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사는 대학생 김숙경(22·가명)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찬바람이 불면서 오랫동안 앓아왔던 병이 다시 도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김씨가 앓고 있는 병은 레이노병. 추위에 노출되면 손발 끝이 하얗게 혹은 파랗게 변하고 저림과 통증이 동반되는 병이다.
처음 이상 증상을 느낀 것은 고3때. 꽃샘 추위가 유난히 잦았던 그해 3월,찬 기운을 쐬고 나면 왼쪽 손가락 끝마디가 백짓장처럼 하얗게 죽다가 나중엔 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손발이 찼던 김씨는 단지 추위를 잘 타는 체질때문으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더구나 따뜻한 실내로 들어오면 다시 피가 통하면서 혈색을 찾았기 때문에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 부위가 점점 손가락 아랫마디로 확대됐고,어느 순간부터는 발가락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놀란 어머니는 김씨의 손을 이끌고 한의원을 찾았다. 한의사는 ''''원래 몸이 찬 체질인데다 고3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혈액순환 개선용 한약을 처방해 줬다.
몇달동안 한약을 먹어도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이번엔 일반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스트레스 받지 말고 몸을 따뜻하게 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만 들었다. 어느 누구도 병명을 이야기해 주지 못했다.
손가락 색깔이 변하는 것 외에 큰 육체적 고통이 없어서였을까. 5년동안 그렇게 그냥 보냈다. 매년 겨울이면 똑같은 증상이 반복됐고,김씨는 그때마다 나름의 ''''비법''''으로 넘기곤 했다.
''''외출할 땐 항상 장갑을 끼고 다녔고,손 난로도 필수 휴대품이었어요. 좀 귀찮긴 했지만 곧 생활의 일부분이 됐죠.''''
그러다 올초 우연히 신문에서 자신과 비슷한 증상을 가진 한 가정주부가 의정부성모병원에서 ''''레이노병'''' 진단을 받고 약으로 효과를 봤다는 기사를 접했다. 마음 같아선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유치 못했던 터라 지난달에야 병원을 찾았고,우려했던 대로 레이노병이란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지난 5년간 병명도 모른 채 별 효과도 없는 치료만 해 온 것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의사로부터 처방받은 혈관 확장제를 매일 복용하고 있다.
김씨는 ''''약의 효과 때문인지,날씨가 아직 그렇게 차지 않아서인지 모르겠지만 매년 이맘 때면 시작되곤 했던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 포천에 사는 최금순(45)씨도 8년전부터 날씨가 추워지면 손이 심하게 차가워지면서 저리고 아파와 병원을 찾았지만 단순 ''''수족 냉증''''이라며 별다른 치료를 받지 못했다.
한약이나 혈액순환 개선제 등 좋다는 약은 다 먹어 봤지만 증상은 갈수록 악화되기만 했다. 심지어 한여름에 에어콘 바람만 쐬도 손의 색깔이 검푸르게 바뀐 경우도 있다.
최씨도 지난 1998년 의정부성모병원에서 ''''레이노병''''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엔 의료진조차 잘 알지 못했던 희귀병인지라 별 다른 처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3월 같은 병원에서 레이노병과 관련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방문해 이후 약물 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관절염 치료를 위해 최씨는 얼마전부터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찬물에 노출되면 손이 시퍼렇게 변하는 것은 예전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며 기뻐한다.
''''이전에 5개 손가락 모두가 파래지던 것이 치료를 받은 후부터는 1∼2개 정도로 줄어들었어요.''''
민태원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