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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2시간여를 앞둔 시간.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포드로 들어가는 초입.
아직 경기장에 입장하기에 이른 시간인 데다 변덕스럽게 부슬거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찾은 펍에는 벌써부터 맥주잔들이 쌓여있다. 그리고 이들 맥주잔의 주인은 초등학교 교실 3-4개 정도 크기의 적지 않은 공간을 가득 메운 자타공인의 ''열혈 맨유팬''들이다.
이날 경기가 현지 시간으로 오후 3시에 시작된 만큼 맨유 팬들이 홈경기를 맞아 일찌감치 이른바 ''낮술''을 마시며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팀의 간판 선수들에게 각각 노래를 하나씩 만들어 붙여 주곤 가게가 떠나가라고 이 노래들을 부른다. 마치 한-일 월드컵 당시의 ''대한민국 콜''처럼 강하면서도 선수와 팀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임무나 직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위기 메이커'' 역할에 노련해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선창을 하면 다른 맨유 팬들도 단조로우면서도 경쾌한 ''맨유의 노래''를 함께 쏟아낸다.
노래 가운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죠지 베스트와 ''악동'' 에릭 칸토나가 있다. 그리고 웨인 루니와 박지성도 있다.
박지성의 고향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잔을 올려 놓을 수 있도록 ''귀한'' 테이블 한 귀퉁이를 내준, 사람좋아 보이는 인상의 폴 아담스(40)씨는 기자의 수첩을 가로채 친절하게 가사까지 적어준다.
알고 보니 ''park park''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개고기를 먹는 나라''라는 내용이 포함돼 얼마전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켰던 곡.
그러나 이들은 기왕에 만들어진 노래에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동양의 작은 ''엔진''에 대한 애정을 담뿍 담아 익살스럽게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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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경기 시작 전 올드 트래포드 주변에 위치한 ''펍''에서 만난 맨유의 팬들은 기자가 박지성의 고향 ''대한민국(south korea)''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잇따라 맥주를 날라대며 ''공짜 맥주 세례''를 퍼부었다.
또 무언가 ''훌리건''스런 분위기를 풍기며 기자가 진짜 맨유팬인지를 확인하듯 유심히 관찰하던 또 다른 팬은 기자가 ''죠지 베스트'' 노래에 맞춰 박수 치는 모습을 확인하곤 99년 맨유의 3관왕을 기념하는 배지를 선물했다.
TV에선 2시간 앞서 벌어지고 있는 아스날과 아스톤 빌라의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첼시가 ''신흥 맹주''로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약 10년간 리그 챔피언을 나눠 가졌던 라이벌 팀이었던 만큼 노래 중간에도 어이없는 실책성 플레이가 나오면 조롱을 거르지 않는다. 그리고 수많은 맨유 팬들이 뭉쳐서 불러 단단해진 노래가 그대로 경기장까지 이어진다.
장소가 경기장으로 커진 대신 경기장을 가득 메운 모든 팬들이 선수들의 이름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그 자체가 축구팬이라면 누구에게나 감동적인 모습이다.
경기에 나선 선수들은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고, 맨유의 정신이자 선수들의 위대한 선배 죠지 베스트의 이름을 들으며 경기를 치른다.
볼튼 원더러스를 맞아 경기를 치른 이날 맨유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경기장에서 볼튼을 완파하며 팬들에 가장 멋진 답례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