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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들기]'미남당'이 소환한 K-드라마 '착취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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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파고들기]'미남당'이 소환한 K-드라마 '착취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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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심요약

    전 세계 인기 K-드라마 이면엔 불법 노동 문제 잇달아
    '미남당' 사태 '주 52시간 탄력 근무'? "근로자 인정부터"
    적은 제작비·잘못된 관행 그대로…KBS·제작사 응답할 때

    "(제게는) 죄의식이 있어요. 유달리 추위를 탔던 막내 스크립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친구가 편집기에 손을 대고 앉은 채로 세상을 떠났다는 겁니다. (현장에서) 죽거나 다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이은규 전 MBC 드라마 PD)

    "(드라마 촬영장에서) 막내 스태프가 허리를 부여 잡고 앉아 있었죠. 병원 가서 치료 받자고 하니까 이 친구는 병원을 가면 오늘 일당, 앞으로 임금이 없어요. 본인도 '갈 수가 없다'고 일을 하더라고요. 이게 무슨 현장입니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박찬희 위원장)  


    고(故) 이한빛 CJ ENM PD가 세상을 떠난 지 6년이 흘렀다. tvN 드라마 '혼술남녀' 촬영 55일 동안 휴식은 2일, 수면시간은 평균 4시간이었다. 해고된 비정규직 스태프들에게 계약금을 환수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심적 압박에 괴로워하던 그를 회사는 무능한 '근태불량'으로 판단했다. 결국 그는 '혼술남녀' 마지막 촬영일에 실종돼 2016년 10월 26일 사망 사실이 확인됐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2017년 박환성-김광일독립 PD, 2020년 이재학 청주방송 PD, 2022년 이힘찬 스튜디오S 프로듀서까지, 우리는 또 다른 '이한빛들'을 잃어야 했다.

    누군가의 꿈과 삶이 사라지는 비극 속에서도 방송가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주 6일 반 근무, 하루 18~20시간 노동이 당연하던 시절보다는 나아졌다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일하기엔 멀었다. 방송 미디어 종사자들, 특히 방송 스태프들의 하루는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이자 '불법'의 온상이다.

    글로벌 K-드라마? '미남당' 불법 노동 그림자

    KBS,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KBS,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첫 방송 시청률 5.7%(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기록한 KBS 2TV 월화드라마 '미남당' 사태는 전 세계적 사랑을 받는 K-드라마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상징한다. 화려한 K-드라마 산업의 이면에는 스태프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힘입어 '가장 값싸게 양질의 콘텐츠를 찍어내는 가성비 국가'란 오명이 따라 붙는다. 빛나는 결과물 속 정도만 다를 뿐, 착취의 '망령'은 방송가를 떠돌고 있다.

    '미남당' 사태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근로 조건 개선을 요구한 스태프들에 대한 불법 해고가 이뤄졌느냐, 그리고 '주 52시간'을 지켜 제작했느냐. 이달 초 장시간 노동과 불법 해고 문제가 공론화되자 제작사는 "계약서 내용대로 주 52시간을 준수하며 촬영했고, 일부 스태프들이 새로운 조건을 요구하며 재계약에 동의하지 않아 계약서 내용에 따라 계약종료가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이하 방송스태프지부)와 여러 시민단체들은 제작사와 KBS에 책임 있는 조치를 꾸준히 요구했지만 이들 입장은 현재까지 "달라진 것이 없다".

    지난 27일 '미남당' 제작발표회 당일에 이뤄진 규탄 기자회견에서 '미남당'에 스태프로 참여했었던 박찬희 위원장에 따르면 현재 현장에서는 여전히 불법적인 장시간 근로가 계속되고 있다.

    박 위원장은 "새로 스태프들이 들어왔지만 근로 시간은 예전 그대로 불법인 걸로 들었다"며 "저도 '미남당'에 참여했지만 (표준) 근로계약서 작성, 4대 보험 등이 보장되는 상업 영화 현장과 다르게 드라마 현장은 계약서에 불합리한 내용이 많다. '문제가 생기면 스태프 책임'이란 식이다. 결국 스태프들이 말을 못하고, 눈치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근로 환경은 현장 내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게 묵살될수록 문제점이 드러난다"라고 꼬집었다.

    해고 스태프들은 6개월 동안 법정근로시간을 초과해 촬영해왔고, 1주 최대 12시간까지 가능한 연장 근로시간을 '최대 23시간' 초과하기도 했다고 이야기한다. 제작사는 일 평균 3시간에 달하는 세트장 이동 시간과 장비 정리 1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주 52시간을 지켰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방송스태프지부 김기영 지부장은 29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제작사 피플스토리컴퍼니도 나름대로 52시간을 지켰다고 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촬영이 없던 시기를 근로시간 계산에 넣더라. 그러면 평균 시간이 확 떨어진다. 하지만 노무사 검토 결과, 지금 법정 연장 근로시간을 초과한 주가 18주에 달하고, 주 4일 근로만으로 52시간을 초과한 주가 2주 있었다. 자정을 지나 퇴근해 같은 날 오전 9시까지 다시 촬영 현장에 출근하는 등 8시간 휴식이 불가했다. 결국 현장 이동과 정리, 귀가 시간을 제외하면 4~5시간밖에 쉬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18·2019년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방송 스태프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임을 인정 받았지만 열악한 근로 환경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남당' 제작사는 법정근로시간뿐만 아니라 △근로계약서 미작성 △근로시간·휴게시간 미지정 △임금의 구성항목·계산방법 및 지불방법에 관한 사항 미지정 △휴일·휴가 미지정 △취업의 장소와 종사해야 할 업무에 관한 사항 미지정 △4대보험 미가입 등 근로기준법을 다수 위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윤지영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제작사의 주장은) 탄력적 근로시간 같은 개념인데 이는 '취업규칙'이 적용돼야 가능하다. 그런데 제작 현장에는 '취업규칙' 자체가 없었다. 애초에 근로자로 인정을 하지 않으니 일당으로 끝나고, 연장, 야근, 주휴 수당이 하나도 인정이 안됐다. 이게 모든 문제의 발단이다. 관행적으로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으니 불법이 남발한다"고 지적했다.

    또 '해고'가 아닌 '계약종료'라는 제작사 해명에도 "통상 드라마 같은 경우는 처음 참여했던 스태프들과 촬영 마지막까지 계약이 갱신된다. 갱신기대권이 있음에도 스태프 의사에 반해 해지를 했다면 충분히 해고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스태프가 먼저 촬영을 원하지 않았다면 해고로 보기 어렵지만 계속 하고 싶었음에도 교체되면 해고"라고 반박했다.  

    적은 제작비→방송사 관행 '악순환'…이제는 직면할 때

    사실상 현장에서 하는 업무는 동일하다. 그러나 적은 제작비와 관행을 버리지 못하는 방송사, 주 2회 편성 등은 영화, OTT 등 콘텐츠 현장과 방송사 중심의 드라마 현장 간 괴리를 만들었다.

    김 지부장은 "다수 스태프들의 증언에 따르면 KBS가 근로 시간이나 임금의 전반적인 수준이 열악한 편이다. 제작비를 적게 준다는 거다. '미남당'을 촬영 120회차로 18편을 찍기로 계약을 했는데 이 편수면 150회차는 되어야 제대로 촬영이 가능하다. 제작비가 적으니까 오히려 제작사에서는 사람을 쥐어 짤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짚었다.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제공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방송스태프지부 제공그러면서 "보도 기능이 갖춰진 방송사 권력 문제도 있다. 지난해에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방송사를 불러 표준계약서를 논의하자고 했는데 한 군데도 오지 않았다. 영화계는 배급·투자사들이 정부가 부르면 다 오기 때문에 노사정 협의가 가능하다"며 "방송사가 OTT 때문에 제작 권력 구조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는 추세이지만 지금까지 해온 '갑질'은 계속되고 있다. 유독 바뀌지 않는데 이건 의지가 없다고밖에 판단이 안된다. 지금은 하루 15시간 촬영이라면 예전에는 주 4일에 60시간, 68시간, 80시간 돌리는 시스템이었다"라고 전했다.

    특히 미니시리즈로 정착된 '주 2회' 편성에 대해서는 "주 1회 편성이 가능하고, OTT 시리즈들은 통상 그렇게 한다. 그런데 방송 드라마는 미니시리즈로 주 2회 편성이 자리 잡으면서 그게 당연하게 됐다. 방송사로서는 연달아 프로그램을 붙여서 방영하니 시청률이 잘 나와서 이를 선호한다. 그러나 현재 '주 52시간' 적용에 OTT와의 경쟁 때문에 작품 퀄리티 역시 훨씬 높게 만들어야 되는데 '120분 짜리 영화' 한 편을 만드는 스케줄은 착취 없이는 불가능하다"라고 비판했다.

    이런 가운데 '미남당' 제작사와 방송사 KBS는 책임을 지는 대신 침묵과 방관을 택했다. 시간이 지나면 논란이 잊혀지길 기다리는 '눈치게임'과 다를 바가 없다. 충실한 반박 혹은 답변이나 사과 없이 그저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불법 노동 문제에 민감해야 할 공영방송의 가치와 기준은 내부 문제가 되자 무뎌졌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김영민 센터장은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드라마 제작이 워낙 몇 개월 안에 이뤄져 노사 갈등이 잘 벌어지지 않으니 대충 회피하고 넘어가는 게 반복된다.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회피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근로시간 총량을 지키는 게 전부가 아니다.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일을 해야 된다. 일 24시간, 주 2일만 일한다면 이걸 두고 근로시간을 지켰다고 할 수 있나. 제작사와 KBS 모두 제대로 답해야 할 부분인데 묵살하며 대충 넘어가려고 하는 상황이다. 시청자들이 '미남당'을 즐기려면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 온당한 역할"이라고 조언했다.

    코로나19를 지나며 방송 미디어 종사자들의 콘텐츠 경계는 사라지고, 개별 계약이 활성화됐다. 상업 영화 현장을 겪은 스태프들은 드라마 현장 속 불합리나 부조리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일감이 끊길 우려에 차마 말하지 못했던 분위기가 점점 깨지고 있는 것.

    일례로 이번 '미남당'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에 스태프들만 250명이 참여했다. 방송스태프지부에 따르면 현재 제작·방송 중인 드라마 스태프들이 상당수 포함된 수준이다. '미남당' 해고 스태프들 외에도 뜻있는 현장 스태프들까지 8명이 모여 고용노동부에 특별근로감독 진정을 넣었다. 방송스태프지부는 '미남당' 촬영이 끝나는 7월 중순 전까지 현장에 근로감독이 이뤄져야 된다는 입장이다.

    "언젠가 모든 스태프들이 개별 근로계약을 할 수 있고, 시급 시스템이 되도록 만들 겁니다. (제작사와 방송사가)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도태되도록 할 겁니다." 방송스태프지부 김기영 지부장의 다짐이다.

    변화는 느리지만 분명히 일어난다. 김 지부장의 말처럼 시기를 놓치면 도태되는 건 순식간이다. 제작사와 KBS가 지금 이 순간 '미남당' 스태프 불법 해고 및 연장 근로 사태를 책임지고 똑바로 직면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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