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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 골든골 축구공·펠레 발사진, 사명감으로 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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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안정환 골든골 축구공·펠레 발사진, 사명감으로 수집"

    • 2008-03-1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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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축구용품 수집가 이재형 씨

    ‘저 사람, 제 정신이야?’ 자타가 인정한 국가대표 ‘축구 자료 수집가’ 이재형 씨는 종종 이런 얘길 듣는답니다. 표현이 좀 심한가요? 그러나 이 분 사는 얘길 들으면, 그럴 만도 합니다. 이재형 씨는 축구가 좋아서 결혼도 미룬 채, 27년 동안 틈만 나면 전국 고물상을 뒤지고, 매년 40여 개국을 돌며 축구공, 유니폼, 책 등 축구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집하러 다녔는데요.

    심지어 그는 2002년 월드컵 당시, 안정환 선수가 골든골을 넣을 때 사용된 축구공을 찾기 위해 에콰도르까지 갈 정도로 축구 자료 수집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데요. 이렇게 이재형 씨가 27년 동안 우여곡절 끝에 모은 축구 자료가 무려 8천점이 넘는다는군요.

    국가대표 축구 선수를 꿈꾸던 소년이 축구 자료 수집광이 된 사연, 국가대표 ‘축구 자료 수집가’ 이재형 씨를 3월 8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공식 수집품만 8천점, 어디든 달려가는 열혈 수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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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인지 창고인지 모를 정도로 축구 자료가 가득하다면서요?

    방이 3개인데 하나는 잠자는 곳이고 또 하나는 5천권 정도 되는 축구서적이 방 가득이 있고 나머지 방은 유니폼, 축구공, 축구화 등을 박스에 넣어놨어요. 그리고 일부 액자로 되어 있는 것은 관리가 힘드니까 침구로 사용하는 창고에 보관해 두었어요.

    ▶ 8천점을 모으셨다고요?

    좀 애매한 게 열쇠고리도 한 점이고 배지도 한 점, 유니폼도 한 점이에요. 어느 정도 규모도 있고 소장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8천점이고 우표 같은 걸치면 수만 점이죠.

    ▶ 그 중에서 가장 아끼는 수집품은 뭔가요?

    수집품마다 사연이 많은데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때 우리나라가 첫출전을 했어요. 당시의 최정민 선수가 스트라이커로서 지금의 안정환 선수처럼 꽃미남이었어요. 많은 팬을 거느린 우리나라 스트라이커 계보의 가장 처음 나온 유니폼을 소장하고 있어요. 그걸 찾기 위해서 백방으로 찾아다녔어요. 축구 원로분들, 축구와 관련된 박물관도 가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못 찾았어요. 그러다가 지인을 통해서 영국의 축구 소장가가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영국까지 찾아가서 어떻게 영국까지 오게 되었는지 물어봤어요. 영국인 수집가가 홍콩의 은행원으로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오던 즈음에 유니폼이 경매시장에 나온 거예요. 당시에 우리나라 국가대표 선수들이 외국에 많이 나갔는데 멀리 가봐야 일본이나 홍콩이었어요.

    홍콩에 가서 프로팀과 게임도 하면서 유니폼도 바꿔 입고, 그러다 보니까 홍콩을 거쳐서 영국으로 오게 된 거죠. 태극마크도 있고 보존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이 유니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걸로 알고 있어요.

    ◇ 2002 월드컵의 기록, 외국으로 사라진 “공” 찾아와

    ▶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전 때 사용된 안정환 선수의 골든골 축구공도 구하셨다고요?

    지금 그 공은 수원월드컵 경기장 1층에 있는 수원월드컵 기념관 안에 영구 소장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 공에 대해서 에피소드가 많아요.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 이 공이 과연 어디에 있나 추적을 해봤어요. 월드컵 조직위원회도 가보고 대한축구협회에도 가보고 심판들에게 가봐도 공의 출처를 모르더라고요.

    월드컵이 끝나고 1년 후에 모 방송국에서 월드컵 특집으로 에콰도르의 모레노 심판 자택에 갔어요. 2002년 월드컵 때 이탈리아 전에서 모레노 심판이 토티를 퇴장시켰잖아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다시 심판을 본다고 해도 변함이 없겠는가, 그런 인터뷰를 하러 찾아갔던 거예요. 모레노가 잠시 후에 방에 들어가서 축구공을 들고 나와요. 그러더니 PD한테 이 공이 뭔지 아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뭐냐고 했더니 이 골이 안정환 선수가 넣었던 공이래요.

    제가 그걸 보고 어떻게 저 공이 저기에 가 있는가, 어떻게든 환수하려고 그때부터 작전을 세웠어요. 만약 그 공을 찾으러 간다고 미리 이야기를 해버리면 태평양을 건너서 공 찾으러 온다는데 이렇게 중요한 공을 줘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등을 할 거잖아요. 그래서 갖고 싶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자고 마음먹고 찾아갔어요.

    에콰도르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라서 가기 전에 교민한테 통역을 부탁했어요. 18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는데 워낙 유명한 분이라 축구협회를 통하니까 전화번호를 바로 알려주더라고요. 전화를 했는데 3일 전에 가족과 함께 미국 마이애미로 휴가를 떠나서 20일 후에 온대요. 망연자실이었죠. 20일 동안 그곳에 있다가 와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더라고요.

    선물도 많이 준비해 갔었는데 갖고 오기도 번거롭고 해서 편지를 써서 교민한테 모레노가 돌아오면 전해달라고 하고 저는 일단 돌아왔어요. 그 후에 모레노 심판이 돌아왔다고 교민한테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제가 협상카드를 제시했는데 그게 맞아떨어졌어요. 먼 곳까지 찾아간 것에 대해서 감동을 한 것 같아요.

    그 공을 갖고 있는 것도 영광이고 16강 심판을 봤다는 것도 영광이지만 이것이 한국축구의 역사의 보물이니까 한국에 있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해서 돌아오게 되었어요.

    ▶ 제시한 협상카드가 뭐였나요?

    에콰도르의 수도인 키토에 ‘레프리 축구학교’가 있대요. 그런데 PC나 장비 등 시설이 너무 열악하니까 그걸 지원해달라고 하더라고요. 크게 무리한 조건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수락했고요. 그때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돈을 마련했죠.

    ▶ 2002년 월드컵 4강 때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홍명보 선수의 공도 갖고 있어요?

    안정환 선수의 골든 골을 찾아오니까 이번에는 주위에서 4강 때 공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도 그때부터 찾기 시작했는데 알아보니까 스페인하고 경기할 때 이집트 주심이 갖고 갔어요. 그래서 제가 이집트 카이로로 찾아가서 협상을 하고 한국으로 다시 찾아왔어요.

    ◇ 축구와 멀어진 인연, 수집으로 한풀이

    ▶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원래는 공대 금속공학과를 나와서 직장을 다녔는데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주위 축구 잡지사에서 근무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의가 들어왔는데 1990년도였어요. 이때가 인생의 큰 변환점이 되었던 거죠. 좋아하는 축구를 직장으로 다니니까 수집하기도 좋고 여러 수집품도 모을 수 있었어요.

    ▶ 수집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어요?

    20년도 넘었어요. 축구를 수집하게 된 계기는 성북초등학교 때 축구선수로 뛰었어요. 남들한테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홍익중학교에 올라가니까 축구부가 없더라고요. 부모님이 축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었다면 축구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보냈을 텐데 그러지 않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축구를 했더라면 축구선수가 되었을 것 같아요.그러면서 축구와는 인연이 끊어졌는데 나중에 그게 한이 되더라고요.

    학교 옆에 경신 중고등학교가 있었는데 지나가다가 정문에서 축구 훈련하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온 적이 많았어요. 못 다한 축구에 대한 한을 수집으로 달랜 것 같아요. 1970년대니까 축구 소장품들이 귀할 때였어요. 처음 모은 수집품이 은행에 갔는데 축구공 모양의 플라스틱 저금통이 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좋아서 밤에 잘 때도 안고 잤어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월드컵 우표, 기념우표, 펠레우표 등 기껏해야 우표, 배지, 저금통이었고 유니폼 같은 건 상상도 못했어요.

    ▶ 당시에 유명한 선수로는 누가 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1970년도인데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선수로 이회택, 김호, 김정남, 박이천, 이세현, 정강진 같은 선수들이 아시아 대회에서 우승하고 오면 우리나라 국민들이 열광해서 김포공항에서 시청 앞까지 카퍼레이드를 했어요. 외국선수로는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우승을 했어요. 펠레, 자이징요, 리베리노 같은 선수들을 보면서 지금 초등학생들이 제2의 박지성을 꿈꾸듯이 저도 펠레의 오버헤드킥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면서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 펠레의 발사진은 어떻게 수집하게 되셨어요?

    브라질에 수집은 물론 취재차 5번을 다녀왔어요. 상파울로의 모른비라는 조그만 도시에 일요일마다 벼룩시장이 열려요. 거기를 지나가는데 흑인 발이 있어요. 무슨 발이냐고 물어봤더니 펠레가 현역시절에 찍은 발이라는 거예요. 지금까지 수많은 펠레의 사진과 자료를 갖고 있는데 펠레의 맨발은 처음 봤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브라질의 미모의 사진작가가 찍은 건데 펠레가 발이 못생겨서 항상 가리고 있고 노출을 안 시켰대요. 기자들이 펠레의 발이 궁금해서 별의별 방법을 동원해서 찍으려고 해도 한 번도 노출시킨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사진에 보니까 발톱이 빠지고 거의 다 발가락이 뭉개져 있어요. 그리고 발가락이 알이 배겼다고 해야 하나요?

    흉측할 정도에요. 축구영웅이 되기까지 맨발로 단련된 발이기 때문에 저는 너무나도 아름다운데 본인은 창피하니까 공개를 안 했던 거죠.그런데 그 사진작가가 얼마나 설득을 했는지 결국 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경매에 나온 거예요. 제가 그 사진과 필름을 사서 한국으로 갖고 들어왔어요.

    ◇ 3중 포위 뚫고 받은 북한팀 유니폼

    ▶ 마구잡이로 수집하는 게 아니고 의미나 히스토리가 담겨있는 수집품이어야겠죠?

    예를 들어 안정환 선수가 골든 골을 넣었을 때의 공인 경우에 당시의 시가로는 15만원 정도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후세에 가면 이 공은 수십억이 나가요. 똑같은 공이지만 의미, 히스토리가 있는 것이 중요해요.

    ▶ 수집품 중에서 가장 힘들게 모은 건 어느 건가요?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10월에 부산 아시안 게임이 있었어요. 북한 대표팀이 부산에 내려와서 경기에 출전했는데 북한 인공기가 달린 유니폼을 수집하려고 저도 부산에 내려갔어요. 선수촌에 갔는데 국정원 직원들이 나와서 3중으로 포위를 하고 있더라고요. 도저히 북한 감독이나 선수들을 만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국정원 담당자를 만났어요. 내가 수집가인데 북한이 한국에 방문한 것이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어서 유니폼을 소장하고 싶다고 대표팀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어요.

    하지만 사전에 조율이 없는 개인 미팅은 안 된대요. 당시에 북한감독이 리정만 감독인데 통일축구대회 때 만난 인연이 있었어요. 북한 대표팀이 언론에 노출된 신문을 스크랩을 해서 가져갔어요. 이걸 선물로 주고 북한 선수의 유니폼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마침 국정원 요원이 선수촌 광장에서 북한 미녀응원단의 공연이 있으니까 북한팀 선수들도 오지 않겠느냐고 그쪽으로 가보래요. 그런데 다른 팀들은 다 오는데 북한 선수들은 안 오는 거예요. 이번에는 인연이 없는가 보다 하고 일어서는데 멀리서 북한 선수들이 오는 게 보여요.

    그런데 리정만 감독이 안 보여서 코치한테 감독을 뵙고 싶다고 이야기했어요. 그 전날 북한팀이 져서 마음이 안 좋으니까 행사장에 안 나왔던 거죠. 나중에 리정만 감독이 나오셨기에 스크랩된 기사를 줬더니 너무 감동하더라고요. 내가 북한 선수 유니폼 때문에 왔다고 했더니 지금은 곤란하다고, 이따가 7시쯤에 A동 어디에 가 있으면 선수가 유니폼을 갖고 나갈 거래요.

    10월이니까 7시면 어둑어둑하잖아요. 저쪽에서 선수들이 나오는데 사실 민간인과 선수들이 만나는 게 불법이에요. 한국경찰이나 국정원에서 보면 큰일 날 일이에요. 비공식적으로 리정만 감독이 저한테 주는 거예요. 마치 영화에서나 나오는 간첩 접선하는 것 같았어요. 옷 안에 유니폼을 넣고 와서 저한테 주고 슬그머니 사라지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굉장히 어렵게 수집을 했죠.

    ▶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방법을 찾아내는 것 같아요.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사람마다 기가 있는 것 같아요. 상대방에게 갖고 싶은 수집품이 있는데 상대방보다 열정이나 기가 세면 저한테 오더라고요. 소장품의 애정이 제가 더 크면 상대방이 슬그머니 놓게 되는 거죠. 기의 이동이라는 게 분명히 있어요.

    ▶ 축구문화를 수집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나 봐요?

    20년도 더 되었는데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누캄프 경기장 2층에 박물관이 있어요. 이 박물관이 굉장히 잘 해놨어요. 100년 전 자료도 보면서 감동했어요. 선수들의 일기장, 신분증까지 다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어요.

    당시에는 한국에 이런 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도 이런 히스토리가 있는 축구수집품을 내가 모아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취미가 아닌 사명을 갖게 되었어요. 그렇게 해서 수집을 시작하게 되었죠.

    ▶ 한국축구의 전설인 김용식 선생님의 자료도 갖고 있다고요?

    100년이 넘는 축구역사 속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나왔지만 김용식 선생님은 축구뿐만 아니라 인품이 좋은, 후배들이 존경하는 분이세요. 평생을 축구에 애정을 갖고 생을 마감하셨는데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감독님이셨어요.

    당시에는 어려울 때라서 축구 교본이나 DVD, 테이프 등은 물론 없고 월드컵 출전 당시 스위스에 갈 때도 한꺼번에 못가고 따로 갔을 때에요. 김용식 감독님의 친필작전메모, 나름대로의 공격과 수비하는 방법을 외국의 번역본을 참고로 해서 쓰신 거예요. 이걸 비행기 안에서 돌려본 거죠. 아주 희귀본이에요.

    그리고 2010년이 김용식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라서 제자들과 축구협회와 의논해서 기념사진전이라든지 소장품 전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어린 시절의 가난에 숨겨진 축구화

    ▶ 어린 시절 신었던 축구화도 간직하고 있다고 하던데요?

    왜 축구화를 소중하게 여기는가 하면 제가 어렸을 때는 가죽축구화를 국가대표 선수가 아니면 못 신었어요. 어머니가 헝겊에 고무밑창을 댄 축구화를 사주시면 한 달도 못돼서 다 헤어지니까 축구를 못하게 하려고 감추셨어요. 방학 때는 매일 나가서 축구를 하니까요. 친구들은 축구하자고 밖에서 부르는데 신발이 있어야 나가죠. 그래서 맨발로 나가서 친구 신발 신고 축구를 했어요. 나중에 보니까 신발을 장독 안에 넣으놓으셨더라고요. 그걸 못 찾은 거예요. 지금도 축구화를 보면 그때 생각이 나요.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밑으로 남동생이 하나 있고 위로 누님이 두 분 계시는데 아버님이 직업군인이셨어요. 그러다가 제대를 하시고 나서 사업을 하셨는데 잘 안 돼서 스트레스를 받으셨어요. 고혈압을 앓으시다가 결국 제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죠.

    어머니는 제가 선생님이 되길 바라셨어요. 당시에 공고가 박정희 대통령의 역점사업이 중화학공업 육성이었잖아요. 공고를 가면 장학금도 주고 진학 가능한 혜택도 주고, 집안 환경도 어려워서 갔는데 선택을 잘못한 것 같아요.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 수집품 중에서 축구와 관련된 책도 많을 것 같아요.

    외국에 나가면 3곳은 꼭 들러요. 축구경기장, 벼룩시장, 중심지에 있는 서점에 가서 책을 보면 그 나라의 축구문화를 알 수 있어요. 언어는 몰라도 그 나라의 축구 감성이 다 묻어있거든요. 그래서 사가지고 오는데 책이 골치 아픈 게 무거워요.

    저는 관심이 있으니까 계속 모아왔는데 지금 5천권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조만간에 축구도서관을 꼭 만들려고 해요. 축구에 관심이 많은 팬이라든지 축구기자, 논문을 쓰는 학생들한테서 문의가 자주 와요. 보통 주말에 와서 자료를 보고 가곤 합니다.

    ▶ 도서관이 현재 있는 건가요?

    2004년도에 수원시장께서 수원월드컵 기념관 옆에 조그마한 공간이 있어서 그곳을 도서관으로 열어주신다고 했는데 박지성 선수가 수원출신이잖아요. 맨유에 입단하면서 골도 넣고 국민적 영웅이 되니까 박지성 기념관이 되어버렸어요. 나중에 축구도서관으로 해주신다고 하더라고요.

    ▶ 박지성 선수와 관련한 수집품들은 어떤 것들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박지성 선수가 국가대표 때 뛰었던 유니폼 몇 벌이 있고 사진, 사인, 축구공을 갖고 있어요. 2002년과 2006년 월드컵 때 전시회를 열었는데 초등학생들과 축구팬들한테는 박지성 선수와 관련한 소장품이 가장 인기가 좋았어요.

    ▶ 자료 수집할 때 애를 많이 쓰셨는데 보람 있다고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2002년도 월드컵을 우리가 유치하는 걸로 확정이 되고 나서 성공적인 개최의 염원을 담은 축구전시회를 1997년에 처음으로 열었어요. 수많은 전시회가 있는데 축구전시회를 열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어요. 우리가 과거 농촌에서 지푸라기나 돼지 오줌보로 축구공을 만들어서 축구를 할 때의 모습들도 전시를 했어요. 관객들이 많이 오셨는데 할아버지, 아버지가 이렇게 축구를 했다고 아들한테 설명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 “이재형 축구박물관” 이름 건 센터 만들고 싶어

    ▶ 자료를 보면 과거 축구대표팀의 훈련환경, 장비, 시설 등 지금과 비교해서 차이가 많이 날 것 같아요.

    과거 골키퍼로 유명했던 이세현 선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60년대만 해도 골키퍼 전문 장갑이 없었대요. 맨손으로 하다가 까만 가죽 장갑을 끼고 골키퍼를 하신 거예요. 그것도 없으면 용접할 때 끼던 두꺼운 장갑을 끼고 골키퍼를 봤대요. 그래서 축구 원로분들 중에서 골키퍼를 하셨던 분들을 보면 손가락이 다 휘었어요. 제때 응급치료를 안 해서 뼈가 휜 거예요. 이세현 선수가 꼈던 까만 가죽장갑을 저한테 기증하셔서 보관하고 있어요.

    ▶ 그 시절의 애환이 있는 사연을 듣다 보면 눈물도 나겠어요.

    당시에 유니폼이 붉은 색이었는데 재질이 안 좋았어요. 염색이 안 좋다보니까 경기가 끝나서 벗으면 땀으로 범벅이 돼서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샤워할 때 지우느라고 엄청 힘들었대요. 그런 과정이 있어서 월드컵 4강을 한 것 같아요.

    ▶ 개인적인 수집 차원을 넘어선 것 같은데, 이제는 전문적인 보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 축구와 관련된 것들을 수집하고 있는데 수집을 넘어서 역사적인 사료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의 역사적인 사건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기록보존 같은 문건이 뒷받침되어야만 입증이 되니까 계속 발굴을 해야 합니다. 수집하면서 안타까웠던 것은 한국이 일제강점기도 거쳤고 한국 전쟁 때문에 피난도 가고, 그러다 보니까 선수들이 갖고 있었던 소장품들이 전쟁의 잿더미로 변한 게 많아요.

    1950년대만 해도 평양축구가 강했어요. 피난가면서 축구앨범이라든지 유니폼은 가치가 없어 보이니까 놔두고 간 건데 그런 걸 보면 안타깝죠. 축구 원로분들을 만나면 갖고 계신 소장품들을 간청해서 기증받는데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 해야 할 것 같아요.

    ▶ 축구협회나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하여 전시관이나 박물관 같은 공간을 만들자는 이야기는 없나요?

    일부는 수원월드컵 기념관에 가 있고 “이재형 축구박물관” 제 이름을 걸고 박물관과 도서관, 그리고 축구인들이 쉴 수 있는 휴식처 등 그곳에 가면 축구와 관련된 모든 것이 있는 센터를 만들고 싶어요.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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