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 열린 CJ ENM 30주년 기념 비저너리(Visionary) 선정작 '공동경비구역 JSA'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배우 이병헌, 이영애, 박찬욱 감독, 김태우, 송강호. CJ ENM 제공"긴 세월 동안 배우로서 숱한 굴곡이 있었지만, 가장 그리워할 만한 첫 번째 화양연화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_배우 송강호
국내 최초로 남북관계를 적대적이 아닌 인간적인 시선으로 풀어내며 기존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고, 한국영화의 전환점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 '공동경비구역 JSA'를 두고 배우 송강호는 '화양연화'라고 표현했다.
개봉 25년 만에 '공동경비구역 JSA'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여 영화에 대한 추억을 곱씹으며 의미를 되새겼다.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 열린 CJ ENM 30주년 기념 비저너리(Visionary) 선정작 '공동경비구역 JSA' GV(관객과의 대화)에는 연출자인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이병헌, 이영애, 김태우가 참석했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스틸컷. CJ ENM 제공 '북한=주적'이던 시대, 남북한 군인의 우정을 그리다
지난 2000년 개봉한 '공동경비구역 JSA'는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남한군과 북한군의 우정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그려내며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인정받았다.
박찬욱 감독은 "젊은 세대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공동경비구역 JSA'가 만들어지던 1990년대 후반에는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국가보안법의 구속을 받던 시대"라며 "북한을 주적이라고 부르는 상황에서 군인의 우정을 다룬다면 북한 고무·찬양 혐의로 문제가 생길 수 있던 때였다. 그래서 명필름과 단단히 마음을 먹고 시작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나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며 화해 분위기가 조성됐다. 박 감독은 "덕분에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 일이 됐다. 그러나 만들 당시만 해도 비장한 각오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남북한 병사의 우정을 넘어 사랑을 그려보고 싶다는 의견도 내비쳤지만, 제작사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를 두고 박 감독은 "21세기에 만들었다면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싶지만 1999년에는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영화 속 김태우와 신하균의 눈빛을 자세히 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라며 웃었다.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 열린 CJ ENM 30주년 기념 비저너리(Visionary) 선정작 '공동경비구역 JSA'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배우 송강호, 이병헌. CJ ENM 제공 작품성과 흥행성 모두 인정받은 '공동경비구역 JSA'
'공동경비구역 JSA'는 '달은… 해가 꾸는 꿈'과 '3인조'로 흥행에 실패했던 박찬욱 감독에게 찾아온 세 번째 기회이자, 상업적인 성공을 안긴 첫 영화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박 감독은 이를 두고 "앞선 두 편의 영화가 흥행이 안 돼서 세 번째 기회마저 놓치면 유작이 될 거라는 절박함이 있었다"라고 했다.
이에 이병헌은 "두 편의 작품을 완벽하게 망한 감독과 세 편의 작품을 완벽하게 말아먹은 나의 조합이 만나게 됐을 때 이것보다 더 좋은 조합이 있었을까"라고 농담을 건넨 뒤 "이 영화로 시상식에서 처음으로 '흥행 배우 이병헌입니다'라고 인사했다. 나에게 흥행 배우라는 수식어를 처음으로 안겨줬던 의미 있는 영화"라고 이야기했다.
이영애 역시 "20대 말에 이 영화를 만나서 30대에 좋은 작품들을 할 수 있었고, 다시 박 감독님과 '친절한 금자씨'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나한테는 화창한 30대를 보낼 수 있는 관문이 된 기적 같은 작품"이라고 말했다.
김태우도 "전 국민이 이 영화를 봤든 안 봤든 다 알고 있기에 나라는 배우에 대해 설명하다 안 될 때 'JSA 보였어요?'라고 하면 다 해결됐다"라고 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스틸컷. CJ ENM 제공박찬욱 감독은 '공동경비구역 JSA'을 통해 감독으로서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은 것은 물론이고, 지금의 '박찬욱'을 있게 한 전환점이 된 소중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작을 통해 배우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생각할 계기가 있었는데, 그 깨달음을 기초로 적극적으로 배우들의 의견을 듣고 대화를 시도하며 '공동경비구역 JSA'를 만들었다"라며 "연출자로서 개안하는 사건이었다. 그 이후 내 작품은 모두 여기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의 역량을 입증한 송강호는 처음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너무 완벽한 시나리오라 거절했다. 그는 "그때까지 볼 수 없던 완벽한 시나리오라 오히려 믿음이 안 갔다. 한국영화에서 이를 구현할 수 있을까 싶었다"라며 "그런데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 지울 수 없는 기품이 나를 압도했다. 그 순간 믿음이 갔다"라고 말했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스틸컷. CJ ENM 제공 명장면 된 '사진 엔딩'…"옛날이야기 될 미래 오길"
이날 배우들은 '공동경비구역 JSA' 속 좋아하는 장면을 하나씩 이야기했는데, 이영애와 김태우가 지금도 명장면으로 회자되는 이른바 '사진 엔딩'을 꼽았다.
그러나 이 사진 엔딩 말고도 박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또 다른 엔딩이 존재한다. 이수혁(이병헌)이 죽지 않고 민간인이 된 후 군사 교관이 되어 아프리카에서 활약하고 있는 오경필(송강호)을 만나러 가는 엔딩이다. 그러나 제작사 명필름과의 논의 끝에 지금의 엔딩으로 결정됐다.
박 감독은 또 다른 엔딩을 구상한 이유에 대해 "이수혁이 오경필을 만나러 가는 비행기 안에서 끝난다는 걸 상당히 고집을 부렸었다. 희망을 보면서 끝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송강호는 "그때 '망합니다, 감독님'이라며 극렬하게 반대했다"라며 웃은 뒤 "25년이란 물리적인 시간을 떠나서 한국영화의 성숙도를 생각해 봤을 때, 지금 이 시대에 어울릴 정도로 (시대를) 앞서간 엔딩이었다. 진짜 너무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엔딩이고, 지금 영화의 엔딩이 너무 울림이 있게 잘 나왔다"라고 평가했다.
지난 4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 열린 CJ ENM 30주년 기념 비저너리(Visionary) 선정작 '공동경비구역 JSA' GV(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박찬욱 감독. CJ ENM 제공
'공동경비구역 JSA'는 기획부터 내용 그리고 엔딩까지 2000년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한국영화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를 '화양연화'라고 표현한 송강호는 "엄혹했던 시절, 명필름이 한국영화에 대한 비전을 갖고 이런 훌륭한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었기에 지금 한국영화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됐다"라고 그 의미를 짚었다.
박찬욱 감독은 "해외에서 '공동경비구역 JSA'를 상영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실제 판문점에서 찍었냐는 것"이라며 이러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하는 답변으로 이날의 행사를 마무리했다.
"제가 항상 뭐라고 대답했냐면, 실제 판문점에서 찍을 수 있었다면 이런 영화가 필요하지 않았을 거라는 거였습니다. 아직도 변함없이 '공동경비구역 JSA'의 내용이 우리 젊은 세대에게 똑같은 감흥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어찌 보면 슬픈 일이에요. 50주년 때는 이런 게 옛날이야기처럼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