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연합뉴스타석에 섰다면 누구든 안타의 꿈을 꾼다. 루상에 주자가 있다면 간절함은 배가된다. 그런데 지난해 KBO 타율왕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선수가 3할 6푼을 쳤다. 진루타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난다 긴다 하는 그 어떤 타자도 정상적으로 배트를 휘둘러 루상의 주자를 다음 루로 보낼 확률이 40%가 채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지만 루상의 주자를 안전하게 진루시키기 위한 수단인 '번트'의 경우, 잘 대는 선수는 성공률이 80%를 넘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효율적인 작전이 있을까. 이렇다 보니 투 스트라이크 이후 번트 실패(파울)를 아웃으로 처리하는 규칙이 있는 것이리라.
통상의 번트는 루상의 주자를 진루시킨다는 뜻에서 '보내기 번트'라고도 하는데, 더 익숙한 표현으로는 '희생(犧牲) 번트'가 있다. 타자가 자신은 비록 아웃되더라도 주자를 득점, 또는 득점권에 갈 수 있게끔 '희생정신'을 보였다는 뜻이 담겨 있다. 희생 번트를 성공하고 덕아웃으로 돌아오는 타자를 향해 선수단은 큰소리로 응원한다. 홈런을 친 선수에게 하는 것만큼은 아닐지언정 팀 플레이를 수행한 타자에게 '수고했다'는 격려를 하는 셈이다.
수원지검 성남지청. 연합뉴스최근 '성남FC 재수사'를 촉구했던 성남지청 박하영 차장검사가 10일 명예퇴임식을 하는 모양이다. 수사 무마 의혹을 제기하며 사표를 낸 일명 '사노라면' 검사 말이다.
(관련기사: [칼럼]'사노라면'을 불렀던 그때 그 사람) 박 차장검사의 항명으로 여론은 들끓었고 결국 '성남FC 사건'은 보강수사의 길을 걷게 됐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사표는 거둬들일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박 차장검사는 야구의 '희생 번트'론을 꺼내 들었다. 그는 "야구의 희생 번트는 자기가 살려고 대면 성공하기 어렵다"며 "결과적으로 한 발짝 나아갔다고 사표를 거둬들이면 희생 번트를 댈 당시 다른 생각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희생 번트와는 결이 다른 '기습 번트'라는 것도 있다. 수비수가 방심을 하거나 전혀 번트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타자가 상대의 허를 찌르는 번트를 대서, 만약 주자가 있다면 루상의 주자도 진루시키고 동시에 자신도 살아서 내야 안타로 기록되는 것이다. 기습 번트는 말 그대로 타자의 독단적인 판단에 의해 순식간에 해내야 하기 때문에 통상적인 번트와는 달리 준비 동작이 없다. 타자가 준비 동작으로 번트 자세를 취하면 수비수가 홈플레이트 쪽으로 달려오는 압박 수비를 한다. 그런데 기습 번트는 준비 동작을 생략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정상적인 수비 위치에서 번트 타구를 처리해야 한다. 타자 본인도 살아서 1루로 갈 가능성이 생기는 이유다. 다만 희생 번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전 성공률은 낮다. 기습 번트 작전이 성공했을 경우 공격팀은 '꿩 먹고 알 먹기'를 넘어 '1석 3조'의 효과가 나지만, 실패할 경우 경기에 찬물을 끼얹어 스스로 흐름을 끊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지난해 7월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열리는 도쿄올림픽 B조 조별리그 1차전 승부치기에서 황재균이 번트를 성공시키는 모습.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기습 번트 성공이 아무리 돌멩이 하나로 세 마리 새를 잡는 전략이라고 해도 아무 때나 써서는 안 된다. 이기고 있는 팀이 큰 점수차에서 기습 번트를 대는 것은 상대팀의 자존심을 긁는 매너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9:3으로 이기고 있던 캐나다가 9회 초 기습 번트로 출루해 멕시코 선수단을 자극했고 결국은 벤치 클리어링으로 끝이 났다. 국내에서도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으면서도 경기 후반 자주 번트 사인을 냈던 모 감독에게는 지금까지도 좋지 않은 '별명'이 따라다닌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크게 지고 있는 팀이 9회 말 뜬금없이 기습 번트를 대는 일도 있을까. 이건 그냥 '본 헤드(bone head·얼간이) 플레이'로 봐도 무방하다. 장타를 노려 대량 득점의 발판을 마련해도 시원찮을 판에 성공률도 낮은 기습 번트 감행은 뭔가 앞뒤가 안 맞는다.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성남지청 박하영 차장검사의 사표로 촉발된 '성남FC 수사 무마 의혹'이 변곡점을 맞았다. 흐지부지되나 싶었던 수사가 박 차장검사의 항명으로 2주 만에 분당경찰서에서 보강 수사 형식으로 부활한 것이다. 대선까지 진상조사나 하면서 어영부영 시간을 끌 것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뒤집는 '기습 번트'인 것이다. 그런데 속내를 보니 당초 이 사건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냈던 분당경찰서가 다시 수사의 주체가 됐고, 이를 지휘하는 곳도 수사 무마 의혹 장본인인 박은정 성남지청장이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것과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차장 검사는 '희생 번트'를 댔는데 지청장은 난데없이 '기습 번트 흉내'를 낸 형국이다. 보통 야구에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코미디 같은 플레이를 한 선수는 바로 교체되고 상당기간 팬들의 놀림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