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협상은 이제 시작"…美관세 방정식 풀 여한구표 해법은?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7월 대미(對美) 패키지 협상'을 앞두고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통상 태스크포스(TF)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협상 기조에도 변화를 예고하며 전방위 대응에 나섰는데 특히 미국과의 "상호호혜적인 파트너십"을 강조한 점이 눈에 띈다.
다소 수세적인 자세로 임했던 기존 협상과는 달리 새 정부의 민주적 정당성을 부각하면서 본격적인 줄다리기에 돌입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주일 뒤 한국·일본에 '최종 무역 협상안'을 제시하겠다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는 만큼, 경제·안보 연계형 협상의 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고삐 죄는 트럼프에…"새로운 협력 틀 만들 것"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여한구 본부장은 취임 일성으로 "통상 협상은 우리나라 향후 5년, 미국은 4년 동안 산업·에너지·투자·통상 전 분야에 걸친 새로운 협력 틀을 만드는 일"이라며 "기존 임시 체제에서 벗어나 전 부처 차원의 TF를 확대·개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TF 대표를 기존 국장급에서 1급으로 격상시키는 안(案)도 내놨다.
'7월 패키지'(7월 포괄합의)가 자동차·에너지는 물론, 금융, 안보·방산, 소고기 검역 등 광범위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 부처를 아우르는 TF를 꾸리겠다는 것이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장관급 인사를 투입해 온 점을 고려해 우리 정부도 협상 주체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적극적으로 협상에 나서겠다는 원칙도 강조했다. 여 본부장은 지난 12일 취임 직후 "한국이 미국을 필요로 하는 만큼, 미국도 한국을 필요로 한다"면서 "상호호혜적인 파트너십을 만들기 위해 당당하게 협상해 나가겠다. 국익 중심의 실용주의적 협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당초 미국 측이 제시한 협상시한이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현지시간) "일주일 반 이내에 국가별로 (미국이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라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할 것"이라고 말했다.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독촉'에 가깝지만 협상 시한을 넘기고 미국이 협상의 창구를 닫으면 한국 수출 업계는 자동차·부품 관세(25%), 철강·알루미늄 관세(50%)에 더해 상호관세(25%) 부과 여파를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에 대해 여 본부장은 방어적인 자세로만 일관하지 않겠다는 뜻을 일찌감치 피력했다. 그는 같은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떤 협상에도 일방으로 주는 협상은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너무 수세적으로 협상을 하기보다는 '주고받는' 협상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셔틀 협상'을 통해 협상 속도와 밀도를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12.3 내란 사태의 여파 등으로 협상 횟수가 적었던 현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믿을 수 있는 동맹 부각…에너지·조선업 협력 강화
여 본부장이 꺼내든 또 다른 카드는 '경제·안보 연계 전략'이다.
이런 구상에는 한미 양국의 경제 구조상 상호보완성이 강하다는 여 본부장의 인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미국이 제조업을 부흥 시키고 첨단 기술력의 우위를 유지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해야 하는 만큼 이를 협상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이다.
앞서 여 본부장은 취임 전인 지난 1월 코리아소사이어티 좌담회에서 "조선, 방위산업, 바이오와 민간 원자력 같은 전력 산업 등에서 한미 간에 매우 밝은 미래를 전망한다"며 "바이든은 물론 트럼프는 국내 제조업과 공급망을 구축하는데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한미 간 구조적인 상호보완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우리나라의 조선업과 미국산 LNG 수입 등 협상 카드를 적극 활용해 주요 품목의 관세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반응이다.
한국무역협회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통화에서 "미국이 한국에 가장 원하는 것은 중국을 대체해 미국의 공급망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화오션이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것처럼 국내 기업이 경쟁력 없는 미국 조선소를 인수·합병하거나 아예 미국에 세우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알래스카 LNG 사업 역시 주요 협상 레버리지로 언급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상 전문가는 "(경제성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미국산 에너지를 수입하는 국가가 된다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고, 운송 경로 역시 훨씬 단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개발 과정에서 국내 엔지니어링 회사가 참여할 여지도 열려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간한 '트럼프 2기 상호관세 조치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산 LNG를 대량 수입할 경우 상호 관세율을 최대 1.4%p 낮출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보고서는 내년 종료 예정인 카타르산 LNG 수입 계약 물량 702만톤을 미국산으로 대체할 경우, 작년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적자 비율이 47.1%로 하락한다고도 분석했다.
"한국·일본 협력하면 대미 협상력 두 배"기업·국가 단위 협력 패키지도 여 본부장이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다.
앞서 여 본부장은 지난 4월 한국경제인협회가 주최한 세미나에서 일본과 협력한다면 대미 통상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한일 간의 전략적 얼라이언스(동맹·alliance)가 강화됐다고 본다"며 "미국과 중국에 대응하는 일본의 처지가 우리나라와 비슷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협력한다면 대미 협상력은 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같은 세미나에서 민·관 협력 차원에서도 기업이 개별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공동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취지의 견해를 내놨다.
그는 일본 소프트뱅크와 대만 TSMC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각각 1천억 달러 규모 투자 계획을 약속한 것을 거론하면서 "(우리 기업이 각자) 할 수 없다면 모아야 한다"며 "각자도생식으로 여기서 한 번 저기서 한 번 발표하기보다 우리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모아서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에 발표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크레딧을 얻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여 본부장은 취임 직전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이와 비슷한 취지의 발언을 이어간 바 있다. 이에 대해 여 본부장은 지난 12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원론적으로는 일본과 우리나라는 전략적 협력이 중요하고, 전략적 이해가 많아서 협력할 부분은 체계적으로 하자(는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2025.06.1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