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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미, 우승하기까지 8년 걸렸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위성미, 우승하기까지 8년 걸렸지만 이제부터 시작이다

13살 때 LPGA투어에 모습을 드러낸 뒤 꼬박 8년만에 정상 등극

 

''천재 소녀'' 위성미(20.나이키골프)가 8년간의 방황 생활을 마침내 끝냈다.

위성미는 16일(이하 한국시간)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과달라하라 골프장(파72. 6,638야드)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하며 생애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실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승이었다. 2002년 13살 때 LPGA투어 대회에 처음 참가했으니까 이번 우승하기까지 꼬박 8년 세월이 걸렸다.

4살 때부터 골프를 시작한 위성미는 그동안 ''여자 타이거 우즈 출현'', ''천재 소녀'', 1천만 달러 소녀'' 등으로 불리며 금새 LPGA 무대를 평정할 것처럼 세상에 알려졌다.

탁월한 신체 조건에 호쾌한 장타력으로 흡사 남자 선수를 연장시키는 그녀의 모습에 미국과 전세계 골프팬들이 열광했다.

14살이던 2003년에 이어 2004년 LPGA투어 메이저대회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초청 선수로 연속 출전한 위성미는 4위를 기록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2005년에는 ''LPGA 챔피언십'' 과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각 2, 3위에 오르는 정상급 실력을 과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 때의 자신감으로 그해 10월 프로 전향을 선언한 위성미는 나이키, 소니 등과 거액의 후원 계약을 맺으면서 ''1천만 달러의 소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프로에 입문한 위성미의 앞 길은 순탄치가 않았다. 2006년에 한번의 준우승과 두번의 공동 3위, 한번의 공동 5위를 기록하며 금방이라고 세계 정상에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무리한 남자대회 출전이 이어지면서 스윙이 무너졌고, 성적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4년 ''소니오픈''을 시작으로 거의 해마다 남자대회에 출전했으나 컷탈락의 쓴맛만 봤다.

이 여파로 LPGA투어 대회에 전력을 하지 못한 위성미는 2007년에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됐다. 그해 5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주최한 대회 1라운드 도중 손목 부상을 이유로 기권했다.

이 때 주위에서는 ''18번 홀까지 88타 이상을 친 투어 비회원은 해당 시즌 투어 출전을 금지한다''는 조항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꼼수를 쓴 것''이라는 비아냥이 일부에서 터져나왔다.

위성미는 결국 2007년에 LPGA투어 대회에 8번 출전했지만 두번의 기권과 세번의 컷 탈락이 이어지면서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특히 2008년 7월 스테이트팜 클래식에서는 스코어카드 사인 규정을 어겨 실격을 당하는 헤프닝을 빚으면서 그저그런 선수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성적도 하위권으로 곧두박칠치면서 LPGA투어에서 퇴출될 위기까지 몰렸다.

[BestNocut_R] 하지만 위성미는 2008년 12월 퀄리파잉스쿨을 거쳐 당당하게 LPGA투어 무대에 당당하게 복귀한 뒤 시즌 개막전인 ''SBS오픈''에서 2위를 차지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LPGA투어에 집중한 위성미는 올 시즌 18개 대회에 출전해 톱10위에 일곱번, 준우승 두번을 차지하는 상승세를 유지한 끝에 시즌 종료 직전에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미래의 ''골프여제''에서 평범한 선수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던 위성미는 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역사적인 우승을 일궈내 다시 한번 전세계가 주목하는 대형 신인으로 거듭나게 됐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세상에 알려져 중견 골퍼로 인식될법도 한 위성미는 아직 20세이 불과한 신인 중의 신인이다.

위성미는 8년간의 산고 끝에 얻어낸 이번 우승을 계기로 세계 골프 역사를 새로 써 내려갈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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