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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일 넘긴 '의사 공백' 메꾼 간호사들…"철야에도 노심초사"



보건/의료

    50일 넘긴 '의사 공백' 메꾼 간호사들…"철야에도 노심초사"

    진료차질 줄이려 시작한 업무확대 시범사업…현장은 아직도 '혼란'
    "여러 科 환자 보게 된 전문의, 내게 어떻게 치료하면 되는지 물어"
    "전공의 복귀하고 체계 정상화된 상태서 PA제도화·간호법 추진해야"
    '협업' 상대인 전공의 향한 안타까움도…"새 국회가 대화테이블 만들라"

    지난달 7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업무를 보고 있다. 황진환 기자지난달 7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업무를 보고 있다. 황진환 기자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가시화된 의료공백이 12일로 50일을 훌쩍 넘기면서 이들의 빈자리를 메워 온 간호사들의 피로와 고민도 커지고 있다.
     
    의사와의 경계가 모호한 업무상 '그레이존'은 최근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는 진료지원(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만이 겪는 애로는 아니다. 종합병원급 이상 수련병원에 소속된 간호사들은 "워낙 짧게 지나간" 4년 전 의료파업 당시를 지금에 견주긴 어렵다고 말한다.
     
    현재 정부는 올 2월 말부터 간호사 수행 업무범위를 확대한 시범사업을 실시 중이다. 지난달 초 한 차례 보완된 지침은 심폐소생술은 물론, 심전도·초음파, 수술부위 봉합 등 현행법상 불법인 간호사의 의료행위를 합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비상진료의 빈틈을 줄이고자 정부가 '승인'한 고육책이지만 상당수 간호사들은 여전히 '업무 분장'의 고충을 호소한다.
     
    공공병원 중환자실에서 일하고 있는 A 간호사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환자가 심장이 안 좋으면 찍는 EKG(Electrocardiography·심전도 검사)가 정규 일과시간에는 아예 수간호사 선생님에게 넘어 왔고, 지난해 간호법 사태 이후 (원내에서) 의사 업무로 정리된 채혈 등은 저희가 다시 맡게 됐다"고 말했다.
     
    이는 명확한 기준에 근거한 체계적 분담이라기보다 임기응변 식의 주먹구구에 더 가깝다는 게 A 간호사의 설명이다. '인력 (값)싸게 돌려막기'라는 표현도 나왔다.
     
    전공의 '막내'에 해당하는 신규 인턴 수급은 끊겼고, 기존 전공의들도 내과 등 극소수를 제외하면 돌아올 기미가 없다. 남아있는 전문의들도 담당과(科) 환자만 볼 수 없게 된 지 오래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여러 과 환자들을 동시에 보며 당직수당을 받는 의사들은 간호사들에게 환자 상태와 필요한 처치를 오히려 되묻는 형편이다.
     
    당직 근무가 의사 두세 명에 의존해 근근이 유지되는 가운데 얼마 전에는 아찔한 일도 있었다.
     
    "어떤 환자 분이 폐동맥 가스가 차서 검사를 해보니 정상범위보다 이산화탄소 수치가 거의 2배 이상이 넘었어요. 환자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당직이신 (전문의) 선생님이 전화를 안 받으시는 거예요.
     
    일단 (당직의사) 오더(order)가 있어야 뭘 할 수 있는데…원래는 공기정화 시스템 때문에 창문도 못 열게 돼있는데, 문 열어놓고 (밤새) 환자분을 계속 두들기면서 잠을 못 주무시게 했어요. 당직이 지나고 정규시간대에 노티(notify·의사소통)가 들어가 겨우 처치가 되긴 했지만, 너무 불안했죠. 언제 (환자가)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거니까…."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지난 8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스마트폰을 하며 동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따른 의정갈등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지난 8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간호사가 스마트폰을 하며 동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A 간호사는 "저희도 (대응)방법은 알지만, 섣불리 못 움직이는 상황이다. 제일 난감한 건 본인은 (진료과에서) 중환자를 전혀 본 적이 없다면서 병동에서 쓰는 치료법을 물어보는 경우"라며 "그걸 왜 저희한테 물으시냐 하면 '모르는데 치료를 어떻게 하느냐'고 나오니 좀 당황스럽다"고 털어놨다.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서 10여 년간 근무한 베테랑 간호사 B씨는 "20년 가깝게 일해 온 직장이 계속 예상치 못한 적자가 생기고, 어떤 병동은 통·폐합돼 아예 없어지는" 급격한 환경 변화에서 비롯된 불확실성이 가장 괴롭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병원에서 계획했던 사업 등이나 제가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생각했던 플랜들도 모두 '올스톱' 된 상태"라고 밝혔다. B씨는 "저 역시 국민 입장에서 의사 증원 필요에 공감하는 것은 맞다"면서도 "선거를 앞둔 특수한 상황에서 너무 급하게 진행돼 일선의 혼란이 커진 부분은 유감"이라고 언급했다.
     
    일반 간호사와 PA 간호사, 전문간호사 등 연차와 자격에 맞춰 수행업무에 차등을 둔 대책도 현장에 온전히 안착하진 못한 모양새다. B 간호사는 "시범사업에 투입되는 PA도 임상 경력 3년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그 요건은 지킨다 해도 교육기간이 짧은 팀은 하루, 아니면 길어야 닷새인 경우도 봤다"고 우려했다.
     
    그는 "삼성(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은 아무래도 규모가 되다 보니 전담간호사로 (전공의 공백을) 커버하는 체계를 더 견고히 하겠다는 (병원 차원의) 구상도 있다고 하더라"며 "저희는 어차피 병상을 많이 줄였다 보니 내부 인원으로 (부족분을) 채워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가장 유사한 수준으로 전공의 업무를 대체할 전문간호사는 TO(정원) 자체가 적은 만큼 병원들의 채용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건의로 대통령이 거부권(재의요구권)까지 행사한 '간호법' 입법이 어느덧 당정에 의해 스멀스멀 재점화되는 것도 정부의 진의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라는 지적이다.
     
    A 간호사는 "말이 PA(진료지원)지, 그 보조의 범위에 들어가는 가짓수가 엄청 많다"며 "전공의 선생님들도 복귀하고 의료체계가 조금 잡혔을 때 법제화돼야 한다고 본다. 지금은 그저 싼 인건비에 업무를 좀 더 얹어주는 것밖에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한간호협회도 간호행위에 대한 수당을 신설해 주겠다는 확답을 (정부로부터) 얻고 '(추진) 오케이'를 했으면 좋겠다. '추후 검토' 정도로는 안 된다"며 "정부가 언제 또 말을 바꿀지 모르는 상황이니 좀 더 신중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이밖에 '무급휴가'를 반강제로 권고 받은 상급종합병원 간호사들을 종합병원(2차 의료기관)으로 파견하겠다는 정부의 대책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탁상공론"(A 간호사), "군의관·공보의처럼 투입에 비해 메워지는 간극은 미미한 저효율 대책"(B 간호사) 등의 쓴소리가 이어졌다.
     
    의정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0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앉아 있다. 연합뉴스의정갈등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 10일 서울 시내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앉아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들은 병실에서 누구보다 가까웠던 '동료'인 전공의들을 향한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대외적인 직역단체 간 대립구도와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B 간호사는 "전공의특별법이 생기기 전부터 근무시간 등 굉장히 힘들게 일하는구나 싶었다"며 "(병동에서) 상주하며 같이 고생을 많이 하다 보니, 또 연차가 10년이 넘어가다 보니 그 전공의들이 전문의가 되고 해당 과 교수님이 되는 모습도 지켜봐왔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 전까지는 서로 솔직한 대화가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4월까지 와버렸다. 총선이 끝났으니 국회에서 새로운 (의·정 간) 대화 테이블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A 간호사 또한 "개인적으로는 병원에 남아있고 싶어 하는 전공의들도 만났다"며 "의사 사회도 일종의 사회생활이다 보니 (선배인) 전문의들이 권면하면 눈치를 봐야 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더라"고 말했다.
     
    아울러 "보통 저희 병원은 레지던트 1년차에서 2년차로 넘어갈 때 중환자실에 오는데 이렇게 떠나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손의 감각도 무뎌질 수밖에 없다"며 "수료 막바지인 레지던트들도 다시 1년을 (수련)해야 하는 상황이니 이런 점도 안타깝다"고 밝혔다.
     
    그는 "간호사들은 결국 의사와도 같이 협업해야 하는 입장"이라며 "이 사태가 정치적인 소스(소재)로 더 악용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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