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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까지 번지는 스토킹 범죄, 처벌법으로 막을 수 있나



사건/사고

    살인까지 번지는 스토킹 범죄, 처벌법으로 막을 수 있나

    경찰, 김태현 범행 '스토킹 범죄'로 규정
    지난달 '스토킹처벌법' 통과…범죄로 정의, 처벌 길 열려
    반의사불벌죄 규정, 피해자 보호명령 등 보호조치 한계

    서울 노원구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만24세)이 9일 오전 서울 도봉경찰서에서 서울북부지검으로 송치되고 있다. 박종민 기자

     

    피해 여성을 지속해서 스토킹하다가 살해한 김태현이 9일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김태현이 일가족 세 명의 목숨을 앗아간 다음 날 국회에서는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통과됐다. 첫 발의 후 22년 만이다.

    스토킹 처벌법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은 열어뒀지만, 갖은 스토킹을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스토킹 살인' 김태현…경찰, '스토킹 범죄' 규정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태현이 9일 검찰에 송치됐다. 김씨는 온라인 게임 채팅방을 통해 알게 된 피해 여성 A씨를 지속적으로 스토킹하다가 만나주지 않자 A씨와 그의 어머니, 여동생을 살해했다.

    경찰은 이 같은 김씨의 범행을 '스토킹 범죄'로 규정했다. 경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피해자가 더 이상 찾아오거나 연락하지 말라는 명시적인 의사를 표현한 이후에도 이 같은 (스토킹) 정황이 보였다"며 "스토킹처벌법이 오는 10월부터 시행돼,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큰딸을 살해하는 데 필요한 경우라면 가족들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A씨를 스토킹하기 전에도 다른 여성을 상대로 사실상 스토킹 가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지난달 1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통신매체 이용 음란)으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자신의 신음을 스마트폰으로 녹음해 여고생에게 수차례 전송한 혐의를 받았다.

    스토킹 범죄가 이어지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느슨한 법망과 수사기관의 안이한 인식 등이 지목돼 왔다. 그동안 스토킹 행위에는 경범죄 처벌법(지속적 괴롭힘)이 적용돼 10만원 미만의 과태료를 내는 데 그쳤다.

    일선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 출동했을 때 가해자가 강하게 협박하거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좋아서 따라갔다'는 식으로 말하면 (처벌이)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김다슬 정책팀장은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사회적 학습'을 통해 알았다"며 "가해자들은 이를 이용해 스토킹을 이어갔다"고 짚었다.

    ◇'스토킹처벌법' 통과했지만…"피해자는 안전한가" 물음표 여전

    그래픽=고경민 기자

     

    김씨가 피해 여성들을 살해하고 하루 뒤, 국회에서는 스토킹처벌법이 통과됐다. 공포 6개월 뒤부터 본격 시행된다.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흉기나 그 밖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거나 이용해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이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법 통과 직후 '22년 만의 스토킹처벌법 제정, 기꺼이 환영하기 어려운 이유'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정부, 입법부가 여전히 여성폭력 범죄로서 발생하는 스토킹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스토킹의 정의를 협소하게 뒀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법안에 따르면, 스토킹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정당한 이유 없이 피해자에게 접근하거나 따라다니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를 비롯해 특정 행위들을 나열하는 식으로 정의돼 있다. 스토킹 범죄는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스토킹 행위를 하는 것'으로 규정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다양한 형태로 스토킹이 시도되고, 방법도 변화하고 있는데 지금의 정의는 행위들이 쭉 나열된 방식이라, 새로운 게 추가되면 법리를 적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해석을 통해 포괄할 수 있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변호사회 이수연 공보이사는 "'지속성'의 경우 여러 번이 아니고 1회여도 시간이 어느 정도 지속했다면 (스토킹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하도록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죄를 묻지 않는 것) 조항이 유지되는 것도 문제로 꼽혔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7년부터 2018년 5월 스토킹 피해 상담사례 351건을 분석한 결과, 스토킹 가해자의 97.4%는 피해자와 아는 사람이었다. 전·현 애인이 51.9%로 가장 많고, 전·현 배우자가 12.3%, 직장 관계자 10.5% 순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김다슬 정책팀장은 "피해자에게 가해자 형사처벌의 책임을 미루는 것"이라며 "(스토킹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가해자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나 피해자 주변인의 정보 등을 많이 알고 악용해 피해자에게 계속 영향을 끼친다"고 지적했다. {RELNEWS:right}

    법안에서 피해자 보호 조항이 대거 빠지게 된 것도 아쉬운 점으로 꼽힌다. 스토킹처벌법 최초 발의안에는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 명령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으나, 법안 심사 과정에서 빠졌다. 경찰은 스토킹 가해자에게 '피해자 100m 이내 접근금지'나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 조치' 등을 할 수 있으나, 경찰서 유치장이나 구치소에 유치하는 등의 잠정 조치를 해야 할 경우 구속영장 발부와 비슷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가해자가 피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을 위반하는 경우 형사처벌하는 규정도 없어지고 과태료 조항으로 대체됐다. 현장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과태료에 개의치 않아 하는 가해자들이 많다"며 "가해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집요하게 스토킹하는지 모르는 것"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여성가족부는 최근 여성정책연구원에 피해자 보호 조치와 관련한 연구용역을 요청했다. 여성정책연구원은 자체 예산으로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오는 8월쯤 연구가 완료될 예정이다. 여가부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등에서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관계자는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피해자를 보호하는 부분은 처벌법 개정에 담겨야 한다. 보호법은 경찰에게 권한을 줄 수 없다"고 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실 관계자는 "정부 입법 중심으로 통과된 내용이 많다"며 "아쉬운 부분은 시행규칙에 담아낼지 검토하고, 법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보고 개정이 필요하면 발맞춰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안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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