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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없는 600년 '가야사'…죽음의 공간 '무덤'이 역사가 된다



경남

    기록 없는 600년 '가야사'…죽음의 공간 '무덤'이 역사가 된다

    조선왕조 500년 견줄 600년 고대 왕국 '가야' 역사서 없어
    땅속에 묻힌 무덤 '고분군' 통해 가야인의 삶 확인
    삼국사에 비해 홀대 '가야사'…文 정부 국정과제 채택 이후 연구조사 활발
    비지정 유적 발굴 집중…통영 팔천곡 고분군 등 팠다하면 성과
    경남·경북·전북 7개 고분군 내년 7월 세계유산 여부 결정

    합천 옥전 고분군(사적 제326호)이다. 강과 낙동강을 이용한 내륙교통 중심지에 위치한 고분군으로 4~6세기 무렵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분 수는 1천여 기에 이른다. 경남도청 제공

     

    단편적인 기록 말고는 제대로 된 역사서를 남기지 못했던 고대 왕국 '가야'가 살아나고 있다. 그동안 삼국(고구려·백제·신라) 위주의 고대사 연구에서 소외되고 잊혀졌던, 경남의 뿌리인 가야가 고대 유물을 통해 기록으로 남겨 역사로 만들어 가고 있다. 역사는 기록에 의해 살아난다.

    '가야에 의한, 가야를 위한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기껏해야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 등에서 개략적인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사 교과서조차 가야사는 한 페이지 분량의 작은 소국으로 홀대받고 있다. 지금까지 삼국처럼 고대 왕국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삼국과 견주어 독립적인 정치 세력을 유지하고 문화를 영위한 고대국가였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가야의 역사는 약 600년에 이른다. 조선왕조 500년보다 더 긴 역사의 시간을 갖고 있다. 고려도 450년이다. 가야역사가 절대 가볍지 않다는 점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이다. 이곳은 김해만을 배경으로 조성된 한‧중‧일 해양 교역의 중심지로, 3~5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300여 기의 고분이 있다. 경남도청 제공

     

    "교과서에서 6가야라는 것을 배웁니다. 고대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연맹국가 수준에서 멸망한 나라,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나라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가야가 존재했던 것은 기원전으로부터 대가야 멸망기까지 562년입니다. 조선왕조 500년이라고 하듯이 가야도 500년 이상 존재를 했었던 나라입니다." (경남도 가야문화유산과 김수환 학예연구사)

    기록이 없다 보니 발굴된 유물을 통해 가야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죽음을 상징하는 무덤인 '고분군'에는 가야의 성립과 발전, 소멸에 대한 수 많은 정보가 담겼다. 가야사의 역사를 다시 쓰고 복원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땅속에 묻혀 있던 죽음의 공간이 가야사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가야 고분군은 가야 각국의 독창적인 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다. 왕묘의 출현과 고분군의 군집·위계화는 가야 시대의 계층적 구조를, 묘제의 도입과 변화는 사회 구조의 변화를 보여준다.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이다. 아라가야 지배층의 고분군으로, 탁월한 경관을 갖춘 가야 남부지역 대표 고분군이다. 4~6세기 무렵 조성된 것으로 보이며 200여 기의 고분이 발견됐다. 경남도청 제공

     

    개별 고분의 입지와 규모, 부장 유물 등을 통해 피장자의 사회적 신분을 알 수 있으며, 부장 유물을 통해 가야인들의 생활양식과 신앙 등을, 출토된 교역품을 통해서는 가야의 대외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전국의 가야 유적 2495곳 가운데 67%인 1669곳이 경남에 있다. 명실상부한 가야사의 중심지다. 그러나 삼국사에 밀려 가야유적은 87곳에 불과하다. 95%는 비지정 유적이다. 아직 조사 연구 기회조차 받지 못한 곳이다. 그런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다 보니 개발과 도굴 등으로 사라지거나 훼손된 소중한 유적도 많았다.

    이에 경남도는 비지정 유적에 대한 조사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 과제로 채택한 이후 가속화됐다. 2019년부터 3년째다. 통영 팔천곡 고분군은 통영시 유일의 가야시대 봉토고분군으로, 남해안의 가야 해양세력이 조성한 유적으로 밝혀졌고, 고성 만림산 토성은 소가야 중심세력이 축조한 토성의 실체를 규명한 첫 사례로 기록되는 등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소중한 성과가 나오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파면 나오는 가야사 유물이다.

    통영 팔천곡 고분군은 통영시 유일의 가야시대 봉토고분군으로, 남해안의 가야 해양세력이 조성한 유적으로 밝혀졌다. 경남도청 제공

     

    "비지정 유적들, 조사 기회를 얻지 못했던 유적들이 1600군데 정도가 되는데, 3년째 발굴을 해 보니 꽤 좋은 성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통영의 팔천곡 고분군에서 소가야문화권의 해양세력들이 만든 무덤군, 봉토군이 확인이 되었고요. 경남 고성에 세계유산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송악동 고분군이 있습니다. 물자교환이나 정치적으로 이동을 하기 위해서 가야시대 때 드나들었던 만이 있었던 곳인데, 산지에서 가야시대 토성이 새롭게 발견됐습니다.

    보존 상태도 좋아서 앞으로 아마도 국가문화재까지 지정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지정 유적들 속에서 정말 의미 있는 성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발굴하면 상당히 희열이 있죠. 직접 손으로 흙을 털어나가는 과정은 아마도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좀 이해하기가 어려운 정도죠."(경남도 가야문화유산과 김수환 학예연구사)


    '가야의 세계화'를 목표로 가야고분군에 대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하고 있다. 경남도와 경북도, 전북도, 문화재청이 손을 잡았다. 지난 2013년 경남과 경북이 처음으로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고령 지산동 등 3개 고분군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했다. 이후 가야고분군의 세계사적 가치와 완전성을 보완하고자 2018년 고성 송학동과 창녕 교동·송현동, 합천 옥전, 남원 유곡리·두락리 고분군 등 4곳을 추가해 7곳의 고분군을 하나의 유산으로 통합했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이다. 중국-백제-가야-왜를 연결하는 해양 교역로의 중심에 조성된 소가야 지배층 고분군으로 5~6세기 무렵 조성됐다. 10여 기의 고분이 있다. 경남도청 제공

     

    그동안 등재에 어려움도 많았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지난 1월에 '가야고분군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가 프랑스 파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접수된 데 이어 3월에는 세계유산센터의 완성도 검토를 통과했다. 완성도 검토는 세계유산센터가 접수된 신청서에 대해 형식적인 요건의 만족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으로, 완성도 검토가 통과되면 본격적인 심사 절차가 진행된다.

    이제 서류심사, 현장심사, 패널심사만 남았다. 모든 심사가 통과되면 내년 7월에 열릴 예정인 제46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경남과 경북, 전북 등은 조만간 7개 고분군의 통합보존 관리 시스템을 마련하고 유네스코 현장 실사에 대비한 유산과 주변 지역 보존·관리 계획의 점검과 환경 정비를 마칠 계획이다.

    세계유산 등재는 신청 유산이 특정 국가나 민족의 유산을 넘어, 인류 전체가 보호해야 할 중요한 유산이 된다는 의미다. 가야고분군의 국제적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더 많은 해외 관광객이 경남으로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고, 가야사의 조사·연구·복원 사업에도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창녕 교동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이다. 내륙의 교통로를 통해 신라로 연결되는 접경지에 조성된 고분군으로 5~6세기쯤 조성됐다. 140여 기의 고분이 발견됐다. 경남도청 제공

     

    "우리는 뿌리를 모르고, 역사를 모르고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가야라고 하는 것은 500년 이상 우리 경남의 정체성으로, 뿌리로서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가야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이 거의 막바지입니다. 심사 과정 중에는 주민들의 가야유적에 대한 인식, 이런 것도 계산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더 많은 관심을 주시면 저희가 더 힘을 내서 꼭 성공적인 가야사 연구복원 사업을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경남도 가야문화유산과 김수환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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