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범죄자의 신상을 무단으로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가 탄생했다. 당시 디지털교도소는 "대한민국의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낀다"면서 "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피해자들을 위로하고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겠다"고 사이트를 소개했다. 디지털교도소 2기 사이트 캡처·스마트이미지 제공지난 2020년 악성범죄자들의 신상정보를 무단으로 공개하는 '디지털교도소'가 등장했다.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사회가 들끓던 시기였다. 끔찍한 고통을 겪는 범죄 피해자들과 달리 정작 가해자들에 대한 적법한 처분이 가해지지 않는다는 공분이 일었고, 디지털교도소도 그런 분노 속에서 탄생했다.
이 사이트는 무고한 사람들의 신상이 잘못 공개되면서 부작용이 발생하자 그해 말 폐쇄됐다. 그러나 이를 기점으로 온라인에선 직접 나서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자처하는 '사적 제재자'가 우후죽순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사적 제재의 범람'을 야기한 장본인이 5년뒤 "(디지털교도소를 통한) 신상공개는 단지 분풀이밖에 안됐다"면서 정의를 실현하고 싶은 마음으로 했던 일이 완전히 실패했음을 깨달았다고 고백해왔다.
스마트이미지 제공25일 CBS노컷뉴스는 '사적 제재' 범람을 야기한 디지털교도소 최초 개발자 A씨를 서면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보도한다. 다음은 디지털교도소 개발자 A씨와의 일문일답.
디지털교도소 최초 개발자와의 일문일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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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분별한 신상공개에 반대한다고 밝혔는데,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스스로 법을 대신해 처벌을 내리기 시작하면 어디까지가 정당한지 경계가 허물어지고 기준이 애매해졌다. 결과적으로 사회 질서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무엇보다 제보의 사실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확실하다고 생각한 증거가 허위였고, 알고보니 무고한 사람이었다면 그 책임은 다 질 수 없는 것이었다.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에서 판단한 결과를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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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특정강력범죄법이 개정되면서 특정 요건을 갖춘 경우 피의자의 신상 정보가 공개된다. 그러나 공개가 지연되거나 비공개 경우도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신상정보공개 제도를 신뢰하면 된다고 생각한 이유가 무엇인가
경험상, 아무리 교차 검증을 거쳐도 개인이 받는 제보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반면 수사기관에서는 개인보다 더 풍부한 자료를 가지고 가해자의 정보뿐만 아니라 피해자 2차 가해 가능성 등 신상 공개의 득실을 정확히 따져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 또 법률을 준수하며 공개하기 때문에 2차 피해 위험성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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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재자들은 저마다 '철저한 검증 방식'을 거친다고 주장한다. 보통 어떤 방식으로 검증하는 건가? 또 직접 해본 결과 한계는 무엇이었나?
나의 경우 범죄자의 판결문이 있으면 그것을 참고하고, 없는 경우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정보를 모았다. 거의 대부분이 피해자 제보를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나, 다양한 증언과 제보를 조합해 교차 검증 과정을 거쳤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조력자의 도움을 받은 개인적 판단이 최선일 뿐, 직접 검증은 불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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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운영해본 입장에서, 현재 정의 구현을 자처하는 다른 사적 제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의는 법과 질서를 통해 이루어져야 하며, 개인 감정이 들어간 판단은 책임질 수 없는 피해를 낳을 위험이 크다.
결정적으로 나는 신상 정보 공개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분풀이 정도는 될 수 있어도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사이트 규모가 커지면서 범죄 예방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으나, 그만큼 더 위험할 수 있는 양날의 검에 불과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A씨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을 하면서 매일 끔찍한 사건들을 접하다보니 스스로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기분이 들 때도 많았고 결국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동시에 왔다"고 밝히며 "득보다 실이 분명한 사적 제재보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범죄 예방을 위해 힘쓰고 피해자가 빠르게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 세상을 더 빠르게 안정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시사했다.
한편, 최근 들어 사적 제재에 나섰던 유튜버들이 법의 심판을 받는 사례는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1월 마약 범죄자를 꾀어내고 이를 생중계하며 구독자를 모아온 한 유튜버는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밀양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무단으로 공개했던 유튜버 '전투토끼'와 그의 아내는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과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등 혐의로 구속기소돼 오는 3월 선고를 앞두고 있다.
지난해 5월 디지털교도소 2기가 등장한 당시 진행한 노컷뉴스 자체 투표에서 '사적제재'에 찬성하는 응답은 전체의 82%에 달했다. 노컷뉴스 홈페이지 캡처사적 제재가 사익을 추구하는 불법 행위에 불과했다는 사례가 속속 밝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대중은 여전히 사적 제재를 지지한다. 최근 대전 초등학생 고 김하늘 양을 살해한 40대 교사에 대한 신상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무분별하게 퍼져나간 것이 그 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디지털교도소 2기가 등장했을 때(참고로 A씨는 이 사이트는 2020년 디지털교도소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진행한 노컷뉴스 자체 투표에서도 찬성하는 응답이 전체의 82%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