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지난 3월 서울 강동구에서 대형 싱크홀(땅 꺼짐)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숨진 가운데, 서울시가 이미 3년 전부터 해당 지역 싱크홀 사고 가능성을 감지하고 우려했던 사실이 확인됐다. 사고 지점 바로 아래에서 진행 중이었던 '지하철 연장 공사' 설계 단계에서 싱크홀 발생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참사를 막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CBS노컷뉴스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2022년 도시철도 9호선 4단계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이번 싱크홀 발생 지역을 포함한 공사 현장 일대에 풍화층(바위나 암석이 흙으로 변한 층)이 발달해 지반침하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서울시 측의 우려가 담겼다.
구체적으로 서울시는 보고서에서 "계획노선은 풍화층이 깊은 심도로 발달하고 있으므로 지하수위 저하, 지반침하, 싱크홀, 동공 등의 발생 가능성이 높다"며 "지하수 흐름 방향을 고려할 때 공사·운영 시 지하수 유출이 크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지하수 영향 예측을 통해 상부에서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환경부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환경부는 "발파 공사로 인해 건물 균열이나 지반 침하 등의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면밀한 영향 예측과 모니터링을 거쳐 안정성 확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계획 노선 주변의 지반 함몰 이력과 지하 구조물 분포 현황을 조사하고, 이를 토대로 안전성 검토와 저감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기재했다.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는 싱크홀 발생 예방 대책도 포함됐다. 대표적으로 굴착 공법을 NATM(나틈) 공법을 선정하고, 개착 공사 구간에서는 인근 구조물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가시설 공법을 구간별로 수립하겠다는 방안이 언급됐다. 또한 각 공구별로 계측 계획을 세워 시공 중 변화를 지속적으로 관찰하도록 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2022년 9월 작성된 '서울도시철도 9호선 4단계 연장사업 1공구 건설공사 지질(지반)조사 보고서'에서도 지반 침하 위험 구간이 언급됐다. 보고서에는 지반 침하 위험도 평가 결과에 따라, 침하 발생 우려가 높은 구간을 설정하고 해당 구간에 대해서는 차수(遮水)·보강 공법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이 포함됐다.
보고서 '결론' 부분에서는 "지반안정성 확보를 통해 싱크홀 발생 우려를 미연에 방지하는 등 우수한 저감 대책을 적극 강구해 환경보호와 더불어 안정성을 도모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위험도 평가 결과는 1~5등급으로 분류됐는데, 숫자가 높을수록 지반 침하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사업 1공구 건설공사에서 1개 구간은 '위험' 등급을 받았는데, 이 구간은 사고가 발생한 지점으로부터 약 710m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이에 보고서에서는 지반침하 위험 구간에 대한 설계·보강대책을 수립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환경영향평가, 지질조사 보고서 등 설계 단계에서 땅 꺼짐 등 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이 빼곡히 담겼지만 결국 싱크홀 발생을 막지 못했고, 인명피해까지 초래됐다. 서울시가 사전에 위험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막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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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서울시는 사고의 정확한 원인이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현재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라며 "지하철 공사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단지 공사로 인한 땅 꺼짐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경영향평가와 지하안전영향평가, 지질조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침하 위험이 예측된 구간에 대해서는 강관 다단 그라우팅, 차수·보강 공법 대책을 마련됐다"며 "설계 단계에서 마련된 계획이 이후 시공 과정에서 반영되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지반 침하 위험이 '위험' 등급으로 평가된 구간에 대해선 "사고 지점과는 약 710m 떨어진 곳으로, 사고 발생 구간과는 위치가 다르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국토교통부와 함께 조사위원회(조사위)를 구성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조사위가 설계 단계에서 인식한 싱크홀 발생 가능성에 대비한 지반 보강 작업을 적절히 시행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짚었다.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최명기 교수는 "싱크홀, 지반 침하 등을 막기 위해 강관 다단 그라우팅 등 지반 보강 대책을 세웠다면 사고 현장에서 강관 그라우팅 약액이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의문이다"며 "조사위는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사고 위험 가능성이 제기됐던 만큼, 설계 단계에서 세운 대책이 잘 적용됐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