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농구가 가장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중반 그 인기의 중심에는 고려대와 연세대의 라이벌 구도가 있었다. 26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케이블 채널 'XTM'이 기획한 'Again 1995! 농구 고연전(연고전)' 이벤트는 두 학교가 배출한 슈퍼스타들의 향연장으로 농구 팬들의 옛 향수를 자극하며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면도기와 집게' 뜨거운 장외 대결
지난 13일 OB 대결의 미디어데이 행사 때 평소 걸죽한 입담을 자랑하는 연세대 출신 석주일은 "양희승의 콧털을 밀어버리겠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고려대를 상징하는 호랑이의 콧털을 밀겠다는 승리 의지의 표현이었다.
석주일은 이날 경기장에 입장하면서 "면도기를 준비해왔다"며 필승의 의지를 재확인시켰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희승도 물러서지 않았다. "보여드릴 게 있다"면서 가방에서 집게를 꺼냈다. 양희승은 "앞으로 석주일이 평생 입다물고 살게 하려고 준비해왔다"며 뜻 풀이를 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석주일은 "안되겠다. 면도기로 머리카락까지 밀어야겠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이상민 "연세대가 이길 겁니다"
OB 대결의 최고 스타는 단연 연세대가 낳은 슈퍼스타 이상민이었다. 미국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있던 이상민은 주최 측의 끈질긴 설득 끝에 최근 합류가 결정됐다. 5일 전 입국했다는 이상민은 "함께 연습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선배님들과 후배님들이 모두 열심히 훈련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이길 것이다. 은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기만, 데니스 '로드만'으로 변신
경기 전 가장 눈길을 끄는 선수는 단연 고려대를 졸업한 김기만이었다. 김기만은 '로드만'이라는 자신의 별명을 연상시키 듯 빨간 색깔로 머리카락을 염색해 주목을 받았다. 김기만은 "팀의 막내이다 보니 선배님들 파이팅 하시라는 의미에서 오늘 새벽 급하게 염색했다"며 웃었다.
○…만원관중 열기에 양교 총장도 '총출동'
과거 농구대잔치를 연상시키는, 그야말로 고려대와 연세대의 축제였다. 잠실학생체육관의 입장권 전부가 판매돼 라이벌전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반영했다. 특히 이상민의 합류가 결정된 후 티켓을 구하지 못한 이상민 팬들이 발을 동동 굴렸다는 후문. 또한 양교의 총장들까지 참석해 경기를 관전했고 승부와 무관한 양교 OB들이 대거 경기장을 찾을만큼 열기가 대단했다.
○…"남의 추억 갖고 장난을…"[BestNocut_R]
두 학교의 라이벌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곱지만은 않았다. 한 OB 출신은 "남의 추억을 갖고 장난을 하는 것 같다"는 뼈있는 한마디를 남기기도. 또한 방송사가 아닌 연맹이나 협회에서 비시즌 농구 열기를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농구인의 아쉬움 섞인 지적도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