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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스포츠레터]''빅볼 vs 스몰볼'' 전쟁, 올해의 승자는?

[임종률의 스포츠레터]''빅볼 vs 스몰볼'' 전쟁, 올해의 승자는?

19번째 편지-올 시즌 야구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

최근 야구계에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말이 ''빅볼''과 ''스몰볼''입니다. 딱히 정의내리긴 힘들지만 강공, 정면승부 등 선수들의 판단과 힘을 믿고 맡기는 야구와 번트, 톱니바퀴 같은 투수 교체 등 세밀한 작전이 주를 이루는 야구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언제부터 이 용어들이 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지난 2006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오 사다하루(왕정치) 일본대표팀 감독이 스몰볼이란 말을 사용한 이후 널리 쓰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빅리그로 불리는 메이저리그에 대비된 아시아의 빠르고 정교한 야구를 표현한 말입니다.

어쨌든 이후 국내외 언론에서도 빅볼과 스몰볼이란 용어를 즐겨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 2회 WBC 준결승전에서 한 미국 야구기자가 세밀한 야구의 일본에 빅리거들로 구성된 미국이 패한 것을 두고 "오~! 스몰볼"이라며 탄식했으니 야구본토에서도 일반적인 용어가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국내 야구도 ''빅볼 vs 스몰볼'' 양분…''3 대 5'' 구도로 격돌

국내 프로야구 팀들에도 이 용어를 적용하는 게 맞을는지는 모르겠지만 야구 보는 재미를 더하는 것만큼은 분명할 듯합니다. 각 팀 사령탑들의 성향이 다르긴 하지만 억지로 끼워 맞춘다면 얼추 이 두 가지 스타일로 구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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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믿음의 야구''로 대변되는 김인식 한화 감독은 대표적인 빅볼 야구의 신봉자로 볼 수 있습니다. OB(현 두산) 시절부터 강공을 즐겨 써왔고 초대 WBC 사령탑 때는 ''스몰볼''을 주창한 오 사다하루 감독에 뚜렷하게 대비가 됐습니다. 김감독의 뒤를 이어 두산을 맡은 김경문 감독 역시 믿음 야구로 국내외 무대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제리 로이스터 롯데 감독은 메이저리그 출신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작전야구의 선두 주자는 역시 ''야신''(野神) 김성근 SK 감독입니다. 상대에 맞춰 거의 매번 바뀌는 맞춤타선과 공식과 같은 투수진 운영 등은 김감독의 전매특허입니다. 김재박 LG 감독은 ''그라운드의 여우''라는 현역 시절 별명이 현대(현 히어로즈) 사령탑 시절부터 그대로 적용될 만큼 다양한 작전을 구사합니다.

김시진 히어로즈, 조범현 KIA 감독은 각각 김재박, 김성근 감독과 코치로서 오랜 기간 함께 하며 영향을 적잖게 받은 만큼 ''스몰볼''의 범주에 속하는 게 맞겠습니다. ''지키는 야구''를 표방하는 선동열 삼성 감독은 일본을 평정했던 경험까지 더해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합니다.

두 스타일을 나누는 기준이 절대적일 순 없겠지만 그 척도 중 하나인 희생번트 갯수를 보면 이해가 더 빠를 수 있습니다. 7일 현재 SK가 80개로 1위, 그 뒤를 LG(57개), KIA(45개), 히어로즈와 삼성(이상 41개)이 잇고 있습니다. 반면 두산이 21개로 가장 적고 한화가 25개, 롯데는 35개에 불과합니다.

▲7일 두산-SK전, 빅볼-스몰볼 충돌…경기의 중심 ''선수냐, 벤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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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볼과 스몰볼 충돌의 단적인 예는 지난 7일 잠실 두산-SK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김성근, 김경문 두 감독은 자신의 야구를 딱히 규정짓는 것을 꺼립니다. 실제로 김성근 감독은 올 시즌 한 인터뷰에서 "난 스몰볼이 아니라 김성근식 야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김경문 감독도 이날 "자신의 야구를 빅볼이라고 생각하는가"란 질문에 "빅볼이라기보다 팀이 처한 상황에 맞게 하는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하지만 김경문 감독은 이날 경기 전까지 5연패를 당한 가운데서도 "선수들이 이겨줄 때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2연패 중이던 김성근 감독은 이날 경기고에서 박재상, 김강민, 나주환, 박정권, 정상호 등 주력선수들의 특타를 지도하느라 경기 시작 약 45분 전에야 잠실구장에 도착했습니다.

두 감독의 개인적 성향 탓도 있겠지만 경기의 중심을 어디에 놓고 있는가 하는 의견에서 빅볼과 스몰볼의 차이를 보이는 예가 아닐까 합니다. 숫자는 다르지만 같은 연패에 빠진 위기 상황을 선수에 맡기느냐, 벤치가 주도하느냐의 차이라는 겁니다.

이날 경기에서도 이날 두 가지 스타일이 대비됐습니다. 두산은 1회 김현수의 좌월 2점 홈런과 3회 김동주의 적시타, 4회 김현수의 좌중간 3루타로 4점을 냈습니다.

SK는 0-2로 뒤진 2회 박정권의 2루타와 정상호의 볼넷으로 만든 기회에서 최정의 희생번트와 나주환의 희생플라이로 차근차근 따라붙는 모양새였습니다. 8회는 1사에서 박정권의 안타와 정상호의 2루타로 1점을 냈지만 이때는 1-4로 뒤진 상황이어서 아웃카운트를 늘리기보다 대량득점을 위한 강공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경기는 두산의 4-2 승리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게 빅볼과 스몰볼의 승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날은 SK 선발 고효준이 3회 손시헌을 공으로 맞혀 응급실으로 이어지는 소동이 벌어지면서 흔들려 조기강판된 것이 전체 경기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 이날 1경기로 두 야구 스타일의 고하를 가리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2000년대 ''스몰볼 득세''…9시즌 중 7차례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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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00년대 들어 국내 프로야구는 스몰볼의 득세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까지 9시즌 동안 스몰볼은 7차례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가져갔습니다. 빅볼은 2001년 김인식 감독이 이끌던 두산과 이듬해 김응용 삼성 라이온즈 사장이 이끈 삼성이 우승했을 따름입니다.

김응용 사장은 2004년을 끝으로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해태(현 KIA) 시절부터 김성한, 선동열, 이종범 등 빼어난 선수들을 믿고 경기를 맡기는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는 감독이었습니다. 해태 시절 9차례를 비롯해 삼성에서 꼭 전인미답의 10번 우승을 이뤄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스몰볼 스타일의 야구가 제패했습니다. 2000년 우승으로 밀레니엄 시대를 열어젖힌 김재박 감독의 현대는 03, 04년까지 3차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뒤를 이어 선동열 감독의 삼성과 김성근 감독의 SK가 05~08년까지 나란히 2연패했습니다.

특히 지난해까지 최근 5시즌은 스몰볼의 완승이었습니다. 04년 현대가 김응용 사장의 삼성을 9차전까지 가는 혈투 끝에 물리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선동열 감독 체제로 변화한 삼성은 05년 김경문 감독의 두산과 이듬해 한화를 눌렀습니다. 두산은 지난해까지 2년 연속 SK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올해도 SK는 선두를 질주하며 3연패를 향해 순항 중입니다. 순위에서도 김인식 감독의 한화가 최하위로 처진 가운데 스몰볼이 순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올해 승자는 과연?…국제대회선 빅볼 감독들, 강세 ''아이러니''

국제대회

 

다만 최근 2시즌 준우승에 머문 두산이 2위로 SK를 추격하고 있습니다. 로이스터 감독의 롯데도 4위를 달리며 2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고 있습니다. 일단 현재는 3위 KIA까지 두 스타일의 야구가 가을잔치 4장의 티켓을 놓고 맞서는 형국입니다.

물론 공동 5위 히어로즈, 삼성과 7위 LG까지 롯데와 승차가 2경기 이내라 막판까지 혈전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선발진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롯데지만 강력한 타선의 히어로즈와 LG, 불펜이 돋보이는 삼성도 4강 후보로 손색 없습니다. 한화도 처지긴 했지만 최근 김태균의 부활 등 타격이 상승세입니다. 다만 무너진 마운드를 어떻게 추스르냐가 변수입니다.

스몰볼의 질주냐, 빅볼의 역습이냐. 뜨거운 열기를 이어가고 있는 올시즌 프로야구의 재미를 더하는 또 하나의 볼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p.s-최근 5시즌 동안 프로야구 준우승에 그쳤던 ''빅볼'' 감독들은 그러나 국제무대에선 지대한 성과를 올렸습니다. 김응용 사장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사상 첫 메달(동)을 안겼고 김인식 감독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과 2006년 WBC 4강, 올해 준우승을 일궈냈습니다. 김경문 감독은 지난해 베이징에서 기적같은 올림픽 금메달 신화를 이뤄냈습니다.

[BestNocut_R]물론 국제무대가 단기전인 만큼 빅볼만 고집하지 않고 스몰볼을 적절하게 구사했을 터입니다. 하지만 이런 감독들이 최근 5년 간 국내 무대에서 고배를 마신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불어 빅볼과 스몰볼을 포함한 야구의 오묘함을 보이는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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