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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세월호 침몰시킨 탐욕…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다"



미국/중남미

    NYT "세월호 침몰시킨 탐욕…아직도 고쳐지지 않았다"

    • 2019-06-11 15:05

    뉴욕타임즈, 대형참사 되짚어보기 시리즈 세번째 주제로 세월호 참사 선정
    법은 강화됐지만 안전보다 돈 앞세우는 관행과 문화 안 고쳐져

    사진=뉴욕타임즈 웹페이지 캡쳐 (NYT)

     

    특파원에게 외신기사 검색은 습관이다. 주요 외신 웹페이지에 수시로 'Korea'라는 검색어를 쳐 본다. 요즘은 기사가 뜸하다.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탓이다.

    그런데 미국 날짜로 6월 10일, 뉴욕타임즈에 세월호 기사가 떴다. 서울도 아닌 제주발 기사. 제목은 이랬다.

    "과적 여객선이 전복됐고, 학생 수백 명이 익사했다.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세월호 참사 주기도 지났다. 특별한 팩트가 나온 것도 없다. 그런데 왜 뉴욕타임즈는 세월호 기사를 썼을까. 좀 뜬금없다는 생각으로 읽어 내려갔다. 구성이 특이했다. 사건의 개요를 적은 도입부, 문제 진단(무엇이 문제인가), 취재를 통해 알게 된 사실 순으로 나열돼 있었다.

    꼼꼼히 기사를 살펴보고 난 뒤에야 알았다. 제목 위에 "Promise Made(그들이 한 약속)'이라는 작은 분류가 붙어있었다. 또 다시 검색, 아하. 'Promise Made'는 뉴욕타임즈 국제부가 새롭게 시작한 탐사보도 연재기획이었다.

    연재기획 취지를 설명한 별도의 기사에는 이런 제목이 붙어있었다. "재난 뒤에 지도자가 약속을 내놓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대형 재난보도가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정치인들은 앞다퉈 재발 방지 대책과 약속을 쏟아낸다. 세상이 바뀔 것처럼 난리법석이 벌어진다. 그러나 이내 새로운 뉴스가 헤드라인을 치고 들어오고 관심은 멀어진다.

    뉴욕타임즈는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다가 이제는 뇌리에서 멀어진 참사에서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쏟아냈던 약속들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되돌아보자며 기획을 준비한 것이었다.

    콜롬비아 정부와 무장혁명군(FARC)의 평화협정, 71명이 사망한 런던 그렌펠 아파트 화재참사에 이어 세월호 참사가 뉴욕타임즈 'Promise Made' 기획의 세 번째 탐사 대상이 됐다.

    뉴욕타임즈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탐욕'으로 규정했다. 눈앞의 돈만 보고 안전을 희생한 결과물이라는 것.

    선사는 선박 구조의 안전성을 희생해가며 수익을 위해 여객선을 개조했다. 향응과 접대에 매수된 부패한 단속기관 담당자들은 최대 화물 적재정량의 두 배를 실은 세월호의 운항을 허가했다. 트럭과 트레일러가 제대로 갑판에 고정됐는지도 확인하지 않았다.

    돈을 좇아 안전을 희생한 모든 단계의 부정행위가 한꺼번에 모여 '퍼펙트 스톰'에 이르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고 뉴욕타임즈는 진단했다.

    "그동안 쌓여온 모든 적폐를 다 도려내고 반드시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희생된 모든 게 절대 헛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렇게 약속했다.

    수백 명의 꽃다운 학생들이 사라진 뒤 내놓은 너무나 늦은 약속이었다. 그러나 그 늦은 약속이나마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늦었지만 사람보다 이익을 우선시하는 문화와 맞서 싸우겠다는 약속은 아직도 유효한가.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안타깝게도 뉴욕타임즈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법규와 처벌은 강화됐고, 제도는 고쳐졌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를 운영하는 관행과 문화는 고쳐지지 않았다. 선박 과적을 막기 위해 화물중량을 측정하는 거의 모든 단계에서 부정행위가 여전히 적발된다.

    제주 해경은 2017년 한 화물운송회사가 중량을 측정하지도 않고 계량증명서를 위조, 1400개가 넘는 증명서를 조작한 것을 발견했다. 이듬해에는 중량측정소를 통과해 계량증명서를 발급받은 뒤 항구로 가는 도중 추가로 화물을 적재한 화물운송업자 21명을 적발했다. 규칙을 어기는 행위는 아직도 널리 퍼져있다.

    기사는 정부의 부작위도 지적했다. 화물중량을 속이는 행위를 더 쉽게 적발할 수 있도록 항만에서 바로 중량을 측정하도록 하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정부는 비용과 공간 부족, 선적속도 차질 등의 문제를 들어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부실하게 대응한 정부 고위관리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은 부분에 세월호 유족들이 분개하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뉴욕타임즈는 "개선이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부패는 여전히 선박 사망사고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며 다음과 같이 기사를 맺었다.

    "세월호 침몰 3년 후 한국 선사 소유의 선박 스텔라데이지호는 화물칸 내에서 침수가 일어났다고 보고한 후 침몰했다. 선원 24명 중 2명만이 목숨을 구했다. 최근 검찰은 선박 운영회사가 회삿돈을 아끼기 위해 스텔라데이지호가 심하게 부식된 것을 무시했다는 이유로 회사 간부 6명을 기소했다. 검찰은 또한 선박의 구조를 점검한, 정부가 승인한 선박 검사 회사 간부 1명도 기소했다. 배를 제대로 검사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스텔라데이지호를 검사한 회사는 바로 세월호의 위험한 개조에 합격 점수를 준 회사다. 시사점: 법을 바꾸는 건 문화를 바꾸는 것보다 훨씬 쉽다."

    수익보다 안전을,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하는 문화를 만들겠다는 약속은 내놨으나, 그 약속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가 한국의 세월호 참사를 'Promise Made' 시리즈 세 번째 주제로 채택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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