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 "지난해 최악 살인기업 '아리셀'"…건설사들도 줄줄이 불명예
노동계가 지난해 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를 벌인 1차전지(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을 2025년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꼽았다.
또 매년 선정해온 최악의 살인기업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기업은 현대건설㈜인 것으로 나타나는 등, 두 번 이상 선정된 기업들은 대부분 주요 건설사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민주노총과 노동건강연대, 매일노동뉴스가 모인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 캠페인단'(이하 공동 캠페인단)은 22일 민주노총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5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식을 열었다.
공동 캠페인단은 2006년부터 해마다 최악의 살인기업을 선정해 전년에 가장 많은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일어난 기업과, 노동자 산업안전보건 문제에서 주목할 만한 대상 등을 발표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공동 캠페인단이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 20주년을 맞이해 역대 최악의 살인기업 등도 함께 발표했다.
지난해 최악의 살인기업 1~4위서 숨진 41명 노동자 중 36명이 하청노동자공동 캠페인단이 고용노동부가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실에 제출한 '2024 재해조사대상 사망사고 현황'을 토대로 지난해 산재사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기업을 집계한 결과, 2025년 최악의 살인기업은 단연 ㈜아리셀이 선정됐다.
지난해 6월 경기 화성의 아리셀 공장에서 배터리 폭발사고가 발생해 노동자 23명이 숨지고 9명이 다친 바 있다.
아리셀에 이어 7명의 노동자가 숨진 한국전력공사와 ㈜대우건설이 공동 2위에 올랐다. 4위는 4명의 노동자가 숨진 GS건설㈜이었다. 공동 캠페인단은 "한전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지난해 연말까지 총 11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한 '중대재해 최다 발생' 공공기관"이라며 "지난해 4월 안전보건공단과 산재예방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지만, 이후에도 6건의 중대재해가 추가로 발생했다"고 비판했다.
또 ㈜대우건설에 대해서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10대 건설사 중 가장 많은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이라며 "상위 20개 건설사의 최근 5년간 산재 인정건수 통계에서 ㈜대우건설이 2107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대우건설에서는 11건의 중대재해로 12명의 노동자가 숨진 바 있다. 특히 ㈜대우건설은 2011년과 2014년, 2020년에는 최악의 살인기업 1위로 선정된 바 있다.
GS건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지난해 연말까지 5건의 재해로 5명의 노동자가 숨졌는데, 지난 한 해 4명이 숨져 최근 재해사망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날 공동캠페인단은 하청·외국인 노동자들이 중대재해에 특히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아리셀 참사 당시 사망자 가운데 20명은 하청노동자, 18명은 외국인, 15명이 여성이었다. 특히 숨진 이주노동자는 모두 인력공급업체 '메이셀'을 통해 불법 파견되는 등, 전체 직원 103명 중 53명이 파견직으로 고용될 정도로 위장도급 문제가 심각했던 사실도 함께 적발됐다.
2~4위 기업 중에서도 하청노동자가 숨진 사례는 한전은 6명, ㈜대우건설은 7명, GS건설㈜은 3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해, 상위 4개 기업에서 숨진 41명의 노동자 중 36명이 하청노동자였다. 또 ㈜대우건설에서 숨진 노동자 중 2명은 외국인 노동자였다.
공동 캠페인단은 "지난해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589명 가운데 이주노동자는 무려 92명"이라며 "정부가 이주노동자의 산재통계에 손을 놓고 있으므로 얼마나 많은 죽음이 가려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2월 노동부가 발표한 전국 산업단지 내 영세 제조업체 대상 불법파견 감독 결과, 영세 제조업체 229개소 중 87개소가 불법파견으로 적발됐다"며 "아리셀 중대재해는 기업이 불법파견으로 노동자를 고용하여 사업을 운영했을 때 노동자 건강에 미치는 위험과 악영향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하청·외국인 노동자가 목숨·건강을 위협받으며 일하고 있는 현실은 이들 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재해조사 대상에 오른 중대재해 553건으로 노동자 589명이 숨졌는데, 이 가운데 47.7%(281명)가 하청노동자로 확인됐다. 또 외국인 노동자는 15.6%(92명)에 달했다.
현대건설, 20년 간 최악 살인기업 최다 선정…대우건설·GS건설은 노미네이트 1위
한편 지난 20년 동안 최악의 살인기업에 가장 많이 선정된 기업은 현대건설㈜로 집계됐다. 현대건설㈜은 2007년(10명 사망), 2012년(10명 사망), 2015년(2005~2014년 10년간 110명 사망), 2022년(6명 사망) 등 총 4차례나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지적됐다.
이어 ㈜대우건설이 2위의 불명예를 안았고, GS건설㈜,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 현대제철㈜이 각 2회씩 선정돼 공동 3위가 됐다.
최악의 살인기업 1위는 아니라도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횟수로 따져보면 ㈜대우건설과 GS건설㈜이 11차례나 이름을 올려 공동 1위로 집계됐다. 이어 현대건설㈜(9회)과 디엘이앤씨㈜(구 대림산업, 8회), ㈜포스코이앤씨(구 포스코건설, 6회)가 뒤를 이었다.
공동 캠페인단은 "지난 20년 동안 최악의 살인기업 순위에 가장 많이 오른 상위기업 모두 2024년 시공능력순위 10위권 내 대형건설사"라며 "최다 노미네이트 5개 기업(GS건설·대우건설·현대건설·디엘이앤씨·포스코이앤씨)의 2024년 기준 토건 시평액을 합산하면 약 57조 4천억 원으로, 상위 20개 건설사 토건 시평액의 38.9%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은 비용을 줄여 이윤을 키우는 방식을 고수하며 '중대재해처벌법' 처벌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보여주기식 시스템'만 만들고 있다"며 "위험한 노동환경을 만드는 근본적인 구조인 다단계 하도급 문제 등을 개선하고 안전 체계를 정비해야 노동자의 죽음을 멈출 수 있다"고 호소했다.
시민이 뽑은 최악의 살인기업은 교육청…"급식 조리노동자 폐암 심각한데 환기 시설 예산 삭감 나서"
이 외에도 '시민이 뽑은 최악의 살인기업' 투표 결과로는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13명이 폐암으로 사망한 시·도 교육청이 40.1%(2,706표)로 1위에 올랐다.
최근 정부 조사 결과 등에 따르면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전체 수검자의 32.4%(1만 3653명)가 폐 CT 검진에서 이상 소견을 받았고, 폐암 확진자를 포함하여 379명이 의심자로 판정됐다. 학교급식 조리노동자 폐암은 일반 여성노동자의 약 17배에 달한다.
이에 대해 공동 캠페인단은 "노조가 요구해 시·도교육청이 환기 시설 개선을 시작했지만, 일부에 그치고 지금은 예산 30%를 삭감 중"이라며 교육청들이 대책 마련에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난해 5월 '로켓배송' 기사였던 고(故) 정슬기 씨의 죽음으로 야간노동·과로 실태가 폭로된 쿠팡이 25.6%(1,747표)로 2위를, 백혈병 등 직업성 암으로 18년 동안 108명이 숨지고, 하청업체에서 메탄올 중독으로 6명이 실명했는데도 베트남 하청업체에서 다시 메탄올 중독 사고가 일어났던 삼성전자가 7.6%(512표)로 3위로 뽑혔다.
공동 캠페인단은 "기업은 대국민 사과를 할지언정 유족에게 사과하지 않았고, 하청, 비정규직, 이주노동자가 죽음에 내몰리는 구조를 바꾸지 않았다"며 "바뀐 것은 시민들의 의식이다. 일하다가 죽는 것은 당연하지 않다. 노동자의 죽음을 방치해 온 기업과 국가를 바꾸기 위해 더 많이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04.22 12:12