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에 마련된 내란특검 사무실로 출석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조은석 내란 특별검사팀이 12·3 비상계엄 사태 당일 국무회의를 둘러싼 의혹을 규명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주 윤석열 전 대통령을 처음 조사하며 국무회의 과정을 캐물은 특검은 곧바로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소환해 당시 역할 등을 확인했다. 특검은 한 전 총리 등으로부터 확보한 진술을 토대로 이번 주말 윤 전 대통령을 다시 소환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따져 물을 전망이다.
김용현과 대화, 사후 선포문에 서명…한덕수 겨누는 특검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내란특검은 전날 한 전 총리를 서울고검 청사로 소환해 조사했다. 한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3일 오후 8시쯤 윤 전 대통령 연락을 받고 용산 대통령실로 온 인물이다. 당시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를 사전에 알지 못했으며, 뒤늦게 윤 전 대통령 설명을 들었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경찰이 확보한 CCTV에는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거나 계엄 문건을 보는 모습이 담겼다. 또 비상계엄 선포 후 작성된 선포문에 김 전 장관과 함께 서명하고 뒤늦게 문제 의식을 나타내며 폐기를 요청한 의혹을 받고 있다.
특검은 수사를 개시한 뒤 한 전 총리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유지한 데 이어 장시간 조사하며 국무회의 당시 역할 등을 캐물었다. 특검은 한 전 총리가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을 알고도 윤 전 대통령에게 동조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 연락을 받고 대통령실로 온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도 조만간 소환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전날 이들에게 참석을 안내한 김정환 전 대통령실 수행실장도 소환해 조사했다.
국무위원들, '직권남용 피해자' 여부 수사…尹 소환 앞 혐의 다지기
내란특검 출석하는 안덕근·유상임 장관. 연합뉴스 특검이 한 전 총리를 신속히 소환한 것은 그의 내란 공범 혐의 수사 때문만은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한 전 총리 등 국무위원 진술이 필요하다는 게 특검 판단이다. 윤 전 대통령이 직무상 권한을 남용해 국무위원들이 비상계엄 선포 안건을 심의·의결하지 못하도록 권한 행사를 방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박지영 특검보는 "통상 직권남용 피해자더라도 본인이 어떠한 범죄를 구성하는 경우에는 별도 범죄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라며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어떤 행위를 했는데 그 행위 자체가 범죄를 구성하면 양립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특검은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국무위원도 직권남용 혐의 피해자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는 중이다. 전날 조사를 받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경우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대표적인 국무위원이다.
안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당일 오후 9시50분쯤 연락을 받고 대통령실로 가던 중 계엄이 선포됐다고 한다. 유 장관은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한 채 TV를 보고 계엄 선포 사실을 알게 됐다는 입장이다. 윤 전 대통령이 이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면 국무위원으로서 비상계엄 선포 안건을 심의·의결할 권한 행사를 방해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장관과 유 장관은 비상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에는 참석했다. 특검은 안 장관 등에게 당시 회의에서 어떤 발언이 오갔는지 등을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한 전 총리 등으로부터 확보한 진술에 기초해 국무회의 당시 상황을 재구성할 계획이다. 오는 5일 예정된 윤 전 대통령 2차 조사에서 특검은 이들 진술을 제시하며 윤 전 대통령의 직권남용 혐의를 집중 추궁할 것으로 전망된다.
윤 전 대통령은 당초 특검이 요구한 5일 오전 9시 출석이 불가능하다며 1시간 연장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특검이 받아들이지 않자 윤 전 대통령은 예정된 시간에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