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의 한 창고에 쌓여있는 정부 비축 쌀 자루 옆을 한 남성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의 미국산 쌀 수입에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가운데, 일본 정부는 국내 농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쌀을 비롯한 농산물 개방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자동차 관세를 최대 쟁점으로 두고 진행 중인 미·일 관세 협상에서 미국은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압박하고 있지만, 일본은 오는 20일 참의원 선거 등을 앞두고 농업계 표심 이탈을 우려해 쉽사리 응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美 쌀 시장 개방 압박에…"성실한 협의 중" 답변 피하는 日, 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일본은 쌀 부족을 겪고 있음에도 미국산 쌀을 수입하지 않으려 한다"며 일본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무역 서한을 보낼 것"이라며 관세 협상에 쌀을 직접 포함시킬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관방장관은 1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지하고 성실한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농업을 희생시키는 협상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쌀 개방에 선을 긋는 듯한 입장을 밝혔지만, 협상 대상 여부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아카자와 료세이 경제재생상도 같은 날 회견에서 "농업 생산자가 안심하고 재생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중대한 임무"라며 "농업을 희생하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쌀 관세 문제에 대한 직접 언급은 피했지만, 국내 여론이 쌀 시장 확대에 부정적인 점을 의식한 듯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日, 참의원 선거 앞두고 '쌀 개방' 카드에 '진퇴양난'
연합뉴스일본은 현재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자동차 분야에 협상력을 집중하고 있다. 아카자와 장관은 지금까지 총 7차례 미국을 찾아 장관급 협상을 이끌었으며 실무 협상 직후 "상호 이해와 신뢰가 깊어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이 예고한 자동차 관세 25%를 피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미국은 이에 응하지 않은 채 오히려 농산물 등 민감 품목에 대한 추가 개방을 거듭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수출 확대를 통한 제조업 일자리 창출을 대선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는 만큼, 일본에 대해서도 쌀 시장 개방을 구체적으로 요구하며 협상 범위를 농업 분야까지 넓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쌀 개방 문제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일본 농림수산성에 따르면 정부가 쌀값 안정을 위해 '반값 비축미'를 방출했음에도 쌀값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산 쌀 수입이 확대될 경우 국내 농가의 피해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이시바 정권은 정치적 후폭풍을 경계하고 있다. 지지통신은 이시바 내각이 오는 20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무역 협상 결과가 표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농산물 관세를 인하하면 농업계 표심이 이탈하고, 반대로 협상에 실패하면 '협상력 부족'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이중 부담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닛케이신문은 "일본이 곤경에 빠져들고 있다"며 "지금까지 일본이 내민 협상 카드 효과는 역부족으로, 미국 측은 원유·농산물 등 미국산 수입 확대를 거듭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농산물 분야에서는 일본 측의 관세 인하도 계속 요구하고 있는 듯하다"며 일본 정부가 어느 쪽으로도 쉽게 움직일 수 없는 협상 딜레마에 빠졌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