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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디 선한 인상에 편한 웃음을 머금은 얼굴, 솔직담백한 말씨…. 윤동식(36·팀尹)이 유도에서 종합격투기로 전향한 지 어느덧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데뷔전인 사쿠라바전에서 처참한 심정도 느껴봤고, 지난 9월 젤그 갈레시치전에선 ''윤동식! 윤동식!'' 연호하는 팬들의 환호에 가슴 벅참도 느꼈다. 팬들의 질타는 칭찬으로 바뀌었고,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던 주변의 시선은 존경의 눈빛으로 변했다. 그는 이젠 "즐기면서 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도 격투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유도천재'' 윤동식은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격투기 선수로 우뚝 섰다. 그러나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의 앞엔 더 많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윤동식, 강인함 그 이상의 강인함
[BestNocut_L]윤동식은 파이터다. 33세에 낯선 종합격투기 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험난한 승부세계에서 살아온 그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믿음은 철저한 몸 관리에서 나온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래서 일분 일초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하루에 1분이라도 좋으니 운동을 거르지 말자는 게 그의 신조. 팀尹 소속 선수들에겐 "못 하면 밥 굶는다"는 무서운 한마디로 훈련을 독려한다.
윤동식은 격투기를 시작한 후 그 좋아하던 술도 거의 안 마신다. 때때로 밀려드는 무료함은 ''자기 최면''으로 이겨낸다고. "''심심하면 아주 좋은 거다. 친구를 만날수록 내 격투기 인생은 짧아진다''고 되뇌곤 하죠."(웃음) 하지만 "가끔씩 술이 고플 때가 있는데 친구들이 안 끼워 줄 땐 서럽다"며 너스레를 떤다.
늦은 나이에 격투기에 진출해 뼈를 깎는 수련을 하고, 힘든 시합을 치르는 윤동식. 그를 지탱시켜주는 힘은 뭘까. "일본에 있을 때 문득 ''격투기를 하고 있는 지금이 행복하다. 오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격투기는 윤동식에게 상처주지 않는다. 모든 걸 걸고 도전한 그의 땀을 배신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고통스러워도 앞으로 전진하고, 자신과의 싸움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에게서 ''강인함 이상의 강인함''이 느껴지는 것도 그 이유다.
▲ 고마운 나의 스승 사쿠라바지난 2005년 3월 한국선수론 처음으로 프라이드와 계약을 맺고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갔던 윤동식. 몸고생, 맘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4월 사쿠라바와의 데뷔전을 앞두곤 불과 며칠 훈련을 한 게 고작이었다.
그 이면엔 주최측의 방해공작이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유도기술만으로도 이길 수 있다''면서 다른 기술을 못 배우게 했죠. 경기 전날엔 갑자기 ''등장음악을 바꾸라''고도 했구요." 그러나 한국에서 이제 막 건너온 그는 ''칼자루를 쥐고 있는'' 주최측의 억지스런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시작은 이렇듯 무모했지만 그는 후회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덕분에 자존심을 버리고 사쿠라바 밑에서 배울 수 있었죠."(웃음) 사쿠라바와 함께 훈련한 후 윤동식은 비로소 격투기에 눈을 떴다. 그는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그라운드, 타격 등에서 50% 정도 올라와 있는 상태"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사쿠라바에게 배워야 할 그라운드 기술이 많다"고 겸손해 한다.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재미와 만족을 느낀다는 윤동식. 이제 그에게 격투기는 호흡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인다. 땀의 힘을 믿는 그에게 ''정직한'' 격투기 세계는 안성맞춤인 듯하다.
▲ "올해 안에 타격으로 승부할 터"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지난 6월 맬빈 마누프전. 온 국민이 ''윤동식, 만세''를 외치게 했던 당시 그의 ''멍 투혼''은 ''시련 속에 핀 꽃''이었다. ''타격 몬스터'' 마누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냐고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타격은 좋지만 그라운드가 약한 선수라서 자신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프라이드에서 4연패 후 K-1으로 갈아탄 후 3연승을 달리며 승승장구하는 비결은 뭘까. 그는 "K-1이 프라이드보다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2년 정도 격투기 훈련을 해오면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세 번째 시합인 퀸튼 잭슨전 이후 ''링 위에서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감이 왔고, 다음 시합인 무릴로 부스타만테전부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작년에 K-1에서 계약 제의가 왔을 때 ''좋은 선수 뽑아가는 거다''라고 생각했죠."(웃음)
K-1 무대를 ''윤동식표 암바'' 기술로 장악한 그의 다음 목표는 뭘까. "앞으로 ''윤동식은 테이크다운한 후 그라운드 기술이 끝이야''라는 말을 안 듣도록 올해 안에 완전히 타격으로 승부를 해보고 싶어요."
▲ 격투기 대중화에 앞장서고 싶다
윤동식에겐 직함이 하나 더 있다. 그는 작년 12월 창단한 종합격투기팀 ''팀尹''의 단장이다. "초창기에 ''한국 격투기는 웃음꺼리밖에 안 된다''는 말 듣는 게 정말 싫었죠." 언젠간 팀을 만들 결심을 했던 차에 정부경, 김종원, 김대원 등 엘리트 유도 출신 후배들이 먼저 연락을 취해왔다. ''더 큰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후배들은 좋은 안식처를 찾았고, 외롭게 일본 격투기 무대를 누볐던 윤동식은 든든한 동료를 얻은 셈이다.
''팀尹''은 현재 엘리트 유도선수 출신만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문호를 전체 격투기 선수로 넓히고 싶다는 바람을 윤동식은 말한다. "앞으로 ''팀尹''을 글로벌팀윤, 코리아팀윤으로 이원화 하고 싶어요." 코리아팀윤에선 한국 격투기대회에 나갈 수 있는 선수를 기르고, 여기서 성장하면 글로벌팀윤으로 올려서 더 큰 대회에 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윤동식에겐 또 하나의 꿈이 있다. 바로 한국에 유도와 격투기를 모두 배울 수 있는 도장을 세우는 것. 일단 스폰서를 찾는 게 급선무지만 머릿속 청사진은 그려져 있다. "일본과 미국 격투기 도장엔 일반인도 바글바글해요. 항상 그 점이 부러웠는데, 우리도 선수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함께 땀 흘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윤동식은 예전엔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무척 쑥스러워 했다. 그러나 이젠 팬들과의 만남을 자주 갖는다. 얼마 전엔 팬미팅도 했고, 27일엔 대구에서 팬사인회도 연다. "인터넷에서 제 경기를 보고 ''용기와 위안을 얻는다''는 팬들의 글을 읽을 때 가장 큰 힘을 얻죠." 굳이 언제까지 선수생활을 할 건 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의 ''격투기 도전기''는 쭉 ~ing가 될 것을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