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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보호 못 받는 '이 계약서'…살펴보니



대전

    근로기준법 보호 못 받는 '이 계약서'…살펴보니

    새벽배송기사의 '위·수탁계약서'…특수고용직의 현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새벽배송 일을 하던 한 배송기사가 갑작스러운 계약 해지 통보 이후 막막함을 호소하고 있다. 이 배송기사가 업체와 쓴 계약서를 살펴본 전문가는 '노동자였다면, 당연히 가졌어야 할 권리가 빠져있는 계약서'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사장님'으로 불리는 특수고용직의 여전한 '노동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명업체의 새벽배송 일을 하던 A(24)씨는 물류센터로 나가기 위한 준비 중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화물운송을 위해 A씨와 계약을 맺은 중간업체 관계자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업체로부터 들은 계약 해지 사유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A씨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였다고 A씨는 말했다.
     
    A씨는 "출근 1시간 전 걸려온 전화였다"며 "얼떨떨하게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걸어 다른 일을 찾아보라는 게 그냥 권유한 건지 아니면 해고 통보를 한 건지 물었는데 '둘 다'라며, '해고 통보도 한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설명했다.

    A씨가 이 업체와 쓴 계약서에는 '본인 업무능력 부족으로 회사 및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끼칠 때, 즉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돼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해고 사유로는 정당하지 않은 조항이라고 노동 전문가는 지적한다.
     

    송지원 노무사는 "일단 해고가 정당하려면 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에 따라서 정당한 해고 사유가 있어야 하고, 이 조항에 충족되기 위해서는 해고 사유가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며 "하지만 이 같은 표현의 경우에는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매우 높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제23조 1항에 위반될 소지가 높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A씨가 받은 전화 통보 방식 자체가 해고 무효 사유가 될 수 있다. 서면 통보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돼있기 때문이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스마트이미지 제공 

    '근로계약서'였다면 법에 저촉되는 조항들
    '위·수탁계약서' 쓰는 특수고용직에는 적용 안 돼
    '사장님'으로 불리지만 현실은 여전히 취약


    다만 A씨는,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근로계약서가 아닌 '위·수탁계약서'를 쓰고 있는, 노동자가 아닌 '사장님'으로 불리는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새벽배송을 해왔기 때문이다.
     
    A씨가 독립적인 사업자로서 업체와 계약을 맺고 움직이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A씨가 계약 해지 사유나 방식 등에 반발해 다투는 과정에서도 근로기준법은 적용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함을 호소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 본인이 사실상 종속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노동을 제공했음을, 즉 '노동자성'을 증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A씨의 위·수탁계약서의 여러 조항들은 '근로계약서였다면…' 문제가 되는 것으로 지목됐다. A씨와 업체는 고용·근로관계가 아니라고 계약서에 명시돼있고 A씨가 업체에 종속된 관계도 아니라고 하지만, '동등한 관계로 보기도 어려운' 조항들도 일부 지적이 됐다.
     
    예를 들어 업체와 달리 A씨는 계약 이후 3개월 이내에는 계약 해지를 먼저 할 수 없도록 돼있다. 업체는 계약이 끝난 뒤 A씨에게 지급해야 할 수수료를 일정 기간 보류할 수 있다. 노동자였다면 쟁의권으로 보호됐을 파업 등 단체행동도, A씨가 그 손해를 책임지도록 했다고 한다.

    A씨는 "면접 볼 때는 6일 일하고 하루 쉰다고 설명을 들었는데, 막상 근무에 들어가니 본인 물량을 빼지 못하면 휴무가 없다고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송지원 노무사는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로 노동자로서 가져야 되는 당연한 권리를 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며 "사회적인 분위기 역시 '당신은 특수고용직이고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하니, 본인에게 불리한 계약서를 그대로 수용하고 잘못된 일이 생겼을 때도 권리 주장을 못하는 경우들이 생기게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전시 노동권익센터의 홍춘기 센터장은 "노동은 하지만 실제로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이후 더욱 늘고 있다"며 "사용자 입장에서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할 목적으로 특수고용 계약을 더 많이 맺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면 우리나라 노동법이 이같이 다변화된 근로계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렇게 노동의 사각,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들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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