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19일 이틀 동안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NCT 127의 네 번째 투어 '네오 시티 - 더 모멘텀'. SM엔터테인먼트 제공잔잔하고 서정적인 곡이 나올 때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 별빛을 만들어 내는 것은 으레 관객석의 몫이었다. 지난달 18~19일 이틀 동안 서울 구로구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그룹 엔시티 127(NCT 127)의 네 번째 투어 '네오 시티 - 더 모멘텀'(NEO CITY - THE MOMENTUM)은 달랐다. 멤버 도영은 "시즈니(공식 팬덤명 '엔시티즌'의 애칭, 오늘은 저희가 직접 별빛을 준비했습니다"이라고 예고했고, 고척돔의 천장에는 레이저 은하수가 펼쳐졌다.
전용 공연장이 아니라 야구장으로 지어진 고척돔은 객석 위치에 따라 시야와 음향 전달 정도의 쾌적함 차이가 큰 편이다. 하지만 1만 6천 석 이상의 좌석을 보유한 대형 경기장인 만큼, '단독 콘서트로 고척돔에 진출'하는 것은 아티스트와 팬 모두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특히 NCT 127은 코로나 팬데믹 시기 '거리 두기' 영향으로 '축소 공연'을 한 후 다시 고척돔에 돌아온 입장이었다.
6인으로 처음 선보인 네 번째 월드 투어 '더 모멘텀'을 연출한 SM엔터테인먼트 공연 연출/제작 유닛 김경찬 수석은 지난 6일 CBS노컷뉴스의 서면 인터뷰에서, 고척돔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혔다. 고척돔 3~4층 관객의 만족도도 끌어올린 공연이라는 호평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쳐 준비했는지를 들어봤다.
우선, 고척돔이라는 장소의 특성을 고려해 연출에 반영한 부분이 어디인지 물었다. 김경찬 수석은 "공연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구조'다. 무대의 '구조', 더 나아가 공연장의 '구조'를 생각하면서 씬을 구상한다. 고척돔에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활용한 접근들도 이러한 맥락에서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더 모멘텀'에서는 고척돔 사상 최대 규모인 110대의 레이저가 쓰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그는 "개인적으로 고척돔에서 타 아티스트 공연을 관람했을 때 4층 관객으로서 겪었던 파울 망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야 방해 요소였던 파울 망을 역으로 4층만을 위한 레이저 카운트다운 맵핑에 활용했다. 무대 가장 바깥의 고지대에 있어야 넓은 천장을 한 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착안해 천장을 활용한 연출을 고민했고, 그 결과가 '윤슬'(Gold Dust)의 레이저 은하수였다"라고 소개했다.
이어 "와이드한(넓은) 영상 비주얼도 고척돔 내부 상설 LED의 존재가 있었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 구장 LED에 공연 중계를 내보낼 수 있기 때문에 무대 LED 위에는 과감하게 아트웍을 펼쳤고, 멀리서 볼 때도 만족도가 있는 규모감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부연했다.
전작 '더 유니티'를 대표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삼각형 모양의 대형 스크린이었다면, '더 모멘텀'에서 눈부신 존재감을 뽐낸 것은 '레이저'였다. 이번 공연에는 고척돔 사상 최대 규모인 110대의 레이저가 쓰여 화제를 일으켰다.
김 수석은 "하드웨어적인 장치물의 크기는 사이즈가 큰 공연장으로 갈수록 한계가 있고 무대를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연출은 결국 '빛'이라는 결론이었다. 이 빛으로 3, 4층 관객들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도 있었다 보니 레이저가 돋보이게 된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NCT 127이 '영웅' 무대를 하는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가로 90M-세로 15M 초대형 LED 스크린도 십분 활용했다. '패스터'(Faster) '영웅'(英雄; Kick It) 등의 무대에서 큰 글자가 화면을 가득 채웠고, '프라이시'(Pricey)에서는 각 알파벳에 멤버들의 모습이 들어가게 꾸미기도 했다. 크기로 압도하는 글자를 활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거대한 비주얼이 주는 몰입감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다만 중계 관람을 선호하는 관객들에게는 무대 전체를 지배하는 아트웍이 불친절하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프라이시'는 같은 거대한 타이포 소스더라도 그 안에 중계를 녹이는 등의 디테일을 잡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중계를 더 원했을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다음 공연에서는 어떻게 이런 부분들까지 보완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밝혔다.
원형 커튼, 원형 스크린처럼 생소한 장치는 이번 '더 모멘텀'에서도 등장했다. '잘 못 보던 것'은 낯설기에 자연스럽게 위험 부담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김 수석 역시 "항상 너무 많은 부담이 된다. 새로운 시도는 필연적으로 관객들에게 불친절할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첫 공연 전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털어놨다.
김 수석은 "'노 클루'(No Clue)에서 아티스트가 무대 한쪽으로 치우쳐 노래를 할 때나, '체인'(Chain)에서 레이저 트러스가 세워져 아티스트의 퍼포먼스를 가릴 때나, '터치'(TOUCH)의 풍선이 날아와 관객들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방해할 때 등 새로운 시도의 과정 중 불편함을 느낄 관객들로 인해 고심이 깊어지곤 한다"라고 말했다.
원형 커튼과 원형 스크린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원형 커튼을 두고는 "프로젝션을 했을 때 영상이 깔끔하게 맺히지 않는다는 부분 때문에 끝까지 사용 여부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곡과 세트의 무드가 잘 일치된다는 점에서 최종적으로 사용하게 됐다"라고 전했다.
무엇보다 '더 모멘텀'은 '빛'의 사용을 극대화한 공연이기도 했다. '윤슬'에선 고척돔 천장이 별빛으로 가득했고, '레인 드롭'(Rain Drop)에선 응원봉 제어를 통해 비가 흐르는 듯한 연출이 등장했다.
"'레인 드롭'은 영화 '씬 시티'(Sin City)와 같은 무드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흑백 도시에서의 고독함과 강인함이 믹스매치된 무대를 연출하고자 했고, 이 비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응원봉의 빛줄기를 활용하였습니다. '더 유니티'의 '소나기'에서도 같은 효과를 사용한 적 있는데 그때는 곡의 서정성을 살려주었다면 이번에는 우산 소품 등과 함께 전체적인 비주얼을 강화하는 효과를 준 것 같습니다.'윤슬'은 평소 관객들이 해당 곡에서 플래시 이벤트를 하는 점에서 착안해 바닥의 불빛을 하늘로 확장하여 4층 관객에게 먼저 보이는 그림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공연 당일 팬들의 핸드폰 불빛이 천장의 별빛 연출 효과를 어렵게 만들 것 같아 도영에게 핸드폰 라이트를 켜지말라는 멘트를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팬들과의 이해가 달라 하나둘 켜지는 핸드폰 불빛에 노심초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레인 드롭' 무대 모습.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지금은 자리에 없는 태용과 재현은 '인트로: 월 투 월'(Intro: Wall to Wall)에서 영상과 음성으로 등장해 팬들의 폭발적인 환호를 받았다. 재현은 '레모네이드'(Lemonade) '사랑한다는 말의 뜻을 알아가자'(Meaning of Love) 영상과 마지막 쿠키 영상에도 나왔다.
김 수석은 "'언제나 8명이 함께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이 공연에서 중요한 하나의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 보니 현장에 함께하지 못한 멤버들을 다른 방식으로 무대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수밖에 없었다. 8이라는 숫자를 계속해서 강조한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다"라고 설명했다.
원래 관객 반응을 잘 찾아보지 않다가 SM으로 오면서 회사가 보여줘서 반응을 보고 있다는 김 수석에게 가장 반갑거나 깜짝 놀랐던 반응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지금은 웃음을 줬던 반응들이 생각난다"라며 ''어버이날에 나의 세 번째 아버지, 유니티와 모멘텀을 낳으신 감독님께 카네이션을 드리기로 했다'는 반응과 '무대 멋있다'라는 칭찬과 '멤버가 안 보인다'라는 욕을 동시에 했던 한 관객의 절규가 담긴 영상이 인상 깊었다"라고 답했다.
김경찬 수석은 '팬덤 베이스 관객이 보여주는 몰입을 당연시하고 싶지 않았다'라며 '그 자체로 몰입할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더 모멘텀'에서의 가장 큰 도전은 무엇이고, 서울 공연을 마친 입장에서 그 도전의 '의의'와 전체적인 만족도가 궁금했다. 수많은 이들의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 모인 협업 과정을 가장 깊숙이 알고 경험한 입장에서, 함께 공연을 만든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질문했다.
"NCT 127의 팬이기 때문에 집중하고 즐기는 공연이 아닌, 그 자체로 집중도 있고 즐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팬덤 베이스의 관객이 보여주는 몰입을 당연시 여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티스트의 여러 상황과도 맞물려 이 공연 자체가 모두에게 넘어야 할 하나의 '산'이 되었고, 이 산을 넘는 과정이 무대 디자인을 비롯한 여러 부분에 담겨져 있습니다. 산을 넘는 하이라이트인 '파'(Far)-'영웅'-'팩트 체크'(Fact Check)가 관객들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것을 보니 걱정의 크기에 비해 다행스러운 수준의 공연이었다고 평가해도 될 것 같습니다.뻔한 말이지만 공연은 가수, 스태프, 관객 모두가 함께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연출은 가수, 관객과 스태프들 모두를 만족시켜야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SM에 들어오고 나서 처음으로 다시 모여준 저희 공연 스탭들, 연출 팀원 모두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느끼지만 제가 그리는 보잘것없는 그림을 그 이상으로 만들어 주시는 건 언제나 여러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