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내란우두머리' 혐의 등으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법원 담장을 넘고 있다. 황진환 기자내란수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 기소된 가운데, 지지자들의 과격 시위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그간 윤 대통령 체포, 구속 등 주요 국면에서 수사기관과 법원에 반발하며 목소리를 높여왔는데, 일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그 행보가 점차 과열화 돼 결국 서울서부지법을 표적 삼은 폭동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과격 시위의 배경에 윤 대통령의 여론전과 일부 유튜버들의 선동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마저도 물리적 공격 대상이 된 거리의 극단적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선 정치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선 넘은 尹 지지자들…왜 이렇게 화가 났나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4차 변론이 열린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최근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 변론에 참석하면서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에서는 지지자들이 연일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다. 집회 무대에서는 '탄핵 촉구'라는 정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항해 "밟아버리자"는 증오의 표현도 나왔다. 이 밖에도 "부정선거 척결하라", "유튜브가 언론이다"는 외침도 간간히 울려 퍼졌다.
탄핵에 반대하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집회는 지난해 12월 31일 서부지법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가 이뤄지자 본격 격화돼 연일 규모를 키워왔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선 밤샘 집회가 이어졌고,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의 1·2차 체포영장 집행 시점인 3일과 15일엔 집행을 몸으로 막겠다는 이들이 속출했다.
15일 윤 대통령 체포 이후 지지자 집회의 주 무대는 서울 마포구 서부지법으로 이동했다. 특히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이 열린 18일 공수처 차량이 포위 당하고 법원 월담자까지 나오는 등 선을 넘는 행동이 두드러졌다. 그러다가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새벽, 일부 지지자들은 법치주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법원을 상대로 폭동을 벌였다.
경찰의 국회 보고 내용에 따르면 19일 새벽 3시쯤 영장 발부 소식이 보도된 후 서부지법 후문 주변에 집결 중인 300여명이 출입문을 손괴하고 법원 경내로 진입했으며, 이 가운데 약 100여명이 1층 유리창을 깨고 건물 내부 진입했다. 19일까지 이틀 간 집회 대응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경찰관은 51명이다. 이처럼 서부지법 안팎에서 벌어진 불법사태로 구속된 이들만 현재까지 60여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3명은 유튜버로 확인됐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법원의 판단을 줄곧 '불법·무효'라고 주장하며 갈등의 대상으로 만든 윤 대통령에게도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9일 윤 대통령 측 석동현 변호사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보면서'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올리고 "영장심사에서 충분하고 설득력 있게 구속의 위법 부당함을 소명했음에도 오늘 새벽 현직 대통령에 대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며 "납득하기 힘든 반헌법, 반법치주의의 극치"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체포영장 발부 뒤인 이달 1일 관저 앞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전달한 것 역시 갈등을 부추긴 행위라는 지적을 받았다.
과격 집회의 또 다른 원인으로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확산된 가짜뉴스와 증오도 꼽힌다. 영상에 포함된 자극적, 공격적인 주장들이 거리로 전이됐다는 것이다.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김윤태 교수는 "상대방에 대한 혐오, 증오 발언이 온라인 상에서 확산되면서 집회가 폭력화, 과열화 된 경향이 있다"며 "유튜버가 비합리적인 음모론을 확산시키거나 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격렬한 공격을 하면서 사람들이 과거에 비해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김춘식 교수는 "유튜브 영상 만으로 뉴스를 접하는 이들 다수는 자기 세계관에 조응하는 정보를 주지 않고 비교 평가하는 뉴스 미디어를 기본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며 "자기 생각과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며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유튜브 콘텐츠를) 계속 찾는 것으로도 보인다"고 분석했다.
"갈등 해결 기능은 국회에 있어…정치권이 제 역할 해야"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 출석. 연합뉴스이 같은 혼란상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강성 지지층에 초점을 둘 게 아니라, 갈등 조정이라는 본연의 기능 발휘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이재묵 교수는 "거리에 남아 진영끼리 싸우는 대중의 갈등을 해결하는 기능은 국회에 있는데, 정치인들은 계속해서 갈등 해결 권한을 사법부로 보내고 거리로 보내고 있다"며 "진영의 공식적인 대표인 정치인들이 모두 팬덤에 끌려 다니느라 갈등이 거리에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스크랜튼학부 유성진 교수는 "탄핵 판결이 난다 하더라도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계속 남아 있을 것이고, 그들이 폭력적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일 것"이라며 "이를 제도 안에 있는 정치인들이 자제 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국 보수당 등에서는 정치인들이 가짜뉴스나 잘못된 정보를 퍼트리는 유튜버들과 접촉을 하거나 그 정보를 활용하는 당원이 있으면 징계하는 규정을 갖고 있다"며 "제대로 된 정당이라면 지도부에서 (팬덤 선동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