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교육부가 지난 9일 '2022 개정 교육과정' 행정예고본에 역사교과 정책연구진의 의견을 묵살하고 '자유민주주의'를 끼워넣은 데 대한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초중고등학교 역사교사 1191명은 28일 실명으로 교육부의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한 일방적 수정'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냈다.
이들은 실명 성명에서 "교육부는 역사 교육과정 연구진의 동의 없이 역사과 교육과정의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수정한 '2022 개정 교육과정 시안'을 행정예고했다"며, 교육부는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한 일방적 수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교육부가 주도한 역사과 교육과정 교과서에 대한 폭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 교사들은 이명박 정부 시기 뉴라이트 세력은 '건국절 논쟁'과 함께 역사 교과서에 '자유민주주의'를 넣어야 한다는 압력을 행사했고, 당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꿔 최종 고시해 교육과정 연구진의 총사퇴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시도했지만 국정교과서가 국민적 심판 속에 폐기된 과정을 지켜보며 앞으로는 진보·보수와 상관없이 역사 교과서에 부당한 정치적 개입을 하는 정권이 탄생하지 않으리라고 믿었지만 이러한 기대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부가 연구진의 의사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수정한 행정예고로 처절하게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에서 교훈을 얻기는커녕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개인적 소신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윤창원 기자이 장관은 지난달 28일 인사청문회에서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를 표기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논란을 예고했다. 무소속 민형배 의원의 "자유민주주의는 이념으로, 이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질의에 대해 이 장관은 "자유민주주의는 헌법 가치다. 민주주의도 여러 가지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그냥 민주주의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번 실명 성명은 국내 최대 역사교사 단체인 전국역사교사모임 주도로 이뤄졌으며, 성명을 낸 교사 대부분은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들이고, 초등학교 교사가 일부 포함돼 있다.
역사교사들이 실명 성명을 낸 것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0월과 2015년 9월 초중고 역사교사 1034명과 2255명이 실명으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1·2차 역사교사 선언을 한 이후 처음이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2022 역사과 교육과정 개발 연구진 일동'은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교육부는 연구진이 제출한 행정예고본 원안을 존중하고, 연구진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수정한 행정예고본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10일 성명을 통해 "교육부는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되풀이하지 말고, 일방적으로 수정 고시된 역사과 교육과정 행정 예고본을 철회하라"고 밝혔다.
역사교육연구회, 역사교육학회, 역사와 교육학회, 웅진사학회, 한국 역사교육학회 등 5개 학회는 24일 공동성명을 내어 "교육부가 교육과정을 임의 수정해 행정예고한 것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야 할 교육부 본분을 망각한 채 교육현장을 정치화하려는 무책임한 시도로, 우려와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오는 29일까지 행정예고와 이후 국가교육위원회 의결을 거쳐 교육부가 올해 말까지 최종 고시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