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연합뉴스·사진공동취재단 막바지로 치닫는 대선 길목에서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내란 수사를 하고 있는 경찰 특수단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이상민 전 행안부 장관을 소환했다는 뉴스다. 하루 한 날 동시에 불러 조사했다는 점이 눈길을 확 끌어당긴다.
경찰은 계엄 당일인 12월 3일 국무회의가 열렸던 대통령실 접견실과 복도의 CCTV를 경호처에서 확보해 분석해 왔다. 경찰은 그날 밤 계엄 관련 문건을 전달받는 과정에서 세 명이 허위진술을 한 건 아닌지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다시 말해 한덕수와 최상목, 이상민이 경찰에서 진술한 내용, 국회에서 증언했던 내용, 탄핵재판에서 진술했던 내용과 다른 이상한 장면이 CCTV로 포착됐다는 것이다.
한덕수의 앞선 진술들에 따르면, 한은 그날 저녁 8시 40분쯤 대통령실에 들어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10시 23분경 긴급 브리핑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대통령실에 도착한 한덕수는 윤이 아닌 자신이 국무회의를 소집했다고 서면 답변서에서 주장했다.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 통과가 필수적인데, "이날 밤 국무회의는 비상계엄을 막으려는 목적에서 시간을 최대한 벌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덕수는 진술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찰이 계엄 관련 문건을 전달받는 과정에서 '허위 진술을 한 건 아닌지 확인 중'이라는 것이다. '계엄 관련 문건'이라 함은 '계엄 포고령'과 각 부처들이 해야 할 임무를 담은 '메모(쪽지)'를 일컫는 것으로 봐야한다.
지금까지 세 사람의 주장은 이렇다. 맨 먼저 한덕수는 "굉장히 충격적인 상황이어서 (메모를 건네는 상황을) 전체적인 것들이 기억을 하기 어렵다"고 얘기했다. 한은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문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국회 3차 내란청문회에서 증언한다. "비상계엄 선포문을 당시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4일 새벽)비상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를 마치고 사무실로 출근해 보니 제 양복 뒷주머니에 있는 것을 그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은 수사기관에 제출하고 진술했습니다." 계엄 포고문이 자신도 모르게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진술이다.
최상목과 이상민의 진술도 도긴개긴이다. 최는 "비상입법기구 설치 등이 들어간 쪽지를 제가 받았구요. 대통령이 계신 자리에서 실무자가 저한테 참고자료를 줬습니다"라고 했다. 이상민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 집무실에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단전.단수 내용이 적힌 쪽지를 봤습니다"라고 말했다. 세 명의 포고령과 메모에 관한 진술 언급들은 명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공통점이 있다면 '매우 수동적으로 자신들은 볼 의사가 없었고 어쩔 수 없이 바지 뒷주머니에 들어가 있거나', 아니면 '책상 위에 놓여있다는 식으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보게 됐다'라는 식의 변소들이다. 본디 '진술의 신빙성'이라 함은 낄 문건보다 낄 자리가 꼭 맞지 아니하고 작거나 크면 깨지기 쉬운 질그릇과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이 확보한 CCTV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진다. 세 명을 동시에 불렀다는 점이 아주 시사적이다. 세 명을 동시 소환했다는 사실은 CCTV에 찍힌 장면 앞에서 각자의 '진술 짜맞추기'를 봉쇄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CCTV를 보고 한 명 한 명 소환하면 서로 입을 맞출 수 있게 된다. 계엄 관련 문서를 어떤 식으로 받았든, 그들이 지금까지 진술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면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덕수가 윤이나 그의 참모로부터 문서를 직접 받아 장관들에게 전달하는 장면이 CCTV에 생생하게 찍혔다면 내란 사건의 양상은 완전 달라진다. 포고령 문건이 됐든, 혹은 쪽지가 됐든 한덕수는 내란 공범이 될 수 밖에 없다. 김용현은 국무회의가 있었다고 한 반면, 한덕수는 국무회의가 실체적,절차적 흠결이 많았다고 주장하는 걸 보면 어느 것이 '요설'인지 여전히 구분하기 쉽지 않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연합뉴스비록 흠결이 있었지만 한덕수는 국무회의를 소집했다고 말했다. 계엄 포고문을 보지 않고 국무회의를 소집할 수는 없다. 심의 대상이 없는 국무회의를 소집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윤이 한에게 계엄 관련 문건들을 전달했고, 한이 이를 직접 국무위원들에게 분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된다. 경찰이 확보한 CCTV는 대통령 집무실이 아닌 접견실과 복도의 것이다. 결국 한덕수를 보호하려고 전부 다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간 윤석열의 경호처가 기를 쓰고 압수수색을 거부했던 배경도 ,한덕수를 국힘의 대통령 후보로 옹립하려 했던 이유도 모두 설명된다. 정권교체를 막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퍼즐인 것이다.
만약 CCTV에 한이 직접 문건을 나눠준 장면이 찍혀있다면 비상계엄 내란 사건은 차원을 달리하게 된다. 여태껏 국무위원들이 주장한 국회 증언과 탄핵재판 증언이 허위 엉터리 조작이 되기 때문이다. 또 그게 사실이라면 윤석열과 한덕수,최상목 그리고 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 표결에 불참했던 친윤 핵심들은 모두 내란 공동운명체로 판명나게 될 것이다. 실체적 진실 규명이 6.3 대선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