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트럼프의 관세폭탄에 시진핑이 배짱을 부리는 이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으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소용돌이가 길어지고 있다. 미국이 호흡조절에 나선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트럼프의 '관세 사랑'은 단기간에 식지는 않을 것 같다. 트럼프는 미국의 '구매 파워'를 당장 쓸 수 있는 강력한 '비군사적 무기'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지만 관세가 오르면 국내 수입 물가도 뒤따라 상승한다. 미국의 관세 인상은 결국 미국 소비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털어가는 꼴이다. 트럼프가 이런 경제의 원리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관세를 공격 무기로 꺼내든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관세 인상은 단기적으로 미국에도 부담이 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관세를 물지 않기 위해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을 가능성도 커진다. 관세 인상이 미국의 일자리 증가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관세가 미국에 이런 선순환 효과를 가져올 지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국가가 무역 장벽으로 자국 기업을 보호할 경우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이 국가의 보호에 의존할수록, 혁신과 비용절감 등 경쟁력 강화 노력을 게을리하게 된다. 이럴 경우 미국의 제조업은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의 늪에 빠질 수도 있다. 예를 들면, 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들의 경쟁력이 한국과 일본산 자동차에 비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미국 앰허스트 대학의 하비에르 코랄레스(Javier Corrales) 교수는 "보호주의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들을 양산해 시장의 원리를 파괴한다"며 트럼프 관세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코랄레스 교수는 지난 22일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es)' 인터넷판에 게재한 글에서, 이렇게 주장하면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주식시장의 혼란이나 인플레이션의 심화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트럼프의 보호주의가 "미국의 자본주의는 물론 민주주의까지 망가뜨릴 수 있다"는 경고다.
코랄레스 교수는 '관세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깎아먹는가?'(How tariffs erode democracy?)라는 제목의 글에서, 1900년대 중반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의 실패를 사례로 들고 있다. 당시 남미 국가들의 보호주의적 관세 도입과 수입대체산업 육성은 역효과를 낳았고, 결국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 최하위로 떨어졌다. 여기다 기업들이 무역 특혜를 얻기 위해 정치권과 관료들을 상대로 로비에 나서면서 민주주의까지 훼손되는 악순환으로 귀결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한국, 일본 등의 대기업들이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는 것이 미국을 살리는 방법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우선은 미국에 일자리가 생기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치적으로 홍보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 기업들이 미국 본토에 공장을 짓고 현지 노동자들을 고용해 성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지난 2019년 개봉된 미국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는 오하이오 주 데이턴 시로 이전한 중국 유리 공장이 겪는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망한 미국 GM 공장을 인수하고 들어온 중국의 대기업 푸야오(福耀·Fuyao)를 기대에 부풀어 환영했다. 하지만 미국 노동자들은 엄격하고 통제된 중국의 공장 문화에 점차 지쳐가면서 반발하게 된다. 공장 경영도 적자에 시달리게 된다.
문제 해결을 위해 창업주 차오더왕(曹德旺) 회장이 직접 나선다. 그는 관리자들을 중국인으로 교체하고 자동화 생산 설비를 도입하는 결단을 내린다. 또 미국인 노동자들을 중국으로 연수를 보내 중국식 생산 문화를 배우도록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공장의 경영은 점차 나아지게 된다. 결국 미국 노동자들은 투표를 통해 스스로 노조 결성을 거부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다수의 미국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가치관이나 권리를 접어두고, 먹고살기 위해 중국의 노동 방식을 수용한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미국과 중국,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대립의 시각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이전한 중국 제조업체의 실제 모습을 사실대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에서 잠깐 나온 공장의 자동화도 관심을 끈다. 세계로봇산업연맹 (International Federation of Robotics, IFR)의 집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전세계에는 428만 1585 대의 산업용 로봇이 가동되고 있다. 자동차와 전자 산업의 경우 산업용 로봇 1대는 보통 3~6명의 노동자를 대체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 계산을 따른다면, 로봇은 이미 대략 2천만 명 정도의 노동자를 공장에서 몰아낸 셈이다.
미국으로 공장을 옮긴 제조업체들은 로봇 도입에 더 적극적일 것이다. 현지 노동자와의 마찰을 회피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용 로봇이 늘어날수록 미국이 기대하는 공장 이전에 따른 일자리 창출 효과는 감소할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시작된 이후, 중국의 적극적인 산업용 로봇 도입 전략도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2023년 한해 동안 중국은 27만 6천여 대의 산업용 로봇을 신규로 설치했다. 2위인 일본보다 6.0배, 3위인 미국보다는 7.3배, 4위인 한국보다는 8.8배나 많다.
같은 해 중국은 전세계에 설치된 산업용 로봇 누적 대수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일부 첨단 기술 분야를 제외하면 중국의 제조업 경쟁력은 미국을 능가하고 있다.
지난 23일 미국 뉴욕타임스신문(NYT)은 '관세 전쟁에서 중국은 로봇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China has an army of robot on its side in the tariff war)'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이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당국 주도로 막대한 돈을 투입해 인공지능(AI)으로 운용되는 로봇으로 빠르게 사람을 대체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의 관세 공격을 받아도 전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양질의 제품을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산업용 로봇 군단이 미국의 관세 폭탄을 방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물론 산업용 로봇의 대량 도입만으로 미국의 관세 폭탄을 막을 수 있다고 연결 짓는 것은 무리다. 다만, 이것은 중국이 미국과의 경제 전쟁에 다각적으로 대비를 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중국은 그동안 무역전쟁과 첨단기술 통제 등 미국의 견제를 경쟁력 강화의 기회로 활용해 왔다. 이제 중국의 탄탄한 제조업은 시진핑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더 거칠어진 관세 공격에 무릎을 꿇지 않고 버티는 기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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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8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