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19일 이틀 동안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NCT 127의 네 번째 투어 '네오 시티 - 더 모멘텀'. SM엔터테인먼트 제공긴 시간 9인으로 활동했던 그룹 엔시티 127(NCT 127)이 멤버 탈퇴와 본격적인 군 공백기 시작으로 인해 6인까지 줄어들었다. 데뷔 이래 가장 적은 인원으로 새로운 콘서트 투어를 준비하는 것은 가수인 NCT 127은 물론, 연출가에게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직전 공연 '네오 시티 : 서울 - 더 유니티'(NEO CITY : SEOUL - THE UNITY)로 호평받은 후, 국내에서는 1년 2개월 만에 진행하는 투어이기도 했다.
지난달 18~19일 이틀 동안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네오 시티 : 더 모멘텀'(NEO CITY - THE MOMENTUM)은 주목과 우려가 교차했던 상황에서 NCT 127이 내놓은 믿음직한 답이었다. 인원이 줄었다고 해서 무대에서 표출하는 에너지까지 작아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시작부터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질주했다.
CBS노컷뉴스는 '더 유니티'에 이어 '더 모멘텀'을 연출한 SM엔터테인먼트 공연 연출/제작 유닛 김경찬 수석을 지난 6일 서면 인터뷰했다. 첫 번째 편에서는 세트 리스트(공연 목록)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들어봤다.
'더 모멘텀'을 준비하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해 여름 무렵부터였다. NCT 127의 여섯 번째 정규앨범 '워크'(WALK)가 나왔을 때부터, 김 수석은 '더 모멘텀' 준비를 조금씩 해 나갔다. 그는 "'워크' 앨범이 주는 끊임없이 전진하는 이미지를 주된 영감으로 삼았다. 전진, 엔진을 모티브로 한 키워드를 리서치하다 보니 최종적으로 '더 모멘텀'이라는 타이틀이 채택됐다"라고 말했다.
'더 모멘텀' 첫 곡은 '가스'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NCT 127의 투어는 '디 오리진'(THE ORIGIN)으로 시작해 '더 링크'(THE LINK)와 '더 유니티'를 거쳐 지금의 '더 모멘텀'에 도달했다. "그동안의 공연이 NCT 127의 네오함을 메인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서, '더 모멘텀'은 NCT 127의 주된 색인 '네오(neo)'뿐 아니라 이들이 갖춘 "다양한 색을 확장하는 방향"으로 접근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김 수석은 "이 과정에서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대중적인 콘셉트가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전에 충분히 보여준 SF 무드를 덜고 케이퍼 무비(Caper film)로의 전환을 시도했다. 어떠한 순간에도 한 팀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끊임없이 나아간다는 주제 의식을 보여주기에도 좋은 장르라고 생각했다. 이를 바탕으로 공연 전체의 시놉시스를 만들어 갔다"라고 설명했다.
범죄 영화의 하위 장르인 케이퍼 무비는 무언가를 강탈하거나 훔치는 모습과 과정을 상세히 보여주는 영화다. 공연을 연 트레일러를 시작으로 5차례 등장한 VCR은 전부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제작됐고, 짧은 영화를 보는 듯한 유기적인 이야기로 꾸몄다.
쟈니가 금고를 잘라내는 장면에 맞춰 화면 밖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가스'(Gas) 무대 때 영상 속 소품인 가면이 나오며,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는 내레이션 직후 해당 내용이 가사로 이어지는 '노 클루'(No Clue)가 등장해 보는 재미를 높였다.
'더 모멘텀'만이 가진 가치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구성과 내러티브'와 '시각적 연출'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김 수석은 "구성의 중심에 유기적인 VCR을 두고 무대 위 인터랙티브한 연출로 시각적인 만족도를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VCR마다 명확하게 레퍼런스가 되는 영화가 있다. 내러티브의 핵심이 되는 VCR을 영화적으로 풀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대의 화면비 역시 와이드(넓은)한 비율로 디자인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더 모멘텀' 공식 트레일러 캡처영화적 서사를 공연에 녹이는 것은 김 수석이 10여 년 전부터 욕심내던 콘셉트였다. 김 수석은 "다만 해당 콘셉트는 제 역량과 공연의 규모 등 여러 상황들이 잘 맞아떨어져야 뻔하지 않고 완성도 있게 풀어갈 수 있다고 보아서 지금까지 시도를 유보하고 있었다. 이번 NCT 127 공연이 그때라고 판단했고, 감사하게도 좋은 그림으로 연결된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새 투어 포문을 여는 첫 곡은 정규 6집 '워크' 수록곡 '가스'였다. 많은 관객이 궁금해하고 동시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첫 곡이 '가스'가 된 이유를 물었다. 김 수석은 처음 '워크' 앨범을 들었을 때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2015)이 떠올랐다고 운을 뗐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그룹'으로 불리며 큰 인기를 끈 미국 힙합 그룹 엔더블유에이(N.W.A)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김 수석은 "이 작품을 베이스로 시작하여 시놉시스를 발전시키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상 '가스'가 시각적으로나 내러티브적으로 가장 잘 어울렸다. 멤버들 또한 '가스' 오프닝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 오프닝 곡으로 선정되었다"라고 전했다.
"VCR 영상과 곡 간의 유기적인 흐름"을 중시하며 짠 이번 세트 리스트에서 NCT 127은 '가스'부터 마지막 곡 '다시 만나는 날'(Promise You)까지 총 26곡 무대를 펼쳤다. 김 수석은 "챕터별로 VCR 콘셉트를 제시하고 그 영상에서 이어지는 곡들은 변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멤버들에게 전달했고 그게 받아들여져 지금의 세트 리스트 초안이 완성되었다"라고 밝혔다.
'더 모멘텀' 세트 리스트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파' 무대. SM엔터테인먼트 제공세트 리스트를 꾸리는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는 이른바 '영질팩'를 분리하는 작업이었다. '더 유니티' 때 등장해 '영웅'(英雄; Kick It)-'질주'(2 Baddies)-'팩트 체크'(Fact Check)(불가사의; 不可思議) 구간은 큰 사랑을 받으며 NCT 127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부상한 바 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한 곡이 바로 '파'(Far)다. 멤버들의 의견이 가장 강력히 반영된 노래이기도 하다. "'질주'를 오프닝 섹션으로 배치한 뒤 '영웅'과 '팩트 체크'를 한 흐름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또 다른 노래를 선정하는 것이 고민이었다"라는 김 수석은 "멤버 도영이 '파'를 제안했고, 중요한 위치에 '파'가 들어가게 되면서 연출적으로도 신경을 많이 쓰는 곡이 되었다"라고 소개했다.
'더 모멘텀'을 통해 무대로 처음 공개한 '파'는 공연을 본 팬들의 만족도가 높은 곡 중 하나였다. 혁명을 연상케 하는 전반적인 분위기, 댄서들이 흔드는 깃발, 멤버들의 실루엣만이 남은 엔딩 등 시각적으로도 강렬함이 돋보이는 연출이 고루 어우러진 무대였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파'가 세트리스트 상에서 중요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보니 이 곡을 연출적으로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공연의 성패와도 직결되게 되었습니다. '파'의 초기 세트 디자인은 전진하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탱크였는데요. 이를 활용한 퍼포먼스를 구상하던 중 기존 공연에 많이 쓰인 탱크라는 오브제가 이 곡이 가진 서사를 임팩트 있게 표현하기는 조금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마침 시기적으로도 해당 디자인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부서진 얼굴 세트로 변경이 가능하게 되었고, 이 비주얼이 NCT 127의 현재를 표현하는 데도 효과적이라 판단되어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크의 첫 파트가 시작될 때 세트의 얼굴과 마크의 얼굴을 크로스 디졸브 시킨 것은 이미지의 설득력을 강화하기 위한 연출 중 하나였습니다. 또한 어떠한 모습의 NCT 127이든 끝까지 나아가는 의지를 잃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퍼포먼스 후반 깃발 무대와 산의 형태로 상승하는 리프트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NCT 127은 앙코르 첫 곡으로 '인트로: 월 투 월'을 선곡했고 이후 '삐그덕' 무대를 선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태용-재현의 군 복무 영향으로 '더 모멘텀'은 6인으로 하는 첫 투어가 됐다. 기존보다 줄어든 인원으로 공연을 구성하며 가장 신경 쓴 부분을 묻자, '규모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 수석은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부분이니 고민이 많았다"라며 "프로덕션 적으로 무대를 규모감 있게 펼친다고 해도, 그 위를 어떻게 채워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과제가 여전히 남아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문 댄서와 무대 크루를 분리하여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규모감을 주는 등 해결 방법을 찾아나가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더 모멘텀'에서는 '파'를 비롯해 '가스' '영웅' '레인 드롭' 등 여러 곡에서 대규모 댄서 군단과 함께 무대를 꾸몄다. 김 수석은 "첫 회의에서 결정된 안무팀 인원과 구성에 대한 부분은 아티스트의 이견이 없었다. 댄서를 얼마나 쓸지는 무대 흐름에 따라 안무가와 상의를 하며 정했다"라고 전했다.
보통 '앙코르'는 숨을 고르면서 보다 여유를 갖고 만들어 가는 구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더 모멘텀'은 '워크'의 첫 번째 트랙인 '인트로: 월 투 월'(Intro: Wall to Wall)과 타이틀곡 '삐그덕'(Walk)을 연달아 배치함으로써 마치 본 공연의 새로운 장을 펼치는 듯한 신선함을 유발했다.
이 또한 "'영웅-질주-팩트 체크'라는 견고해진 엔딩 구성을 해체"하고자 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김 수석은 "'삐그덕'과 '영웅' '팩트 체크'를 붙이려는 시도에서 이질감이 해결되지 않았고, 멤버들이 '파를' 추천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삐그덕'을 중심으로 한 섹션이 분리되게 되었다. 앙코르 구간에 해당 섹션이 위치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꽤 깊었으나 모두의 의견이 합치되어 지금의 구성이 만들어졌다"라고 말했다.
NCT 127의 '더 모멘텀' 공연은 전석 매진됐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김 수석은 "'인트로: 월 투 월'이 앙코르 첫 곡으로 가면서 멤버들의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여주는 데에 연출 포인트를 두게 되었고, 끊임없이 걷고 걸으며 결국 한자리에 모인 여덟 명의 멤버들을 이미지화할 수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멤버들은 이번 '더 모멘텀'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127 보여드리겠다"라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공연 연출 면에서 이뤄낸 '변화'와 '발전'을 짚는다면 무엇일까.
"직관적으로 지난 공연에서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완하고 싶었습니다. 연출 감독이 아무리 좋은 그림을 짜도 좋은 공연 스태프들의 실체화와 다양한 파트의 협업 없이는 완벽한 공연을 만들어내기 어렵습니다. 최대한 오랜 시간 저와 같이 합을 맞췄던 기술진들로 프로덕션을 구성한 것과 '더 유니티'와 태용 공연을 통해 의상, 안무 파트들과도 커뮤니케이션의 합을 맞춰 놓았던 것이 이번 공연에서 좋은 퀄리티로 이어지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확한 이미지를 가진 VCR이 다음 무대와 연결되고, 콘셉트를 잘 살린 안무 구성이 나오고, 공연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어주는 의상의 비주얼 등이 보완된 '변화'와 '발전'이 뜻깊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