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소외자를 만든다. 사회적 통념이 만든 보이지 않는 ''''벽(壁)''''은 소외된 사람들을 구석으로 내몰고 ''''다르다''''를 ''''틀렸다''''로 변질시킨다. 골프에도 벽이 있다. 한쪽 방향을 보고 일렬로 서서 스윙 연습을 하는 여러 명의 오른손 골퍼들과 정반대의 방향을 보고 서서 스윙 연습을 하는 왼손 골퍼가 있다.
그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벽은 한 사람의 왼손 골퍼를 골프 장애인으로 만든다. ''''우리는 장애인이 아니라 골프를 사랑하는 골퍼일 뿐이다.'''' 등 뒤의 벽을 허물기 위해 외로운 ''''투쟁''''을 이어 가고 있는 왼손 골퍼의 절박한 외침이다.편집자>
왼손골프
뿌리 깊은 유교 사상이 자리잡고 있는 한국 사회는 변화에 인색하고 남과 다름을 두려워한다.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오른손으로 밥 먹고 글씨 쓰는 생활을 강요받는다. 오른손잡이로 자란 아이들은 간혹 왼손을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왜 왼손으로 밥을 먹지?''''라고 의아해한다.
한 번 자리잡은 고정관념은 여간 해서 깨어지지 않는다. 골프를 할 때에도 당연이 오른손을 사용해야 한다고 여긴다. 왼손 위에 오른손을 포개서 그립을 잡고 왼쪽 어깨를 틀어 올려 스윙하는 왼손잡이 골퍼에게 그들은 낯선 시선을 보낸다.
''''저 사람은 왜 왼손으로 골프를 하는 거지?''''
성인을 기준으로 국내에서 왼손잡이는 30만 명 정도로추산된다고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골프를 시작할 때 왼손잡이를 포기하게 되고, 골프인구의 1~2%인 3만명 내외의 골퍼들만이 왼손잡이 골퍼로 남게 된다. 골프연습장에서도 왼손잡이 골퍼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 그래서일까? 골프연습장은 왼손 골퍼를 위한 타석을 마련하는 일에 유독 인색하다. 최근에 만들어진대형 규모의 연습장이라면 모를까 왼손 타석이 마련된 연습장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왼손으로 골프를 시작한 골퍼들조차 얼마 못 가 오른손으로 돌아서는 일이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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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장 찾아 삼만리, 레슨은 어디서 받지?밥 먹는 일, 글 쓰는 일 모두 왼손으로 하는데 유독 골프만 오른손으로 칠 이유는 없다. 자신의 습관대로 혹은 타고난 대로 왼손을 고집해 왼손잡이 골퍼가 되기로 결정한 사람들. 그러나 시작부터 그들의 외로운 도전은 벽에 부딪힌다. 혼자 ''''왼손 골퍼가 되겠다''''고 소리치면 무엇 하겠는가. 왼손으로 스윙하는 법을 가르쳐 줄 레슨프로를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것을.
운 좋게 왼손 타석이 있는 연습장을 찾더라도, 한 귀퉁이에 거꾸로 배치된 타석과외계인 바라보듯 대하는 주변의 시선에 서러운 마음이 먼저 든다. 그나마 왼손 타석을 찾은 건 행운이다. 서러운 마음은 살짝 접어두고 골프 배우기에 돌입하려는 찰나, 두 번째 벽에 부딪힌다.
''''왼손 쓰세요? 왼손으로 골프하기 힘들텐데… 골프는 오른손으로 배워 보시는 게 어떨까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레슨프로는 오른손 전향을 한다.
각종 골프협회에서 발행한 티칭 자격증을 보유한 레슨 프로들은 신입 골퍼들을 노련한 골퍼로 만드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른손에 한해서다. 그들이 가진 자격증을 발행한 골프협회의 티칭프로 교육과정 어디에도 왼손잡이 골퍼를 가르치는 부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왼손잡이 골퍼는 애초부터 없는 존재로 치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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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클럽이 없다! 게다가 따가운 시선은…
왼손골프
오른손 타석을 거꾸로 해서 타석을 만들고, 레슨프로의 속 깊은 배려로 어찌어찌해 골프를 배우게 되었다. ''''이제는 다 됐다'''' 싶겠지만 진짜 시련은 이제부터다. 골프에 빠져들수록 비거리에 욕심이 나고 장비에 관심이 간다. 온갖 신기술의 집약체인 골프채만 가질 수 있다면 지금보다 좋은 스코어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왼손잡이 골퍼들이 가장 큰 애를 먹는 부분인 장비 구입 문제는 또다시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오른손잡이 골퍼들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자신이 갖고 싶은 최신 클럽을 구입할 수 있다. 왼손잡이 골퍼는 대리점이나 클럽 업체에 따로 문의를 해서 클럽을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요가 적다 보니 업체나 대리점에서 미리 왼손 클럽을 구비해 놓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왼손잡이용 시타채도 거의 없기 때문에 시타를 해보고 클럽을 사고 싶은 바람은 꿈도 꾸기 어렵다.
업체 쪽에 주문을 넣게 되더라도 보통 2주에서 한 달가량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제품을 만질 수 있다. 왼손골퍼들의 골프클럽 구입이 해외 사이트를 통한 공동구매나 수입 업자와의 직거래로 이루어지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국내에서 왼손잡이용 골프클럽이 일반적인유통 경로를 통해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여기까지 어렵게 왼손을 고집해 온 골퍼들은 승리감에 젖는다. 이제 왼손으로 골프를 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이 갖추어졌다고, 그들은 믿는다. 그러나 환호의 순간도 잠시, 왼손잡이 골퍼들은 금세 높고 두꺼운 벽에 부딪힌다. 마치 외계인을 바라보듯 곱지 않은 시선,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편견과 오해로 얼룩진 사람들의 시선에서 그들은 무릎을 휘청이게 하는 절망을 맛본다.
스포츠 종목 중 특히 보수적 성향이 짙은 골프가 왼손을 배척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본인들로선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사회적 편견이란 높은 벽앞에서 왼손 골퍼들은 할 말을 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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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골프문화, 왼손잡이 골퍼는 ''''나 몰라라''''''''골프가 보수적인 스포츠인 건 잘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골프까지 우향(右向)적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왼손잡이 골퍼의 이유 있는 항변이다. 왼손을 쓴다고 해서 골프의 전통과 권위를 해치는 것이 아닐 텐데, 단편적으로 오른쪽이 옳고 왼쪽은 그르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골프를 하고 전통을 지켜온 나라도, 우리만큼 왼손잡이를 배척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천연잔디 타석이 대부분인 미국·유럽 등은 애초부터 좌우 구분이 되어 있지 않고, 동남아시아 국가들 역시 연습시설이나 티잉그라운드를 만들 때 좌우 구분을 두지 않는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연습장에 10개 타석을 만들 때 적어도 2개 타석 이상을 왼손 타석으로 만든다. 비록 수는 많지 않으나 혹시 있을지 모를 왼손 골퍼를 설립 초기부터 배려한 것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유독 오른손 골퍼들만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있다.
물론 연습장이나 클럽업체 입장에서는 사업비가 많이 들고 수요가 많지 않으니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겠지만, 국내 골프계 전체를 보고 골프를 대중화시켜야 한다는 대의를 생각할 땐 아쉬움이 남는다.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소수의 권익을 모른 척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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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GA 골프스타들 ''''왼손잡이가 왜 이상해?''''2005년 한국오픈 출전을 위해 방한한 PGA 스타 마이크 위어(캐나다)는 입국할 때부터 왼손 골퍼들의 열화같은 응원을 받았다. 예상 밖의 팬들의 환대에 놀란 마이크 위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한국 프로골퍼 중에는 왼손을 쓰는 선수가 없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국내 왼손 골퍼들의 처지를 알게 된 마이크 위어는 대회가 열리는 동안 그들에게 직접 레슨과 조언을 해주었고, 왼손 골퍼잡이 동호회 회원들은 피켓을 들고 다니며 위어의 선전을 응원했다. ''''한국 왼손 골퍼들을 위해 꼭 우승하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그의 방한으로 왼손 골퍼 동호인들은 이전보다 당당히 어깨를 펼수 있게 됐다. 당시 마이크 위어를 응원했던 왼손 골퍼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도 국내에도 왼손 프로골퍼가 나온다면 아낌없는 응원을 펼칠 생각이다. 지난해 한국오픈에 출전한 부바 왓슨(미국) 선수도 우리의 응원에 큰 힘을 얻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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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프로의 인식 변화가 선행되어야국내에선 좀처럼 찾을 수 없는 왼손 프로골퍼가 미PGA투어에서는 연일 맹활약 중이다. 세계 랭킹 4위의 톱 골퍼 필 미켈슨(미국)은 양손을 다 쓰지만 골프만큼은 왼손을 사용하여 ''''왼손 골프의 1인자''''로 통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두고 ''''왼손으로 볼을 치니 이상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왼손으로도 골프 스윙은 가능하며 오른손 못지않게 골프를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필 미켈슨이 단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미켈슨의 성공사례는 굳이 오른손으로 전향할 것을 권유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국내 상황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왼손 골퍼들은 가장 먼저 티칭 교육과정에 왼손 골퍼를 위한 커리큘럼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다. 골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레슨 과정부터 왼손 골퍼를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기 위해선 골프 지도자들의 의식 개선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조차 ''''왼손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제대로 된 레슨이 이루어질 수 없다. 골프를 배우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은 왼손잡이 골퍼는 이렇게 항변했다.
''''레슨프로들이 왼손 골프의 세세한 부분까지 가르칠순 없다 하더라도, 최소한 좌우 방향에 따른 차이는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현재로선 그것조차 되지 않는 프로들이 많은 실정이어서 왼손잡이 골퍼들은 제대로 된 레슨을 받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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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원칙을 지켜 가는 골프 환경 조성이 급선무다음으로는 ''''10:2'''' 원칙이 지켜지는 골프 환경을 언급했다. 연습장·골프장 등 골프 관련 시설을 만들 때20% 정도는 왼손 골퍼를 배려한 시설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클럽 브랜드의 과감한 투자를 꼽았다. 국내 골프계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선 소수의 왼손 골퍼들을 위한 용품업체의 결정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예년에 비해 왼손 골퍼를 위한 골프 환경이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국제대회 규격에 맞게 변화하며 좌우 구분이 없는 코스를 만들고 있는 골프장들만 봐도 알수 있다. 방송·잡지 등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이 이어지길 바란다. 소수의 권익에 관심을 가질 때 필요성이 인식될 수 있고, 변화의 시점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과 부당한 시선에 맞서 싸우며 소수의 권익을 찾아 가고 있는 왼손잡이 골퍼들. 끊임없이 내리는 빗방울이 바위를 뚫듯,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힘을 보태면 언젠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벽을 뚫게 될 날이 있을 것이란 희망을 놓치 않고 있다.
취재 중 만난 한 왼손 골퍼는 이렇게 말했다. ''''다르다는 것은 ''''틀렸다''''가 아니라 ''''특별하다'''' 의미다. 왼손으로 골프를 한다고 주눅들거나 눈치 볼 필요는 없다. 낯선 시선에 당당하게 맞서고 크게 말하고 싶다. ''''나는 왼손 골퍼다. 그래서 더 특별하다''''고.''''
글│조성희 / 도움말│레프티 골프클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