서 '줄일 것은 예산이 아닌 대통령의 임기'라는 피켓을 들어 보였다.
반면, 여당인 국민의힘은 박수와 환호로 대통령을 지지하며 야당의 태도를 강하게 질타하는 등 국회는 극명하게 분열된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이 '채상병·김건희 특검법' 등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의회와 타협을 거부하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민주당 역시 '줄 탄핵'으로 맞서며 물러서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국회 행사를 '보이콧'하며 소통을 거부하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9월 국회 개원식 불참을 선언하며 "대통령을 불러다 피켓 시위를 하고 망신 주기를 하겠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7차 변론기일에 출석해 자리에 앉아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양당의 극한 대립 구도는 결국 해소되지 못했고,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로 국가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갔다. 그는 비상계엄의 근거 중 하나로 '여당의 줄탄핵과 폭주'를 제시했다.
지난달 11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탄핵심판 7차 변론기일에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야당의 태도를 근거로 들었다. 그는 "예산안 기조연설을 하러 가면, 아무리 미워도 그래도 (대통령의) 얘기를 듣고 박수 한 번 쳐주는 것이 대화와 타협의 기본"이라며 "저에게 '빨리 사퇴하세요'라고 말하는 의원들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으로서 야당이 아무리 저를 공격하더라도 왜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겠나. (여당의) 의석이 100석 조금 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야당을 설득해보려 했다"면서 "줄탄핵은 대단히 악의적이다. 대화와 타협을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정권을 파괴하는 것이 목표라고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권 운영의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윤 대통령이 협치를 이끌어내기는커녕 그 시도조차 포기한 것은 책임 방기에 가깝다. 대화를 거부하고 강경한 태도로 일관한 것이 오히려 정치적 대립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는 비판도 피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