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키움 선수단이 2일 LG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끝내기 패배를 안은 뒤 팬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잠실=키움)
장밋빛 꿈을 안고 출발한 봄이었지만 잿빛 가을로 마무리됐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도 우승 후보로 꼽았던 프로야구 키움이 초라하게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키움은 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 리그' LG와 와일드카드(WC) 결정전에서 연장 13회 3 대 4 패배를 안았다. 13회초 3 대 2로 앞서가는 점수를 냈지만 지키지 못하고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그러면서 키움의 올 시즌은 막을 내렸다. 한때 선두권 경쟁을 했지만 막판 사령탑이 바뀌는 변수 속에 5위로 정규 시즌을 마친 뒤 가을야구에서도 반등하지 못했다.
당초 키움은 올해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박병호, 이정후, 김하성, 서건창 등 리그 최고 수준의 국내 라인업을 갖춘 데다 에릭 요키시, 제이크 브리검, 최원태, 한현희, 이승호 등 선발진도 탄탄했다. 최강의 마무리 조상우가 이끄는 불펜도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였다.
때문에 키움은 미국 ESPN이 매긴 KBO 파워 랭킹에서 올 시즌 전과 초반 1위를 달렸다. ESPN은 코로나19로 개막이 불투명했던 메이저리그(MLB)를 대신해 KBO 리그 경기를 중계했는데 미국 팬들에게 키움을 강팀으로 소개한 것이다. 키움은 개막 4연승을 달리며 과연 우승 후보다운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키움은 주전들의 부상과 부진으로 주춤했다. 지난해 타점 1위(113개) 제리 샌즈의 대체자인 테일러 모터는 10경기만 치르고 타율 1할대에 허덕이다 퇴출됐다. 지난해 홈런왕(33개) 박병호도 올해 93경기 타율 2할2푼3리 21홈런 55타점에 그쳤다. 거포가 아닌 이정후가 4번 타순을 맡는 변칙이 나오기도 했다.
그나마 요키시가 12승 평균자책점 1위(2.14)로 버텨주고, 브리검도 부상 복귀 후 9승으로 역할을 해줬다. 여기에 세이브왕(33개) 조상우와 이영준(25홀드), 안우진(13홀드), 양현(8승 11홀드) 등 불펜도 힘을 내고, 이적생 박준태와 전병우 등의 활약으로 키움은 상위권 경쟁을 펼쳤다.
키움이 시즌 중 전격 영입했으나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인 내야수 에디슨 러셀.(사진=연합뉴스)
그러다 키움은 승부수를 띄웠다. MLB 올스타 출신 내야수 에디슨 러셀을 전격 영입한 것. 모터의 대체 자원인 러셀은 7월 말에 합류해 8월 3할1푼의 호성적을 냈고, 키움도 연승을 달리며 1위 NC를 바짝 추격했다.
하지만 9월 러셀의 반짝 효과가 떨어지면서 키움도 추락하기 시작했다. 러셀이 9월 타율 1할대에 그친 데다 실책을 남발하면서 팀이 불안해졌다. 여기에 선발진의 줄부상으로 불펜 과부하가 오면서 키움의 위기가 왔다.
이때 키움은 승부수가 아닌 악수를 던졌다. 지난달 8일 손혁 감독이 자진 사퇴한 것. 형식은 사퇴였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 당시 키움은 2위와 1경기 차 3위였다. 한창 팀이 순위 경쟁을 할 때 사령탑을 바꾼 모양새였다.
지휘봉은 35살의 김창현 퀄리티컨트롤 코치가 이어받았고, 결국 키움은 5위로 가을야구에 간신히 합류했다. 그러나 1경기로 포스트시즌을 마쳤다. 지난해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던 팀의 씁쓸한 추락이었다.
지난해도 키움은 다소 비상식적인 감독 인선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팀을 준우승으로까지 이끈 장정석 전 감독과 결별했다. 손혁 감독과 2년 계약을 맺었지만 한 시즌도 되지 않아 다시 사령탑을 바꿨다.
지난달 성적 부진을 이유로 자진 사퇴한 손혁 전 키움 감독.(사진=연합뉴스)
이쯤 되면 히어로즈 구단의 감독 잔혹사라 할 만하다. 키움은 전신 넥센 시절 창단 첫 가을야구과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끈 염경엽 감독이 물러난 바 있다. 2016시즌 준플레이오프 뒤 염 감독이 자진 사퇴했는데 구단 수뇌부와 갈등이 주된 원인이었다.
당시 넥센은 이장석 전 대표 시절이었고, 2018년 2월 횡령 및 배임으로 법정 구속돼 수감 중이다. 현재는 허민 구단 이사회 의장이 감독 교체와 갑질 등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 전 대표는 내년 6월 풀려난다. 누가 더 위인지 모를 정도의 갑질 논란을 빚었다.
키움은 9개 구단과 달리 모기업이 없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만큼 간소한 조직 구조에 구단 수뇌부의 입김이 클 수밖에 없다. 과연 '영웅 군단'의 감독 잔혹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