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수
조련사의 앙칼진 호령이 귀청을 흔들때마다 스피드는 더욱 빨라지고, 타격은 더욱 견고해진다.
지난 11월 K-1 히어로스 서울대회가 열린 잠실 제1체육관 사각의 링 위에서는 새로운 진화가 목격됐다. 늘 애틀랜타 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라는 ''은빛'' 꼬리표가 붙어다니며 그를 옥죄왔던 승부.
타격전에는 잼병이라는 유도가 스타일에서 ''유술+타격''으로 한단계 진화한 죠스는 경기의 실마리를 쉽게 풀어나갔다. 승부를 결정 짓는 길로틴 초크에 힘이실리며 관중석은 뜨거운 용광로가 됐다.
지난 21일 살이 터질듯 한 동장군의 칼바람을 안고 서울 동쪽 끄트머리 거여동으로 잰걸음을 옮겼다. 김민수가 모 체육관에서 타격에 무게를 둔 ''특훈''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격투계의 올스타 24인이 2005년 최고의 드림매치를 펼치는 K-1 다이너마이트 대회에 최홍만이 최종 불참선언을 하면서 김민수가 유력한 한국선수로 출전할 수도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그동안 일본과 태국 등을 오가며 타격훈련에 집중해온 김민수가 새롭게 베이스 캠프를 차린 곳은 자신의 집이 있는 잠실. 각종 체육시설과 편의시설이 집중돼 있는데다 복싱훈련을 위해 체육관이 있는 거여동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
권투체육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송파청소년체육관에 들어서자 한겨울에도 짙은 땀냄새가 배어나온다. 콘크리트 바닥의 냉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가운데 링 위에서 하얀 입김을 불며 땀을 흘리는 김민수가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프라이드 FC 유도파이터 요시다 히데히코(36·요시다 도장)와 비견되며 2연패 끝에 9개월 만에 달콤한 첫 승을 맛 본 ''죠스'' 김민수(29·링스 코리아)를 노컷뉴스가 단독으로 만났다.
민수
◈지난 경기에서 초반 상대를 타격으로 밀어내고, 길로틴 초크로 마무리 했는데, 많이 달라졌다?= 타격은 격투기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타격술을 배우기 위해 태국과 일본을 오갔는데, 외국으로 다니기 너무 힘들어 한국에서 베이스캠프를 차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링 위에서도 사실 난 나는 겁이 없다. 상대방의 주먹이 무섭지는 않다. 맞으면 맞는대로, 피할 수 없으면 맞서 싸울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션 오헤어 선수는 플로레슬링 선수 출신으로 엄청난 괴력의 소유다, 더군다나 유도기술을 알고 있어서 초반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타격이 충분히 먹혔고, 몸싸움에서 길로틴 초크가 걸렸다. 상대 목을 걸고 도복을 이용해 서서히 줄여나가면서 목을조여 승리했다. 상대가 레슬링을 한 선수이기때문에 팔힘으로 목만 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를 들어올려 내동댕이 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했던 기술이 많은 도움이 됐다.
◈지난 K-1 히어로스 서울대회에서 첫 승 하면서 링 위에서 "그동안 마음고생 풀었다"고 했는데?= 정말 값진 1승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링 위에 있는 이유는 유도 메달리스트라고 알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유도를 해오면서 패배를 몰랐고, 지난 2패를 떠올리며 그 시합에만 집중해왔다. 1승이 정말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엄청난 자신을 얻었다.
◈링에서 뭔가 보여주려는 것 같다.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운동에만 충실히 매진하려 한다. 한번에 많은 것을 보여주고 바로 끝내기 보다는 많이 배우고 더 노력해서 여러분들에게 천천히 많은 것들 보여주려고 한다. 기대해 달라.
◈운동선수는 체력소모가 크다. 체력관리나 음식관리는 어떻게 하나?= 운동선수들이 근력강화를 위해 종종 사용하는 보충제(근력강화제 등)는 잘 쓰지 않는다. 대신 식품으로 조절하는 편이다. 체력을 유지하려면 잘 먹고, 잘 쉬어야 한다. 식품으로 체력조절하기는 쉽지 않지만 노력한다. 식품으로 체력조절과 함께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최근에는 한 팬이 장어를 고아서 보내준 스테미나식을 감사히 잘 먹고 있다.
◈유도나 격투기 외에 평소 즐기는 운동이 있나?= 골프, 스키, 수상스키, 야구 등 운동은 뭐든 다 좋아한다. 연예인 야구단 ''재미삼아'' 팀에 소속돼 있어서 주말에는 연예인들과 종종 함께 경기한다.
◈유도 메달리스트에서 외로운 싸움의 격전장이 격투기에 발을 들려놓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입문한 계기가 무엇인가?= 한국마사회 유도단 트레이너를 하고 있던 작년 6월에 인터넷에 격투기에 대한 관심의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의외로 네티즌들이 긍정적으로 도전해보라고 권유를 했다. 평소에 관심도 있었고 해서 어찌하다 김미파이브에 몰래 시합을 나가게 됐는데, 대진표까지 나왔다. 시합에 나갈때, 회사에 전화해 다른 시합에 좀 나가려고 한다.
마사회 도복 입고 해도 되냐 했더니 회사에서 대회 뒷조사를 했던 모양이다. ''엉뚱한'' 시합에 나간다는 것을 알고는 회사측이 나가려거든 사표쓰라고 해 경기를 포기해야 했었다. 돈을 벌려고 뛰어든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정말 하고싶어했던 것이기 때문에 격투기 스포츠에 입문한 것이다.
◈국내 스포츠계가 아직 보수적이서 그런 것인지 최홍만 선수와 비슷한 사례로 김민수 선수를 유도계에서 제명했는데?= 이 것도 스포츠이고,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하는 것이다. 아직 인식의 확대가 안된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원망스럽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일부 어르신들 중에도 도복에 피묻히며 뭐하는 짓이냐고 얘기하시기도 한다. 다양한 시각이 있지 않겠나. 대신 나를 알아주지 못하는 심정이 안타까울 뿐이다.
민수
◈함께 운동하는 친한 선수들도 있나?= 기회만 되면 함께 운동하려는 동료 후배들 많다. 하지만 국내 격투기 환경이 어렵다보니 쉽게 뛰어들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기업들의 스폰과 사회적 관심, 그리고 지원이 있으면 국내 격투기 환경도 훨씬 업그레이드 되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어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생업과 운동을 병행하니 쉽지 않다.
외국의 경우에는 실제 나보다 실력이 떨어지는데도 스폰 받아서 나오는 선수들이 많다. 돈을 얼마나 지원받고가 중요한게 아니라 자존심 문제다. 스폰은 그만큼 그 선수에게 관심과 주목도가 있다는 의미다. 국내 격투기계에 일조하고 싶은것이 나의 심정이다. 내가 먼저 발을 들여놨으니까 이쪽에 관심있는 후배들에게도 더 넓은 길을 열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최홍만 선수와도 자주 만나나?= 같은 K-1 전속계약 선수기 때문에 친하다. 소속 에이전시가 다르다보니 일정이 잘 맞지 않아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엊그제도 홍만이와 통화했다. 일전에는 함께 스파링도 하며 연습하기도 했다.
◈K-1 히어로스 수퍼바이저인 마에다 아키라와 남다른 관계라던데?= 마에다 아키라 씨는 K-1 히어로스의 대부라고 할 수 있다. 마에다와는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밥샙과 첫 경기를 치르기 전에 마에다가 미리 나를 불러 스파링을 뛰게 했다. 내 실력을 검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의 실력을 본 마에다는 유독 나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고, 일본에 가면 내 손을 잡고 다닐 정도로 애정이 각별하다. 나를 보면 무사의 혼이 흐르는 것 같다며 언젠가 일을 낼 것 같다고 응원해주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든든한 후견인 되어주고 있어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
◈운동선수에게는 치명적인 부상도 잦고, ''싸움''이 힘들지 않나? = 지난번 레이세포와의 경기에서 인대와 연골이 찢어졌다. 아직 완쾌되지는 않았지만 경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사실 지난 2패는 준비가 사실 덜 됐었다. 무작정 뛰어든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밥샙과 다시붙어도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내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운동이다.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 뛰어든 것이다. 싸움이 힘들 수록 내가 강해져가는 것을 느낀다.
◈타격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스탠딩에도 자신이 있나?= 현재 훈련의 주안점은 복싱과 그래플링 모두 다라고 할 수 있다. 체력은 좋지만 아직 습득해야할 기술이 많다. 유술에는 당연히 자신이 있다. 상대선수들도 유도선수와는 경기를 꺼려한다. 그만큼 그래플링에서는 유도가 최고이기 때문이다. 타격에도 최근 많은 자신감을 갖고 있다.
단지 타격과 유술을 자유자재로, 어떠한 환경에서도 적용할 수 있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이점에 주안을 두고 복합적인 훈련을 하고 있다. 사실 운동으로나 나이로나 치면 국내 격투기계 어린 사범들이 많지만 고개 숙이고 배우려 한다. 그래서 옛날 유도했던 시절의 사진도 다 치워버렸다. 옛날 생각하면 절대 못한다.
◈프로 스포츠는 직업이 운동이다. 지난번 히어로스 대회 기자회견에서 스폰에 대한 관심을 가져달라고 했는데, 스폰서가 있어야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지 않겠나?= (홍당무엔터테인먼트 유민종 이사) 현재 유력 기업체 3곳과 최종 조율중이다. 인터넷 업체와 스포츠 브랜드, 건설업체 등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모 대기업에서는 이미 김민수 선수에 대한 광고마케팅 시장조사를 끝냈더라. 다만 연말이라 예산 추가 편성문제라던가, 국내 격투기 시장이 국내에서는 아직 성장세다 보니 잠시 신중한 듯 보인다.
하지만 현재 일본 K-1과 프라이드 FC 등 굴지의 종합격투기 시장이 국내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파이가 커진다는 얘기다. 유도 메달리스트에 일본측에서도 김민수 선수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 이미 김민수 선수의 스포츠마케팅에 대한 시장성은 충분히 검증된 것으로 보인다.
◈팬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의 요시다 히데히코로 조명받으며 종합격투기계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팬 관리도 좀 해야 하지 않겠나? = 경기를 보면 선수들 중에는 팬서비스 차원에서 화려한 이벤트나 세레머니가 등장한다. 나는 특별한 세레머니같은 것은 없지만 자체 제작한 기념 T셔츠를 팬들에게 던져준다. 예전에 경기에서는 여러장 가져왔는데, 응원온 후배들이 멋있다며 자꾸 달라는 바람에 한장 두장 없어지더니 달랑 한장 남았다.
한번은 일본에서 있던 시합에서 땀에 절은 T셔츠를 던져줬는데, 이를 받은 일본 여성팬이 너무 좋아하며 움켜쥐더라. 거기서 일본은 정말 마니아층이 두텁구나 생각했다. 지난번 K-1 GP 일본 경기에 갔었다. 혹시나 누가 날 알아볼까 했는데, 경기장에서 웬 사람들이 졸졸 쫓아오며 날 알아보고는 좋아하며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했다. 너무 감사했고, 더 힘이 되었다.
민수
인터뷰 내내 웃음과 위트를 잃지 않았던 김민수 선수. 우연히도 기자와 이름이 똑같다. 지난번 히어로스 서울대회 첫 승 후 기자가 전송한 기사가 포털 사이트에 뜨자 "김민수가 경기 끝나고 자기가 기사 쓴거 아니냐"며 재밌는 해프닝이 있었던 사례도 대화의 안주가 됐다.
김민수의 체력은 타고 났다. 기량이 상대적으로 낮은 선수들과 스파링을 하면 얼마 못버티고 다 나가떨어진다. 국내 무술 사범들도 몇번 같이 뛰어보고는 못하겠다고 손사레를 칠 정도.
체육관 관장과 함께 연습할때마다 괴성을 지르며 펀치를 날리는 폼세가 보통이 아니다. 과거 박종팔 선수와 김득구 선수 등을 키워내며 챔피언을 조련한 김윤구 관장도 "현재 복싱 실력은 아마추어 대회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며 몰라보게 강해진 김민수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빠르면 올해 K-1 다이너마이트에서 최고기량의 선수들과 결전을 벌일 수도 있다. 늦어도 내년 제주도나 부산 등지에서 열릴 예정인 히어로스에 출전한다.
한번 물면 온 몸이 바스러질 정도의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는 죠스. 김민수의 땀내가 짙어질수록 그에 대한 기대는 높아만 간다. 체육관 한 귀퉁이에 써붙인 글귀가 아직도 선하다.
"연습할때 땀을 많이 흘린 선수가 시합때 피를 적게 흘린다."
| 김윤구 관장 "왼손잡이 김민수의 카운터 펀치" |
"격투기 선수들은 타격으로 선제공격을 해야 한다"
김윤구 관장은 왕년의 챔피언 박종팔과 김득구를 키워낸 맹장이다. 국내에서는 헤비급 선수들의 파워펀치를 맞받아줄 정도로 노련미를 겸비한 관장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송파청소년체육관을 관리운영하며 선수들을 키워내고 있다.
김민수의 세컨을 봐달라는 부탁에도 쉽게 응해주지 않았던 그가 4개월째 김민수를 손수 지도해주고 있다. 그에게서 김민수의 실력을 들어봤다.
▲김민수의 실력은 어느정도인가?
=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헤비급들은 몸이 무거워 둔한 편인데, 체력이 타고난데다 순발력도 있다. 옛날 챔피언들도 3,4회 라운딩에 체력이 바닥나서 나가 떨어지는데, 김민수는 6,7회 이상의 라운드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끄떡없는 체력이다.
▲현재 타격에 집중도를 높히고 있는데, 어떤 훈련을 하고 있나?
= 격투기 선수들은 타격으로 선제공격을 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재압한 뒤 꺾기든 조르기든 기술이 들어갈 수 있다. 지난번 히어로스 경기에서 두달 남짓 배워간 권투를 제대로 잘 써먹더라.
▲김민수 선수가 어디에 주안점을 둬야 할까?
= 천천히 실력을 늘려가야 한다. 아무리 운동을 했다고 해도 실력은 천천히 늘려야 한다. 처음부터 많은 기대를 하면 안된다. 김민수의 경우 왼손잡이라 타격에서 굉장히 유리하다. 보통 오른손잡이들은 왼손잡이 공격에 상당히 당황한다. 이러한 점을 장점으로 키우고, 실력을 꾸진히 늘려간다면 격투기에서 상당한 실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