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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동열 감독 "나도 마운드에서 떨었던 시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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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 삼성의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4차전을 앞둔 삼성 덕아웃은 전날 눈물의 패전투수가 됐던 신예 정인욱이 단연 관심의 대상이었다. 팀이 8-6으로 앞선 연장 11회말 입술이 떨릴 정도로 긴장하던 정인욱은 끝내 동점타, 끝내기안타를 얻어맞았다. 투수를 교체하지 않은 선동열 감독의 결단이 팬 사이에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선동열 감독은 경기 후 정인욱에게 특별한 말을 건넸는지를 묻는 질문에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어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 전부다. 기사를 통해 정인욱도 보지 않았겠는가"라고 대답했다. 이어 "정인욱은 우리가 키워야 하는 투수다. 어제 경험이 좋은 약이 될 것"이라며 그가 아픔을 통해 더욱 크게 성장하게 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면서 큰 무대가 생소하던 시절, 자신도 마운드에서 긴장하던 시기가 있었다며 옛 이야기를 꺼내들기 시작했다.

    1982년은 선동열 감독이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로 올라선 해다. 선동열 감독은 역대 한국야구 최고의 명승부로 손꼽히는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선발투수로 등판, 눈부신 호투로 우승에 기여한 바 있다.

    하지만 훗날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대투수로 올라선 선동열도 엄청난 중압감에 마운드 위에서 버티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그의 나이 만 19세였다. 그는 "8회말에 역전 3점홈런이 터진 후 9회에 올라갔는데 몸이 붕 뜬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어떻게 던졌는지 아직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크게 떨렸던 그때 당시를 회상했다.

    비슷한 시기에 고려대와 연세대의 정기전이 개최됐다. 야구 명문인 두 학교의 자존심이 걸려있는 무대로 1981년 연세대 윤학길의 호투에 막혀 패했던 고려대는 선동열을 앞세워 설욕에 나섰다. 뜨거운 응원 열기와 반드시 이겨야한다는 압박감은 어린 나이의 선동열 감독에게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선동열 감독은 "그때도 잠실구장이었는데 1회에 마운드에 오르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1회가 고비였다. 무사 2,3루 위기로 시작했는데 다행히 점수를 주지 않았고 이후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고려대는 선동열의 완봉 역투에 힘입어 1년 전 설욕에 성공했다.[BestNocut_R]

    이어 선동열 감독은 "광주에서 살던 내가 말로만 듣던 서울 동대문야구장을 처음 갔던 날이 생각난다. 중학교 2학년 때였는데 마운드에서 내 다리가 떨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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