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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EN:]강간 협박은 일상…여성 기자들 겨냥한 '온라인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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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EN:]강간 협박은 일상…여성 기자들 겨냥한 '온라인 폭력'

    여성기자들, 기자+여성까지 '이중적 혐오' 경험
    정신적 트라우마 유발해 업무 및 경력에 지장
    언론사 조직적 대처 시스템 없어…공론화 포기
    "성평등한 조직문화 필요…언론 단체들 연대해야"

    그래픽=노컷뉴스그래픽=노컷뉴스"너 때문에 휴지 한 통 다 썼다" "네 가족을 다 강간하겠다" "밤길 조심해라". 입에 담기 어려운 성희롱과 협박이 담긴 이 말들은 실제 여성기자들이 겪는 온라인 폭력의 일부다.

    17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가 주최한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에서는 지금까지 공공연하게 벌어진 여성기자들에 대한 온라인 폭력을 공론화했다.

    미디어 전문가들은 '기레기(기자+쓰레기의 합성어·기자 혐오) 담론'에 '여성혐오'까지 더해진 현상에 대다수 여성기자들이 정신적 피해를 입고 있는 실태를 들여다봤다.

    한동대 김창욱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와 경남대 신우열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공동 연구한 '여성기자 온라인 괴롭힘에 관한 저널리즘 사회학적 연구'에 따르면 방송사, 신문사, 통신사, 인터넷 언론사 등 총 14개사 중 20명(여자 19명·남자 1명)을 대면 인터뷰한 결과 여성기자들은 일상 속에서 심각한 수준의 온라인 괴롭힘에 노출돼 있었다.

    연차와 부서, 나이를 불문하고 이러한 괴롭힘은 마치 '공기'처럼 존재하며 과거와 대비해 양적인 면에서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정치·법조 이슈, 난민·소수자 이슈, 젠더 이슈 등에서는 그 괴롭힘이 더욱 격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일한 기사를 작성해도 여성기자와 남성기자가 경험하는 혐오의 유형이나 빈도, 그 정도가 달랐다. 여성기자들의 경우 기자 혐오에 여성 혐오까지 더해진 '이중적 혐오'를 경험했다. 남성기자가 겪지 않는 '외모 비하'나 '강간 협박' 등의 괴롭힘이 그것이다. 예를 들어, 남녀기자가 함께 기사를 작성했지만 여성기자에게 훨씬 많은 공격이 와서 여성기자만 취재직을 그만두거나, 남성적인 이름을 가진 여성기자가 자신의 프로필란에 사진을 올린 후 갑자기 여성 비하 악성 댓글이 늘어나는 식이다.

    가장 흔한 혐오성 메시지 유형에는 욕설은 물론이고, 음란 사진이나 악성 댓글 등 성희롱, 강간, 살해, 가족 위협 등 협박, 오프라인 공격까지 존재했다. 기존 여성들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 유형 역시 동일하게 발견됐다. 외모 품평이나 비하를 포함해 나이에 따른 차별적 표현, 여성의 신체적 특징에 대한 혐오, 여성의 능력에 대한 공격 등이다.

    결국 이러한 괴롭힘은 여성기자들에게 정신적 트라우마를 유발한다. 공황장애, 우울증, 번아웃 등이 발생할 수 있으며 '무력감'과 '두려움'은 업무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사회 정의를 추구하고, 약자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기자의 노동 동기가 저하되거나, 기사 작성·취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검열을 일으켜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를 막을 시스템이 개별 언론사에도, 사회에도 부재하고 있다. 결국 기자는 개인적인 대처로 특정 주제나 부서를 회피하거나 개인 SNS 폐쇄 등 온라인 신상 공개 위험 소지를 전면 차단한다. 이 같은 대처는 여성기자들 업무 및 경력 개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극심해지면 직업 자체를 그만두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사실상 △ 내부적 괴롭힘 대응 가이드라인 △ 소송 등을 통한 법률적 도움 △ 트라우마 치료 및 상담 등 조직 차원의 대처가 절실하지만 현재 국내 언론사 대다수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응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영상 캡처한국언론노동조합 유튜브 영상 캡처그렇다면 왜 언론사는 자사 기자들 보호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을까. 언론사 내부에는 온라인 괴롭힘을 '외부 억압'으로 치부하면서 '더 큰 정의를 위해 강한 정신력으로 이겨내야 참기자'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언론 권력이 '약한 시민' 대상으로 소송한다는 외부 시선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한다. 결국 이로 인해 온라인 괴롭힘의 피해자인 기자 당사자까지 '암묵적인 선'을 느끼고 공론화를 꺼리거나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는 상황까지 왔다.

    언론노조 SBS본부 류란 성평등위원장은 "공적인 의미에서 좋은 일을 하기 위해 기자가 된 것은 사실이지만 개인의 정신 건강에 대한 중요성은 가치 절하할 필요가 없다. 물리적 폭력만큼 큰 폭력"이라며 "그런데도 자꾸 자기 비하를 하고 위축되더라. '내가 이런 일(온라인 괴롭힘 문제 해결)에 힘을 쏟을 게 아니라 제보자나 피해자 이야기를 더 들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료도 있었다. 온라인 괴롭힘 때문에 '번아웃'이 되는데도 그것에 취약한 사람이 아니고 싶어서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언론사 조직이 온라인 괴롭힘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성평등한 조직문화 조성이 병행 돼야 한다. 여성기자들에 대한 괴롭힘 양상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성차별적 인식이 뿌리 깊다면 결코 이런 괴롭힘을 공론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은사자 활동가는 "조직문화가 성차별적인 직장이라면 독자에 의한 성적 괴롭힘 모욕 등 문제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조직에 보고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구성원이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조직, 여성기자로서 괴롭힘 피해를 입었을 때 자신의 어려움을 꺼내 놓을 수 있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평등한 조직문화와 함께 구성원을 보호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언론사가 독자를 상대로 소송한다는 프레임이 아닌 언론사가 구성원이 안전하게 노동할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의견과 비판으로 보고 어디부터 괴롭힘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조직 내부의 토론과 합의 과정이다. 이 자체가 기자 괴롭힘이 공적 어려움으로 받아 들여지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언론인권센터 윤여진 이사의 말처럼 현재 우리 사회에는 '공정'을 앞세워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만연하다. 정치권과 언론이 이를 용인하는 '시그널'을 끊임없이 보내면서 특정 세대나 온라인 커뮤니티 내에서 집단적 논리로 자리매김했다. 여성기자들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이 '여성혐오'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사회적 연대를 이어나가야 하는 이유다.

    한겨레 이정연 젠더데스크는 "회사 강요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어뷰징' 기사를 작성해 이런 공격을 받는 사례도 많다. 한 언론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피해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언론 단체 공동 대응 구조가 이뤄져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 괴롭힘은 여성기자들을 남성기자와 동일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여성혐오'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것이 '여성혐오'와 결합된 폭력임을 분명하게 짚고 알릴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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