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녀의 재구성'은 고전문학을 공부한 세 저자(홍나래·박성지·정경민)가 한국 고전 서사에서 여성의 욕망을 조명한다.
이들 저자는 마음속 욕망을 따라 움직인 그녀들이 어쩌다 악녀(惡女) 혹은 음녀(淫女)가 되었나에 주목했다. 아름답지도, 지혜롭지도, 고고하지도 않은 일그러지고 기묘한 여자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곰나루 전설’의 곰 여인은 인간 남성이 자신을 버리고 도망치자 그 남성과의 사이에 낳은 아이들을 죽인다. 모성(母性)은 어디로 갔는가? 도망치는 인간 남성 앞에서 돌아오지 않으면 아이들을 죽일 거라 협박하는 곰 여인은 잔인한 어머니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니 애초에 인간 남성을 납치해 동굴에 가둔 이 여인은 어떻게도 정당화할 수 없는 악녀 아닌가. 이 지점에서 저자들은 여인의 마음속 욕망을 들여다본다. 여인의 욕망은 남성을 향해 있었다. 모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순수한 욕망, 남자를 얻고 싶은 욕망(사랑), 그뿐이다.
일견 뛰어난 모성의 소유자라고도 보이는 양사언의 어머니가 ‘모성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자. 양사언의 어머니는 서얼인 아들이 적자로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 남편의 관 앞에서 자결한다. 자식을 위해 목숨마저 내놓은 ‘희생 서사’의 아이콘이라 할 만하다. 역사 속 양사언(1517~1584)은 한석봉에 비견되는 서예가이자 여러 지역의 수령을 지낸 청렴한 관리였다. 그렇다면 사대부임이 분명한데, 설화 속 양사언은 어머니의 희생을 통해 적자의 지위를 획득한 서자로 그려진다. 과연 양사언의 어머니는 아들의 출세를 위해 목숨을 버린 모성의 소유자였을까? 아니, 일단 ‘모성 이데올로기’를 벗겨내고 나면 남는 것은 ‘신분 상승’을 향한 욕망이다. 변방의 평민 소녀였던 여인은 우연히 집에 들른 지체 높은 양반(양사언의 아버지 양희수)의 눈에 들어 양반가에 입성하는 데 성공한 다음에는 자결로써 아들에게서 서얼의 흔적을 지우고 ‘양반의 어머니’로 남았다.
옛 여인들과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에서 이데올로기의 표피를 벗겨내고 나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속살은 바로 그들의 순수한 욕망, 소용돌이치듯 솟아나는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이다.
홍나래 , 박성지, 정경민 지음 | 들녘 | 312쪽 |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