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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를 닮고 싶은 예능…'알맹이'가 설익었다



미디어

    다큐를 닮고 싶은 예능…'알맹이'가 설익었다

    '예능의 다큐화', 어떻게 볼 것인가?
    '식량일기 닭볶음탕' 예견됐던 논란
    작위성에 거부감…관찰 기법 대세로
    "판타지·현실 사이 적당한 경계 설정"
    "예능 창작자들, 윤리의식 고민할 때"

    (사진=동물해방물결 제공)

     

    다큐멘터리에 쓰일 법한 소재나 기법을 따온 TV 예능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시대다. "예능과 다큐멘터리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로 인해 새로운 논란이 불거지기도 한다. 바로 예능 창작자들이 다큐멘터리의 대전제 격인 '윤리의식'을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가라는 지적이다.

    '달걀에서 부화한 병아리를 키우고 그 닭을 잡아 닭볶음탕을 해 먹는다'는 포맷을 내세운 tvN 예능 프로그램 '식량일기 닭볶음탕 편'(이하 '식량일기')이 그 비근한 예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달 30일 첫 방송을 타기 전부터 강도 높은 비판에 직면했고, 누리꾼들은 찬반으로 나뉘어 여전히 갑론을박을 이어가고 있다.

    급기야 동물해방물결 등 7개 동물권단체는 지난 1일 공동성명을 통해 "기존의 단순한 체험 프로그램과는 다른 차별적인 예능이 되기 위해 살아있는 동물을 오락거리로 이용하는 '식량일기'는 비윤리적이며 구태하다"면서 "살아있는 동물을 오락과 체험, 미디어에 동원하지 않는 것이 세계적 흐름인데도, tvN이 지속적으로 동물을 시청률 몰이·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것은 후진적"이라고 비판했다.

    소재나 기법 면에서 점점 다큐멘터리를 닮아 가는 TV 예능 프로그램의 흐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다큐멘터리·시사 프로그램을 주로 맡아 온 한 지상파 PD는 "지금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예전의 예능 프로그램은 철저한 판타지였다"며 진단을 이어갔다.

    "예능의 본질은 재미다. 예전에는 예능의 재미 코드로 철저한 판타지, 그러니까 작위성이 통했다. 그러나 영화 등 매체를 통해 판타지 요소가 충분히 충족되는 환경에서, '개그 콘서트' 등의 추락에서 단적으로 볼 수 있듯이, 시청자들은 예능의 작위성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누구보다도 기민한 예능 PD들 입장에서는 시청자들과의 밀접한 호흡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리얼리티 형식을 통해 소소한 일상을 엿보고 싶어 하는 대중의 욕망을 잘 구현해냈다"며 "일상을 진지하게 주목하는 순간 너무 고통스러운 탓에 외면하고 싶어지는 현실에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적당한 경계를 찾아낸 셈"이라고 봤다.

    이어 "'이렇게 사는 것도 가치 있다'는 일상의 고민 등을 모티브로 한 '나 혼자 산다' '미운 우리 새끼' 등이 인기를 얻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얄팍한 대본 플레이에 더 이상 웃음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대중이 한 단계 성장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매체 사이 경계가 허물어지는 등 경쟁이 심화하다 보니,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 보다 센 자극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문화평론가 김봉석은 "과거에는 '예능' 하면, 주로 재밌는 상황을 연출하는 콩트를 소재로 한 코미디가 주를 이뤘다"며 "20세기 말부터 리얼리티 쇼, 이른바 관찰 예능이 대세를 이루면서 '엿보기' 성격을 띠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MCN'(1인 방송 창작자를 지원·관리하는 인터넷 방송 서비스)이 각광을 받으면서 지상파에서도 이른바 '먹방'을 내보내는 등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 MCN 사이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이로 인해 보다 더 자극적인 소재를 찾아가는 경쟁 흐름이 빚어졌다"고 진단했다.

    ◇ '예능의 다큐화'에 따르는 숙제…"성찰 깊어져야"

    예능 프로그램이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빌려 오는 지금의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앞서 언급한 '식량일기'가 낳은 것과 같은 윤리의식 논란이 꾸준히 불거질 것이라는 이야기와도 결을 같이 한다.

    위에서 언급한 지상파 PD는 '식량일기' 논란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 논란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선을 갖고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러한 논란 자체는 우리로 하여금 해당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긍정적인 여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비판을 받아야 한다면 시청자들이 분명히 비판을 가할 것이고, 제작진이 그에 대한 성찰을 충분히 할 수 있다면 고쳐 나갈 것이다."

    그러면서도 "제작진이 사전 단계에서 조금 더 깊이 성찰해야 한다. 그것이 다소 부족했다면 시청자들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면서 조금 더 나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가려는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며 "사전 검증·성찰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다. 시청자 연령대가 어릴수록 분명히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윤리의식을 고민하지 않는 태도는 무책임하다"고 당부했다.

    문화평론가 김봉석 역시 "다큐멘터리가 장르로 발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자리잡은 가치를 꼽는다면 윤리의식"이라며 "즉, '대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로 100년 이상 싸워 오면서 '다큐멘터리는 이렇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전제가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다큐멘터리를 쇼로 만들어낸 마이클 무어('화씨911' '식코' '볼링 포 콜럼바인' 등 연출)라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에서는 창작자의 윤리의식, 그러니까 '대상에 대해 내가 어떠한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김봉석은 "그런데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하는 예능에서는 이러한 윤리의식을 간과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그러다보니 '자극적인 엿보기에 머문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것이다. 예능 PD들이 이러한 문제의식을 지녀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따지고 보면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은 리얼리티를 보여준다고 하지만, 각본이 있는 허구다. 다큐멘터리 창작자들은, 물론 주관이 섞인 진실이라 할지라도, 철저한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진실을 찾기 위해 애써 왔다. 예능 창작자들이 '예능의 다큐화'를 주장하고 싶다면 당연히 윤리의식에 대한 물음 역시 스스로에게 던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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