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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 로봇'' 세미 슐트는 결승전을 앞두고 그답지 않게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난 5월 ''쇼타임''서 그에게 패배를 안겨준 바다 하리가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격전이 될 거라는 예상과 달리 경기는 싱겁게 끝났다. 슐트가 1라운드에서만 세 차례 다운을 빼앗으며 챔피언에 오른 것. 7개월 만의 리벤지와 K-1 통산 4회 우승을 동시달성한 슐트는 경기 후 그답지 않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세미 슐트(36, 네덜란드)는 5일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열린 K-1 월드그랑프리 파이널 결승전에서 바다 하리(25, 모로코)를 1라운드 1분 10초 만에 KO로 제압하고 챔피언에 등극했다.
2005~2007년 3년 연속 챔피언에 올랐던 그는 이번 우승으로, 유일한 K-1 통산 4회 챔피언이었던 어네스토 호스트(은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반면 지난해 결승전에서 반칙패하며 준우승 타이틀을 박탈당했던 하리는 또다시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며 분루를 삼켰다.
슐트와 하리는 이날 쾌조의 컨디션을 보였다. 두 선수 모두 8강, 4강을 1라운드에서 끝내는 등 막강 실력을 뽐냈다. 슐트는 8강과 4강에서 제롬 르 밴너(37, 프랑스)와 레미 본야스키(33, 네덜란드)를 각각 1라운드 KO로 눌렀고, 하리는 루슬란 카라에프(26, 러시아), 알리스타 오브레임(29, 네덜란드)을 초토화시켰다.
우승을 하려면 하룻동안 3경기를 치러야 하는 만큼 부상없이 체력 소모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두 선수는 8강, 4강 두 경기 통틀어 경기시간이 4분을 넘기지 않아 결승에서도 흥미로운 ''진검승부''가 예상됐다.
바다 하리는 작심한 듯 1라운드 초반부터 불꽃러시를 선보였다. 특유의 빠르고 날카로운 펀치를 속사포처럼 터뜨린 것.
슐트는 다소 당황하는 모습이었지만 몸을 좌우로 흔들거나 가드를 바짝 올리며 상대 펀치를 막아냈다. 곧이어 하리의 가드가 열린 틈을 타 기습적인 레프트 스트레이트를 뻗었고, 안면에 정타로 맞은 하리는 링 바닥에 넘어졌다.
코에 출혈이 일어나고 금세 퉁퉁 부어오르는 등 강한 충격을 받은 하리는 이때부터 와르르 무너졌다. 자신만만했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고, 정신없어 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승기를 잡은 슐트는 하리의 연속 펀치를 피하면서 왼발 하이킥을 적중시켜 두 번째 다운을 빼앗았다. [BestNocut_R]
슐트의 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슐트는, 가까스로 일어나 펀치를 휘두르는 하리의 복부에 미들킥을 적중시켜 세번째 다운을 이끌어냈고,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다.
''패자'' 하리가 쓰러져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안타까운 한숨을 토해낼 때 ''승자'' 슐트는 환호성을 지르며 소속팀 골든글로리 스탭들과 뒤엉켜 우승의 감격을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