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9 · 삼성전자)가 21일 전국체전 우승과 함께 마라톤화를 벗었다. 1990년 전국체전에서 처음으로 42.195km를 달린 이봉주가 그동안 완주한 횟수는 무려 41회. 전 세계 마라톤 역사상 유례없는 완주 기록이다.
마라톤은 흔히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불린다. 대회 3~4달 전부터 식이요법을 병행하면서 하루 30km씩 달리는 지옥훈련을 실시해야 한다. 다른 어떤 종목보다 괴로운 훈련. 오죽하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는 “훈련 도중 차도로 뛰어들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자신과의 싸움’을 이봉주는 무려 41번이나 이겨냈다. 스무 살의 나이로 첫 완주를 한 지 무려 19년째. 총 43번 대회에 나서 중도 포기는 단 두 차례에 불과할 정도다. 그만큼 이봉주의 업적은 한국 마라톤, 아니 전 세계 마라톤 역사에 길이 남을 기록이다.
▲짝발, 평발 등 신체적 악조건 이겨내이봉주의 왼발 사이즈는 253.9mm. 반면 오른발은 249.5mm다. 뛸 때 몸이 왼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덕분에 지치면 오른발이 팔자걸음처럼 바깥쪽으로 비껴 흘러 다른 선수들에 비해 체력 낭비가 심하다. 게다가 조금만 걸어도 피곤해진다는 평발이다. 한 마디로 마라토너로서는 최악의 조건을 모두 갖춘 셈이다.
하지만 이봉주는 자신의 약점을 의식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라톤은 선천적 천재성보다 후천적 노력에 의해 완성된다”는 믿음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특히 포기를 몰랐다. 1990년 처음으로 풀코스를 뛴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대회에 나섰다. 적게는 2회, 많게는 7회, 이봉주는 그만큼 악바리였다.
▲영원한 라이벌 황영조‘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는 이봉주의 영원한 라이벌이다. 황영조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이봉주는 그 바통을 이어 받아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생 비교될 수밖에 없는 대상이다. 하지만 두 라이벌은 극과 극이다. 황영조가 천재라면 이봉주는 철저한 노력형. 이봉주도 “황영조의 타고난 재능이 부러웠다”고 말했다.[BestNocut_R]
무엇보다 성격이 정반대다. 황영조의 완주 횟수는 고작 8번에 불과하다. 마라톤을 즐기지 못했기에 일찌감치 은퇴했다. 하지만 이봉주는 마라톤을 즐겼다. 6~7끼를 고기만 먹다가 이후 탄수화물만 섭취하는 ‘지옥의 식이요법’과 하루 30km씩 뛰는 ‘지옥 훈련’을 모두 이겨낸 원동력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그 자체로 기쁘다”는 이봉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